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자신만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해줍시다 - 한가지 대답만을 요구하는 한심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56

 

 


자신만의 생각을 말할 수 있게 해줍시다
- 한가지 대답만을 요구하는 한심한 교육에 대하여 -

 

 

 

우리 학교의 회의 모습을 스케치하는 것 같아 좀 망설이다가 부모님들도 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이 편지를 씁니다.


지난 9일(월)의 정기회의 때였습니다. 우리의 의제는 세 가지였는데, 세 번째로 글 쓰기 지도를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담당 선생님께서 준비한 자료를 설명한 뒤 갑자기 문제를 내셨습니다. "이 월간지에서 어떤 이야기의 첫머리만 읽겠습니다. 들어보시고 줄거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아맞히시는 선생님께 이 책을 상품으로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그 선생님께서 읽어주시는 글을 매우 진지하게 들었는데, 제 기억에 의하면 한 아이가 강가에서 물새알을 주어와서 엄마와 대화를 나눈 내용이었고, 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겠느냐, 즉 그 아이는 어떻게 했겠느냐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주변의 다른 선생님들과 의견을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어떤 선생님께서 금방 손을 들어 답을 말했고 신기하게도 그것이 정답이 되어 그 책은 그 선생님께 상품으로 주어졌습니다. 정답은, 그 아이가 엄마물새의 슬픔에 대해 생각하고 그 물새알을 도로 갖다놓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는 상품을 받은 그 선생님께 박수를 보내주었고, 담당 선생님께서는 이 방법이 아이들에게 독서지도를 할 때 유용하다는 말씀을 하시고 회의를 끝냈습니다.


저는, 일주일 후의 정기회의 때, 담당 선생님께서 "지은이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했겠느냐?"고 질문했기 때문에 당연히 그 글의 내용대로 답하는 것이 정답이 되겠지만, 평소에 늘 그렇게만 지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일에 대한 해석은 관점에 따라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스운 답이 될지도 모르지만, 가난한 시절의 어떤 가정에서는 그 후에도 자주 그 강가에 나가 또 물새알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 당연하며, 매우 과학적인 태도를 가진 어떤 아이는 물새는 그 알을 어떻게 부화시키는지 관찰해나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이들의 대답은 당연히 다양할 것이므로 종전의 주입식 교육방법에 따라 한가지 정답만을 고집하지 말고, 아이들의 그 다양한 사고들을 모두 수용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번 편지에서 인용한 졸저(『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에서 우리는 흔히 '노력'이라고 대답해버리고 그 외의 정답은 없다고 단정하는 「토끼와 거북」이야기에 대한 그 고정관념에 대하여, 실제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을 지도해본 경험에 의하면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는 물음의 답이 무려 70가지가 넘더라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습니다.


역대 노벨상의 1/3을 휩쓸고 있는 유대인 어머니들은 우리가 "오늘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을 때 "선생님께 무엇을 여쭈어보았느냐?"고 묻는답니다. 또, 우리가 '죽어라' 하고 모범이 되는 한가지 대답만을 요구하고 있는데 비해 매일 밤 잠들기 전까지 아이가 뽑아오는 책을 읽어주며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내일 또 읽어줄게." 하고 다음 이야기에 대한 상상력을 키워나간답니다(최홍섭, 「유대인과 노벨상」, 조선일보, 2006. 10. 20, 34). 아마도 유대 어머니들은 상상력·창의력을 키워갈 수 있는 마당을 마련해주는 일만 하고, 이 이야기의 다음 내용이 어떻게 전개될지 정답을 맞추라는 강요는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담이지만, 자신만의 생각을 키워주는 일은 부자가 되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단기금융투자 회사인 '르네상스 테크놀로지스'의 사장 제임스 사이먼스는 지난해 연봉이 15억 달러(1조4300억 원)였는데, 기자가 그의 이력을 묻자, "저요? 원래 수학자였어요. 보스턴 근교에서 자라면서 세 살 때부터 숫자와 도형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대요. MIT를 거쳐서 UC 버클리에서 미분기하학으로 박사학위를 땄어요. 그리고 수학교수를 했지요." 하고 '어린 시절에 생각하는 것을 좋아했다'는 것을 강조하더랍니다(조선일보, 2006. 10. 21, B1 커버스토리).


우리가 한가지 대답만을 중시해왔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나라 학력고사, 학업성취도평가, 수학능력고사 문제의 대부분은 4지 혹은 5지 선다형, 단답형이 주류를 이루며, 아이들은 그 한가지 대답을 가려내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 학교와 학원에서, 그것도 모자라 학습지를 풀며 그 답을 암기하는 일에 혈안이 되어야 하고 몸도 마음도 시들어 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암기력, 단 하나를 선택하는 능력, 교사가 요구하는 유일무이한 정답을 과녁을 맞추듯 알아맞히는 능력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겠지요.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깊이 생각하고, 넓게 생각하고, 비범하게 생각하는, 사고력·창의력·분석력 같은 '고급의 힘'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들 잘 알고 있으면서도, 어느새 또 그 단 한가지 대답을 강요하는 우리들 자신을 발견합니다. '암기'보다는 '사고'가 낫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단견短見, '훌륭한 공부'는 결국 많이 암기하는 것인 양 오늘도 암기 중심의 평가에 치중하여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 이 나라의 한심한 교육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2006년 10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