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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우리 학교 영재론 - 어떤 아이가 영재일까요?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84

 

 

 

우리 학교 영재론
- 어떤 아이가 영재일까요? -

 

 

 

20년쯤 전 교사직으로는 마지막 해로 어느 국립대학교 부설초등학교에서 1학년을 담임했습니다. 그 학교에서는 학년 초 1주일간은 학부모들이 의무적으로 아이들을 데려오고 데려가도록 했고, 그 기간에 '신입생 학부모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하루에 2시간 정도의 강의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장이 별안간 제게 이튿날의 강의를 맡겼습니다. 저는 그 강의는 당연히 교장이나 학교가 소속된 사범대학 교수가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고, 교사로서 강의를 맡게 된 건 제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교장이나 교수와 다른 특별한 발표를 하려고 단단히 준비해서 백 수십 명의 '엄마'들이 운집한 강당으로 갔습니다.


우선 "자녀가 천재나 수재라고 생각되시는 분은 손을 들어 보라"고 했습니다. '엄마'들은 미소를 띠고 웅성거리기만 하고 손을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1학년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모두 눈을 감게 했더니 놀랍게도 3/4 정도가 조용히 손을 들었습니다. 제가 그 날 그 결과로써 이야기한 것은 두 가지였습니다. '이처럼 3/4이 천재나 수재라고 인식하는 사실이 엉터리가 아니냐. 그럼에도 자신의 인식은 옳고 남들은 착각하고 있다며 끝까지 자신의 자녀는 천재라고 우길 거냐. 빨리 그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것과, '그러나 우리는 모든 아이의 개별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그 개별성에 대해서는, 제가 담임한 아이들이 제시한 수십 가지의 답을 보여주며 「토끼와 거북이」라는 우화에서 배울 점에 대해 우리가 배울 때는 '노력'이라고 답하면 그만이었지만, 그러한 사고야말로 쓸데없는 획일성이며 이제 그렇게 가르쳐서는 아이들을 망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 모두 '엄마'들에게는 충격으로 받아들여졌고, 그 반응으로 보아 제 강의는 성공을 거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제 만날 수도 없는 그 '엄마'들에게 너무 늦었지만 한 가지 이야기는 잘못된 것이었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올해 유치원에 다니는 외손자가 있습니다. 재작년 겨울이니까 녀석이 4세 때였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달라고 끊임없이 졸라대어 책장에서 세계 여러 나라 국기와 국민소득, 인구 등이 소개된 책을 골랐습니다. 참 딱딱한 내용이지만 적어도 국기들은 천연색이라는 것이 그놈의 눈길을 끌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 책을 주어 혼자 놀게 하려는 의도와 달리 오히려 그것이 화근이 되어 저는 몇 시간 동안 녀석에게 약 2백 나라의 국명, GNP(국민소득) 등을 읽어주어야 했고, GNP의 경우에는 '아주 잘 사는 나라' '잘 사는 나라' '보통' '못 사는 나라' '아주 못 사는 나라'의 5단계로 나누었는데, 만약 다음 번 설명 때 그 구분이 잘못되면 녀석이 용하게 알아맞히어 "할아버지, 아까는 못사는 나라였는데 왜 이번에는 아주 못사는 나라야?"하고 대어드는 통에 정신을 바짝 차릴 수밖에 없었으며, 드디어 녀석이 돌아갈 때는 제 부모에게 미리 각국의 GNP를 5단계로 구분한 것을 잘 알려주어 질문에 대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이 '코트디부아르'니 뭐니 하며 희한한 나라 이름을 중얼거리는 걸 보며 우리 가족은 "드디어 우리에게도 한 명의 영재가 태어났다"고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야무진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이내 알게 되었습니다. 서점에 가보았더니 그 또래 아이들이 고르는 책은 모두 그랬고, 사내아이들은 모두들 '파키케팔로사우루스'니 '티란노사우루스'니 하며 우리로서는 영 어색한 수십 가지 공룡 이름과 신생대니 고생대니 하는 시대구분까지 꿰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또 그런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 우리 가족은 '놀라운 세상'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TV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아이들을 보고 전혀 놀라지 않게 되었고, 성복동에는 그런 아이가 집집이 다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르치는 이 아이들은 모두가 영재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어떤 부문에서 영재인가를 잘 관찰하고 그러한 소질이나 적성을 인정하여 그 싹을 제대로 보듬어주고 잘 자라도록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할 게 아니라 그걸 해야 하는 당위성부터 찾아야 하며, 더구나 더 중요한 것, 우선하는 것은 그 아이의 생각부터 주의 깊게 들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저 교실의 선생님 앞에서 친구들과 함께 무엇인가 보고 듣고 읽으며 자신의 생각을 키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지난번 '공개수업' 때 보셨듯이 우리 선생님들은 "봐라,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노력이라는 거다. 그걸 잘 알아둬"라고도 하지 않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 이가 제일 뛰어난 생각을 했고, OO 이가 제일 잘 발표했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은 다만 우리 아이들이 생각할 시간을 주고 있으며, 가능한 한 그들의 모든 생각을 인정하는 일부터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아이들 중 잘 하는 아이들이 성공하도록 해주는 교육이 아니라 이 아이들 모두가 성공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신념을 지키며 여기에 있습니다.

 

 

2007년 5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