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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성복축제, 누구를 위한 축제입니까 - 진솔하신 비판에 대한 참담한 변명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60

 

 


성복축제, 누구를 위한 축제입니까
- 진솔하신 비판에 대한 참담한 변명 -

 

 

 

더러 칭찬도 받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걸 공개하지는 않았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또한 '사람을 망치는 독'이라는 것에 더 유념하고 싶었습니다(칭찬하는 것은 칭찬받기 위해서일 뿐 - 라로슈푸코). 그러다가 이번에는 싫어도 공개해야 할 메일을 받았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하나' '앞으로 잘해 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아무래도 공개하는 것이 자신에게나 아이들에게나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우선 그 내용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성복축제, 누구를 위한 축제입니까?

 

교장선생님께 기대가 컸던 만큼 전 지금 무척 실망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이들을 보며 전 전혀 즐겁지 않았습니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의 경우 무대에서의 5분을 위해 저 아이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생각하니 화가 났습니다. 무대에 한번 올라가는 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정말 아이들을 위한 축제라면 오늘 하루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걸 했으면 어땠을까요. 제가 교장선생님이라면 전 오늘하루 아이들이 체험마당에서 실컷 놀 수 있게 했을 것입니다. 성복엔 왜 이리 손님도 많이 오시는지 6학년이 공부는 안 하고 종일 청소만 하고 왔다는 적이 부지기수요. 학생들 수업준비를 해야 할 선생님들이 손님맞이로 이렇게 바쁘니 과연 수업은 제대로 했겠습니까. 2년이 지나도 과학 올림피아드, 수학 올림피아드 한번 나간다는 소식은 없고 학교수업은 과연 제대로 되고 있는 지 의심스럽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학교와 저희 부모들이 생각하는 좋은 학교와는 방향부터가 다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 대부분의 평범한 부모들은 좋은 학교라면 - 실력 있는 선생님, 노력하는 선생님, 끊임없이 공부하는 선생님, 인품이 좋은 선생님 밑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저도 오늘 많이 피곤하답니다. 아무쪼록 교장선생님께서 저희 부모들의 마음을 잘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나 단 5분의 무대에 오르는 경험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2004년까지의 특기·적성교육 발표 무대를 학급별 출연 무대로 바꾸었고, 올해는 또 한두 명 뛰어난 아이가 오르는 무대가 아니라 모든 아이가 함께 오르는 무대로 바꾸었습니다(비록 제멋대로 두들기고 불어대어 박자가 맞는 경우가 별로 없는 발표도 있었지만). 뛰어난 몇몇 아이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기만 하는 축제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추석이나 설날을 그처럼 기다리던 그 경험처럼 별것 아니지만 '해오름길'에 갖가지 작품을 내걸고 축제날을 기다리는 그 설렘과 '고생'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기를 저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 강당은 체육관입니다. 극장식 무대도 아니고 비좁아 구경하기가 어렵다는 학부모님들의 불평 때문에 올해는 인근 대학의 대형 강당이나 문화시설을 대여하려고 했지만 대여료가 비싸거나 500석도 되지 않는 소형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또 강당에서 발표하고 각 코너에서 체험을 하는 형태로 구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학부모님들께서 자신의 자녀가 출연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고는 한결같이 미련 없이 떠나시는 모습을 보고는 500석은커녕 단 50석만 되어도 가능하겠다 싶었습니다. 내 아이의 별것 아닌 50분은 볼만하지만 남의 아이의 훌륭한 5분은 아무래도 지루하겠지요. 어쨌든, 내년에는 소형이라도 극장식 무대를 빌려 발표회를 갖고, 학년별 운동회 때의 실외체험활동과 다른 실내체험활동을 한나절 즐기도록 하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바꾸고 저렇게 개선해도 여러분의 이해와 협조가 없으면 부작용은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이제 가슴을 치며 고백해야 할 것은 '청소만 한 날이 부지기수'라는 지적입니다. 도대체 몇 학년이 며칠을 그렇게 했는지 알아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겠습니다. 지금 저는 스스로 가장 경멸해온 바로 그러한 교장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부끄럽습니다. 우리 선생님들은 한결같이 '실력 있고, 노력하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인품이 좋은' 분들임에 틀림없지만 지휘자인 저로 인하여 그러한 자질을 의심받게 되었다는 것도 부끄럽습니다.

 

2학년 학생 몇 명도 연단 위에 올라갔는데 너무 당황해서 어디를 보아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극장 안의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세 뼘밖에 안 돼 보이는 꼬마가 등에 커다란 장밋빛 리본을 달고 아주 힘들게 걸어오다가 카펫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지사님이 소년을 일으켜 세웠고 사람들은 손뼉을 치며 웃어댔습니다. 또 다른 학생 하나는 객석으로 다시 내려오다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비명을 질렀지만 다친 데는 없었습니다. 개구쟁이 같은 얼굴, 놀란 얼굴, 버찌처럼 빨간 얼굴,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웃고 있는 익살꾸러기 등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연단 위를 지나갔습니다.


- E. 데 아미치스·이현경 옮김, 『사랑의 학교 2』, 창작과비평사, 1997, 121에서 -

 

 

그 축제날이 좋은 경험, 잊을 수 없는 경험일줄 알았는데, 지금 저에게는 이와 같은 슬픔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로 시작된 안톤 슈낙의 글은 감상적인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는 줄만 알았는데, 이런 구절도 들어 있었습니다.

 

'화려하고 성대한 가면무도회에서 돌아왔을 때'

                                                                                   - 차경아 옮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문예출판사, 1974, 11.

 

 

2006년 11월 21일

 

 

추신 : 각 대학, 학회 같은 데서 영리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올림피아드 같은 대회에는, 비록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학교의 이름으로 출전시키기가 어렵다는 것을 양해하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아무리 어렵고 슬퍼도 언제나 저는 아이들 편에 서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