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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좀 가보라고 하기가 미안한 우리 도서실 - 앨빈 토플러의 방한 기사를 보며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86

 

 

 

좀 가보라고 하기가 미안한 우리 도서실

- 앨빈 토플러의 방한 기사를 보며 -

 

 

 

  앨빈 토플러(79세)가 우리나라에 또 왔습니다. 그는, 우리가 1980년대에 경탄을 하며 읽은 저 『제3의 물결』이라는 책을 쓴 미래학자입니다. 그가 그 책에서 현대사회의 특징을 표준화(standardization), 전문화(specialization), 동시화(synchronization), 집중화(concentration), 극대화(maximization), 중앙집권화로 요약하여 설명한 것은, 그러한 특징들을 막연히 당연한 것, 혹은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던 저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그가 우리나라에 자주 오는 것은, 아마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를 특히 좋아하기도 하고 따라서 여러 가지로 대접도 잘해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가 부럽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이번에는 또 어떤 말을 하여 우리에게 도움을 줄까 기대하기도 합니다.

 

  그가 이번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한 이야기를 몇몇 신문에서 살펴보았더니 자신을 '독서기계(讀書機械)'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앞으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고(思考)와 관련된 직업을 갖게 되며, 미래를 지배하는 힘은 "읽고, 생각하고,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하는 능력"이라고도 했답니다. 그는 또 학교는 단순히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지식을 주는 곳이 아니므로 모두 같은 나이에 학교에 들어가서 비슷한 것을 반복적으로 배우고 암기하는 현재의 학교는 공장 - 똑같은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 을 연상시킨다며 오늘날의 학교교육 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했다는데, 그러한 비판은, 사실은,『제3의 물결』에서 누누이 강조했던 내용으로, 오늘날의 교육은 여전히 - 어떤 이들은 「붕어빵 교육」이라고 비아냥거리듯이 - 그러한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는 취지로 거듭 강조했을 것입니다.

 

  '독서기계'라, 좀 비인간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단어지만, 그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멋진 표현입니까. 그 표현을 우리 아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어떻습니까. 아이들이 학교에 오는 이유야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이유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들어보라고 하면 결국 책을 읽으며 공부를 하러 오는 것 아니냐는 대답이 가장 많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아이들이 모두 똑같은 내용의 책을 똑같은 속도로 읽고 똑같이 해석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앨빈 토플러가 지금까지 강조해온 단어인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독서, 즉 개인별로 각각 그 개성과 능력을 살려 수준 높은 독서를 하는 도서관의 모습을 상정하게 됩니다.

 

  "왜 이제 가?" 해거름에 귀가하는 아이를 보고 물었습니다. "도서실에 있었어요." "뭐 했는데?" "책 읽었지요, 뭐." 도서실 정리를 도와주었는가 싶어 거듭 물었는데 그렇게 대답했으므로 돌연 조바심을 느꼈습니다. 어떤 조바심인가 하면, 그 아이에게서 이런 대답이 나올 경우가 떠오르는 조바심입니다. "이제 우리 학교 도서실에는 읽을 만한 책이 없어요."

 

  여름방학에 출근하여 도서실에 가보면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곳보다 더 좋은 피서지는 없어요." 자녀와 함께 책을 읽은 어떤 어머님이 한 말씀입니다. 그런 여름날 우리 학교 도서실에는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러한 현상을 보고 '참 좋구나' 하지 못했고, 사실은 오히려 우울해졌습니다. '이러니 우리 아이들에게 도서실에 자주 가보라고 하기가 불가능하구나.'

 

  일전에는 어떤 아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우리 도서실에 어떤 책이 더 있으면 좋겠니?" 이 글을 읽고 있는 학부모님께서는 얼른 대답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아이는 교장이 물었으므로 대답해주면 어떤 효과가 있겠구나, 하고 생각한 듯이 얼른 대답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과학과 환경에 관한 책이 더 있으면 좋겠어요. 문학도 좀더 많으면 좋겠어요." 이런 아이들에게 어떻게 우리가 교과서 공부나 잘 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1년에 그저 한두 권의 책을 무슨 선심이나 쓰듯 사주고는 그것으로 부모로서의, 학교로서의 구실을 다했다고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교실 한 칸 반 짜리 우리 '도서실'을 세 칸 짜리 '도서관'으로 확장하려는 계획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여 지금은 "도서실에 좀 자주 가보라"는 말도 못하는 이 부담감을 얼른 털어 버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1만 권도 안 되는 장서가 3∼4만 권으로 늘어난 도서관, 저쪽 구석에서 소그룹의 토론이 이루어져도 이쪽에서는 그리 시끄럽지 않은 도서관, 아이들과 어른들이 우루루 몰려와서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 어른들이 볼 만한 책도 제법 있어서 어느 열성 어린 도우미가 야간에도 문을 열겠다고 나설 수 있는 도서관, 영화감상이나 세미나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능한 도서관, 책을 읽다가 잠을 잘 수도 있고, 유치원생이나 1학년을 데리고 와서 낭독회를 열 수도 있는 도서관이 되겠지요. 그 도서관이 문을 여는 날, 누구보다 이 아이들이 참 좋아할 것입니다. 좀 기다려 주십시오.

 

 

2007년 6월 5일.

 

                                                                                        

 

  추신 : 개념상 도서실을 '정보자료실'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렇게 부르면 더 멋스럽기도 할지 모르지만, 글쎄요, 저는 아무래도 '도서관'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 '국회도서관' …,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