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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가르친다는 구실로 방해할 것이 아니라, - 이 아이들 곁으로, 마음으로 다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57

 

 


가르친다는 구실로 방해할 것이 아니라,

- 이 아이들 곁으로,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는 이유 -

 

 

 

시 한 편 보시겠습니까?

 

 

아, 저, 하얀, 무수한, 맨종아리들,

찰박거리는 맨발들.

찰박 찰박 찰박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맨발들.

쉬지 않고 찰박 걷는

티눈 하나 없는

작은 발들.

맨발로 끼여들고 싶게 하는.

 

                            '비' - 황인숙(1958∼ )

 

 

▶ 이유 1. 저 쪽에서 그 복도를 사정없이 뛰어오는 한 여자 애를 보았습니다. 그걸 막으려고 두 팔을 벌리고 섰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걸음을 멈추기는커녕 '팔짝' 뛰어오르는 순간 두 팔로 제 목을 감았으므로 '우리'는 그만 더없이 다정한 사이가 되어 얼굴을 맞대었습니다. "조심해. 넘어지면 큰일이잖아." 귓속말을 하고 내려놓았습니다. 그 애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는 지금 바쁘다'는 듯 다시 뛰어갔습니다. 2층을 향해 계단을 올라갔으므로 1학년인 것 같았습니다. '생각'으로 살아온 교장은 '가슴'으로 살아가려는 그 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단순함과 초라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 이유 2. 곧 1교시가 시작될 텐데, 운동장 가의 계단에 침울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한 아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왕자처럼 생긴 그 1학년 아이는 한쪽 신발을 벗고 있었습니다. 까닭 없이 왼쪽 무릎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풀이 죽어 대답했습니다. 왼발을 질질 끌며 걷지를 못해서 들쳐업고 보건실로 가며 묻자 운동장의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담임 선생님께서 아시고 개구쟁이 아들을 둔 동네 아주머니처럼, 그 아이가 자신의 아들인양 쑥스러워하셨습니다. "탈이라면 너무 씩씩한 것이 탈인데, 그처럼 풀이 죽었다"고……. 왕자님도 무릎이 고장나면 그럴 수밖에 없겠지요. 더 중요한 것은, 개구쟁이가 없는 집단은 어른들이 편하기는 하지만 개구쟁이가 있어야 배울 수 있는 세상에 대해서는 배울 수 없게 되겠지요.

 

▶ 이유 3. 수학여행을 다녀온 6학년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정에는 모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고 하자 "일단 불은 끄고 소곤소곤 이야기만 하면 안 될까요?" 해서 융통성 있게 판단하라고 했더니 "교장 선생님처럼 말씀하신다"고 하더랍니다. 아이들을 대하는 제 태도가 그런 식이었는지는 모르지만(그것이 결코 잘못 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쨌든 저를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모든 면에서 늘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이렇게 앉아 있어도 그들에게는 다 보이기 때문입니다.

 

▶ 이유 4. 선생님들이 1학년 어느 교실에 모여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담임 책상 위에 놓인 아이들의 작품집 중 한 권을 집어 살펴보았습니다. 「휘파람과 개」라는 표제가 붙은 음악감상문집이었습니다. 방학 때의 그림일기처럼 그림을 그리고 서너 줄 느낌을 적었는데, 우선 맨 앞에 철해진 작품부터 보았습니다(그림은 보여드릴 수 없습니다).

 

저는 느낌이 무도회를 하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앞에 부분이 제일 기분이 좋고 상쾌합니다.(이소은).

 

훌훌 넘기다가 저 뒤쪽에서 몇 작품을 보았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이 작품들은 무작위로 한군데에서 본 것이므로 그중 잘 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나는 음악 중에서 제일 감동 받았다. 개가 휘파람을 불면 개가 짓는 게 신기하다. 나는 그 사람을 꼭 만나 보고싶다. 나도 그 사람을 만나서 음악과 진짜 그런지 보고싶다. 나도 그 사람처럼 되고싶다. 나도 그만큼 되면 사람들에게 감동 받게 하고싶다. 나는 그 사람이 자랑스럽다(안재형).

아주 재미있고 신나는 노래이고 가을에 부르는 노래 같고 가운데가 차분하고 개 짖는 소리가 재미있었다(김성수).

나는 노래를 들을 때 걷고싶었는데 아직도 걷고싶다. 그리고 내가 강아지를 키웠으면 좋겠다(문성준)

 

1학년 교사로서의 전문성이 없이는 이런 작품을 내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저의 신념입니다. 이 아이들에게 이것 이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자라 6학년이 되고,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 무엇을 쓰라거나 말해보라고 했을 때 어려워하고 망설인다면 그것은 우리가 잘못 지도한 결과입니다. 우선 우리들 교원들이 저지른 잘못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학부모 여러분께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까? 혹 '과외'니 뭐니 하고 부채질을 하시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최소한 - 별 자신이 없다면 - 아이들이 '그대로' 자라게 하고 훼방을 놓는 교사, 훼방을 놓는 부모가 되지는 않아야 할 것입니다.

 

 

2006년 10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