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28cm만 뛰어오르는 아이 - 만화 '광수생각'이 생각나서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54 

 

 

 

28센티미터만 뛰어오르는 아이

- 만화 『광수생각』이 생각나서 - 

 

 

 

  1990년대 후반 어느 신문에 만화 『광수생각』이 연재되었습니다. 그 만화는, 드디어 첫눈 내리는 초겨울 아침, '그곳에도 눈이 내리는지요?' 하고, 고향마을이나 철없이 굴던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는 식으로 마음을 흔들기도 했습니다. 280호는 지금까지 복사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림까지 다 보여드리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이 글만 인용하고 그림은 (   ) 안에 옮겨보겠습니다.

 

 

  장면 1. 벼룩. 지금은 주변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녀석입니다.

               (벼룩 한 마리가 폴짝폴짝 뛰어가는 모습).

  장면 2. 벼룩은 60cm 이상 뛸 수 있습니다.

                ("내 몸의 몇 십 배…" "캬호!" 하고 가물가물하게 뛰어오르는 모습).

  장면 3. 이 벼룩을 30cm 높이의 유리컵 안에 가두면…

                (엎어놓은 유리컵 안에서 '여기가 어딘가' 궁금해하는 모습).

  장면 4. 벼룩은 유리컵 이쪽 저쪽에 머리를 부딪치다…

                (유리컵에 '쿵!' '쿵!' '쿵!' 부딪치면서도 자꾸 뛰어오르는 모습).

  장면 5. 나중에는 28cm 정도만 뛰게 됩니다.

                (이제 확신을 가지고 부딪치지 않을 정도로만 안전하게 뛰어오르는 모습).

  장면 6. 그리고는… 유리컵을 치워도 계속해서 28cm만 뛰게 됩니다.

                (유리컵을 치운 멀쩡한 곳에서도 조금씩만 뛰어오르는 모습).

 

  여섯 컷의 그림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당신은 공부라는 유리컵 안에 아이를 가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광수생각. END(N은 좌우로 뒤집혀져 있음).

 

 

  저는 우리 학교에 와서 느끼기로, 부모님들이 자녀를 보살피는 태도는 대체로 지극하여 더 할 말이 없을 정도이나 그 정도가 오히려 지나친 경우가 있어서 '저렇게 하면 나중에는 어떻게 되겠나' 걱정스러웠습니다.

  예를 들어, 교장실에서 전학 온 아이들을 면접해보면 저학년이건 고학년이건 무엇을 물어도 어머니께서 얼른 나서서 대답하고 심지어 이름을 물어도 그것조차 대신해야 직성이 풀리는 표정들이었습니다. 한마디로 평가하면 '이 분이 도대체 언제까지, 어디까지 이러고 다니려나?'입니다.

  이러하므로, 가정학습과제를 내주면 '얼씨구나' 아이를 밀어내고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여 그 과제를 대신해주는 학부모가 얼마나 많겠습니까. 제가 가족신문 만들기에 대해 학습은 시키되 전교경연대회를 없애버린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오순도순 나누어 꾸민다면 대회 자체를 없앨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당연한 말씀이지만, 아이들을 위해 '우리가 해주어야 할 일', '아이들과 함께 할 일'도 있지만, 대부분은 아이들 스스로 하도록 해야 자녀를 제대로 키우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난 10일, 서울대학교에서 개최된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입시정책 세미나'에서 논술고사 담당 윤여탁 교수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우리는 논술고사를 실시할 때) 논리성論理性보다는 창의성創意性, 창의성보다는 자기주도성自己主導性을 중시합니다."

 

  보십시오. 자기주도성을 길러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어려운 이론을 살펴보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습니까. 논리성이나 창의성도 마찬가지이지만, 자기주도성도 지금 가르쳐야 가르쳐지는 품성입니다.

  다 자라서 성인이 되면, 아무리 좋은 방법으로 좋은 것을 가르쳐도 심성으로 자리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때에는 좀 스스로 알아서 살면 좋겠는데도 계속 부모에게 의지하여 지긋지긋해지고 "너는 왜 자립하지 않느냐?"고 눈물로 호소해도 이미 때는 늦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인들끼리 만나면 서로를 가르치려들지는 않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서울 계동 '엄마학교'(blog.naver.com/unan)의 10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자녀에 대하여 느긋하게, 자율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진술된 항목이 많은데, '나는 어떻게 하고 있나' 점검해보시면 어떻겠습니까?

  그렇게 하고 있으면 ○표, 아니면 ×표, 긴가민가하면 △표를 해보셔도 좋을 것입니다.

 

    1. 삶의 목표를 정한다(   ).

    2. 서두르지 않는다(   ).

    3. 환한 웃음으로 대한다(   ).

    4. 아이를 믿는다(   ).

    5. 아이 스스로 하게 한다(   ).

    6. 아이가 선택하게 한다(   ).

    7. 남에게 해가 되지 않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게 한다(   ).

    8.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고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

    9. 내 아이도 남의 아이도 우리 아이로 여긴다(   ).

  10. 먹는 것에 신경 써서 아이의 건강을 돌본다(   ).

 

  어떻습니까? ○표가 많습니까? 만약, ×표가 많다면 우리는 자녀교육을 거꾸로 함으로써 일을 그르치고 있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놀라운 일 아닙니까? 명심하십시오. 그냥 던져두는 것은 방임이지만 일일이 끼어 드는 것도 '사랑'은 아닙니다. 내 아이가 결국 28cm 뛰어오르는 불구가 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6년 10월 13일

 

 

이 만화의 복사물을 찾았습니다.

늦게라도 '그리움'으로 여기에 실어둡니다(2022.6.21).

 

 

 

 

이 이야기를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 "상상력 사전"에서도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