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단편적 지식 암기교육에 대한 단상斷想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58

 

 

 

단편적 지식 암기교육에 대한 단상斷想

 

 

 

 

▶ 취업포털 인쿠르트는 1년 간 각 기업의 면접시험문제 5천여 건을 분석하여 그 중 가장 흔한 유형을 '선택형'과 '무인도형'으로 정리했답니다. '선택형'이란 '버스에 앉아 있는데 임산부, 다리를 다친 학생, 할아버지, 짐이 많은 아주머니가 탔다면 누구에게 먼저 자리를 양보할 것인지, 또 그 이유는?', '무인도형'이란 '홀로 무인도에 남겨진다면 가지고 갈 물건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이 대표적이랍니다. 그 외에도 '왜 지원자들은 검은색 정장만 입는가?'와 같은 문제도 있더랍니다. 당연히 사고력이나 창의력, 상상력이 필요한 질문들입니다. 놀랄 필요 없습니다. '미국 전역의 소방전이 몇 개인가를 이 자리에서 알아맞히라'는 시험문제가 있다는 기사를 본 것이 10년도 넘었습니다.

 

▶ 제 기억에 의하면, 언젠가 한 여고생이 입학시험을 보던 중 그 대학 화장실에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조사 결과, 그 학생은 학원에서 예상한 논술문제가 출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암기해온 것으로는 글을 쓸 수 없어서 그만 이 세상을 떠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논술고사 때문에 더욱더 야단입니다. 공통된 의견은, 고전요약문과 모범답안으로 글 쓰는 기술만 가르치고 생각을 키워주지는 않으면 답안이 천편일률적인데 비해 오히려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 중에서 창의적인 답안을 내어 높은 점수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교무실에서 우연히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눈에 띄는 대로 다 잘 된 글을 보여줍니다. 이런 글을 자꾸 써봐야 논술을 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어머니 저 도현이에요. 저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 평생 갚아도 모자랄 겁니다. 어머니, 제가 뭘 해야 효도를 잘 할 수 있을까요? 또 할말이 있어요. 선한 것 악한 것보다는 믿느냐 안 믿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가족끼리는? 믿고 실천하는 게 매우 중요하겠지요. 옛날부터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라는 말이 있어요. 어머니, 아버지께서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름을 알리시지 않으셨지만, 저에게는 이름을 남기셨어요.

 

2006. 10. 31 화.

 

하나뿐인 아들 도현이가.

 

 

▶ 『현대문학』9월호에서 인용합니다.

 

"관광객에게는 일종의 의무가 있다. 로마에서는 바티칸과 콜로세움에, 파리에서는 루브르에, 베이징에서는 자금성에, 쿄토에서는 금각사에 들르는 것. 때로는 두 시간쯤 줄을 서서 간신히 비싼 티켓을 끊은 다음, 둘러보며 사진과 똑같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들을 배경으로 얼굴이 큼직하게 나오도록 사진을 찍는 것."

                                                                                                                                                          (신해옥, 「물위를 걷다」).

 

우리가 선택형, 단답형 교육에 매몰되어 있는 사이 국민들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 "모두 큰소리로 대답해!" 해놓고, 잠시 후에는 아이들이 떠든다고 짜증스러워합니다.

"아는 사람 모두 손들어" "모두들 똑바로 앉아" "모두 일어서"…… 우리는 걸핏하면 전체를 움직이려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일률적 획일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따라서 자신을 그러한 움직임에 맞추기 위해 남들과 똑같은 생각을 해야 합니다.

전체를 향해 "조선을 건국한 사람은 누구냐?"고 물으면 함께 대답해야 하므로 "이성계 장군" "이성계입니다" "이성계가 아닐까요?"……라고 답해서는 안 되며 일제히 박자를 맞추어 "이성계!!!"라고 답해야 합니다.

또 있습니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모두 악기를 잘 연주합니다" "우리 학교는 전교생이 춤을 잘 춥니다" 이런 자랑을 하고싶으면 그 학교에서는 악기를 잘 연주하는 아이, 춤을 잘 추는 아이는 유명해지지만, 달리기를 잘 하는 아이,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 우스개를 잘 하는 아이는 숨어야 합니다.

 

▶ 피히테라는 사람은 꼭 200년 전(1807)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은 그 전에도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암기는 어떤 다른 정신적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으로서가 아닌 그 자체만으로 요구된다면 심성의 활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심성의 고뇌가 된다. 학생들이 이러한 고뇌를 마지못해 받아들였으리라는 사실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또한 학생들에게 전혀 관계도 없고 거의 흥미도 없는 사물과 그 특성을 가르치는 것은 그들의 고뇌에 대한 대가로서는 결코 유익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학생의 학습에 대한 혐오는 이러한 인식이 장차 필요하리라는 위안, 이러한 인식을 매개로 해서만 빵과 명예를 얻을 수 있으리라는 위안에 의해서, 그뿐 아니라 눈앞의 상벌에 의해서 극복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황문수 역, 『독일 국민에게 고함』, 범우사, 1994).

 

▶ 많이 외우는 공부는 어떤 점이 좋겠습니까? 어떤 '위안'을 주겠습니까? 가령, 지하철 노선도를 줄줄 외우는 사람처럼 엄청나게 외우면 텔레비전 방송에 출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을 보고 "참 훌륭하구나" 하지는 않으며, 그 사람이 그것으로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 어떤 시인은 늘그막에 아침에 일어나면 곧장 세계의 산맥이나 강, 수도 같은 것들을 외운다고 했었습니다. 치매나 건망증 예방에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이들이 할 일은 아닙니다.

 

 

2006년 11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