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잘 키운다는 것 -「엄마가 들려준 김선욱 군 리즈 피아노 콩쿠르 우승 비결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55



 

잘 키운다는 것
-「엄마가 들려준 김선욱 군 리즈 피아노 콩쿠르 우승 비결」을 보고 -



 

평지에 자리잡은 수원 용주사는 휴일이면 학생들이 자주 현장답사를 하는 곳입니다. 그 날도 수십 명의 초등학생들이 비석과 바위가 늘어서 있는 그 앞뜰에서 신나게 뛰놀고 있었습니다.

방금 점심을 먹었는지 비닐봉지가 날리고 있었고 군데군데 먹다 남은 김밥 같은 것들도 뒹굴고 있었습니다. 눈오는 날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어지럽게 뛰어다니는 아이들 때문에 얼른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여자 어른들 몇 명은 비닐봉지와 김밥 덩어리, 과일껍질 등을 주워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에 비위가 상해서, 그 어른들이 교사가 아닌 것은 분명하지만 교육적인 대답을 구하려고 그 중 한 명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왜 아이들을 시키지 않습니까?"

"잘 키워야지요." 바로 튀어나온 그 대답은, 순간 어디서부터 어떤 말로 이 대화를 이끌어나가야 할지 막막하게 했습니다. 더구나 그 표정은 '나는 힘들게 살지만……' '당신 같은 사람이 내 속을 알겠나, 물으나마나 한 것을 왜 묻나' 같은 느낌까지 떠올리고 있어 다음 말을 찾기가 더 어려웠습니다.

씁쓰레하여 얼른 돌아서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분과 여러 가지 대화를 제대로 나누어야 했다는 강박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잘 키운다는 게 어떤 것인 줄 아시는지요? 잘 키운다는 것에 대하여, 언제까지나 아이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보살피고, 아이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주는 걸로 생각하고 계시지요?" …….

그러면서 또 우리 교육자들을 향해서도 하소연하고 싶었습니다. "학부모들은 지금 저렇게 하고 있는데 교육이 되기나 하겠습니까? 혹 선생님께서도 '아이들에게 청소 같은 걸 시키는 것은 쓸데없는 세상이 되었다, 이 아이들이 우리처럼 청소나 하고 살겠나' 하고 정말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시는 거나 아닙니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이 아이들은 장차 모두 우리 사회 각계각층의 전문가로서 살아갈 것이라고는 하지만 - 이제는 파출부나 음식점 배달부도 전문가인데 - 다들 파출부, 가정부, 청소부 두고 살겠다고 하면 도대체 어느 나라에서 그 사람들을 데려옵니까? 그런 이상한 생각들 때문에 이미 화장실 청소를 용역으로 처리하게 되었고, 드디어 앞으로는 학교 구석구석의 청소까지 담당할 사람이 없게 될 것은 아닙니까? 이러니, 수행평가를 한다면 수행평가 학원이 생기고, 영어·수학 가정교사는 물론 숙제 지도 가정교사까지 따로 채용하는 가정이 생기지 않습니까? (중략) 이러니 자녀는 학원에 보내고, 그 시간에 학부모는 자녀의 학교생활기록부에 적어 넣을 봉사 활동 실적을 위조해 달라는 부탁을 하러 다니는 이상한 현상이 생기는 게 당연하지요. 이른바 교육 수요자들이 자식 교육을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면,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도대체 어떤 정책이나 시책을 내놓으면 제대로 실현되겠습니까?" …….

"잘 키워야지요." 그 한마디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모든 걸 의심스럽게 했습니다.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식교육에 관한 한 모두들 비정상이 아닐까요? 지금 교육자들은 정말 '교육'을 하고 있기나 할까요? 교육부는 온갖 비판, 심지어 '교육부 무용론'까지 들으며 이 시각에도 고심고심 또 무슨 정책을 구상하고 있겠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한들 이 나라에서 제대로 구현되는 걸 볼 수 있을까요?
- 졸저拙著, 『보고 읽고 생각하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아침나라, 2005)에서 -



지난 9월 24일, 아시아 최초로 세계 최고 권위의 리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선욱 군과 그 어머니의 인터뷰 기사들을 보면서 부끄럽지만 전에 제가 썼던 글이 생각나서 인용했습니다. 그 기사들을 대충 살펴보면, '어릴 때 정명훈 지휘봉 사며 거장 꿈 꿔', '연습 더하라는 부모님 잔소리 들은 적 없어', '내 음악보다 남의 음악 듣는 데 시간 더 쏟아', '축구든 피아노든 이길 때까지', '맞벌이 부부여서 자식 뒷바라지에 전념할 수 없어', '국내에서만 교육받아온 영재' 등이었습니다.

그가 성공한 인생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특히 눈여겨본 것은 그 어머니의 '비결'로, 간추린 내용을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립심을 길러라. 2. 구체적인 꿈을 가져라. 3. 음악을 골고루 들어라. 4. 뭐든지 미쳐야 한다. 5. 성급한 유학은 금물이다. 6. 억지로 시키는 것은 한계가 있다. 7. 체력을 길러라. 8. 돈보다 따뜻한 관심이 더 중요하다.' 보시다시피 첫 번째가 자립심인데,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는지, 잘한다고 하는 일들이지만 - 우리로서는 '잘 키운다'고 이러고 있지만 - 사실은 거꾸로 가고 있지는 않은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이 아이들을 위해 해주어야 할 일은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여 해주는 것이 '사랑'이겠지만,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 아이들에게 시켜야 할 일은 철저히 시키는 것이 또한 '사랑'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2006년 10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