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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불쌍한 엄마들' '불쌍한 아이들' - 성복 엄마들, 성복 아이들은 어떻습니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85

 

 

 

'불쌍한 엄마들' '불쌍한 아이들'
- 성복 엄마들, 성복 아이들은 어떻습니까? -

 

 

 

5월에는 '엄마'들에 대한 신문기사가 부쩍 눈에 띄었습니다. 어느 신문은 '간부' 의 엄마는 어머니회 참여, 교실 환경미화, 급식과 교통안내 당번, 소풍날 담임 도시락 마련 등 그야말로 수업만 안 할 뿐이지 학교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온갖 궂은 일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라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특목고 대비반 등 각종 학원 정보를 파악해야 하고, 운전기사 겸 매니저 노릇을 해야 하며, 1학년 때는 엄마가 함께 하거나 준비해주어야 할 과제가 많아 초보 학부모들은 정신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아이의 출산, 양육, 교육이 오로지 엄마의 몫인 우리 사회에서 엄마는 종신범이자 무기수라 하기도 하고, "아이가 무사히 대학에 들어가니 면죄부를 받은 것 같다. 아이의 성적이 엄마의 성적이고, 키가 작거나 무슨 문제가 생겨도 몽땅 엄마의 책임이어서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어느 엄마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그 기사의 제목이 바로 '불쌍한 엄마들'이었습니다(경향신문, 2007. 5. 24).


다른 신문에는, "잘나가는 아이를 둔 엄마를 쫓아가려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어이없는 현실"을 이야기한 어느 엄마가 자조적으로 소개한 '대한민국 열혈 부모의 5대 덕목', ① 해외연수라도 다녀오고 싶어할 때 현금을 동원할 수 있는 마이너스 통장, ② 대중교통은 컨디션 조절에 해로우므로 여러 학원을 편히 데려갈 수 있는 자동차와 운전실력, ③ 따로 관리하지 않아도 좋은 체력, ④ '아이들 시험기간에는 오지 말라'고 해도 이해해주는, 한없이 너그러운 친정과 시부모님, ⑤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내 딴생각을 못하게 하는 독심술을 열거하고 있었습니다. 그 엄마에 의하면 요즘은 토플 접수 여부에 따라 엄마의 유·무능이 갈린답니다(중앙일보, 2007. 5. 23).


이러한 기사를 보며 저는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우선, 우리나라는 '할당'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 급식당번, 교통지도 당번 같은 건 얼른 없애는 방안을 강구해야 하지만, 이른바 교육선진국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우리에게 우수한 사례로 소개되는 학부모의 학교교육 참여까지 한꺼번에 비난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떤 분야에서 이른바 '소비자'가 가만히 앉아 주는 대로 받기만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까? 그런 일이 있어도 "도대체 뭐 하는 짓이냐!"고 항의하지 않는 일이 있습니까? 학교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부모는 직접적인 관심을 가질 수 있고,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관찰과 참여와 지원을 하는 것이 당연한 권리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꼭 이루어져야 할 또 한가지는 직업을 가진 부모들이 다른 부모들의 그러한 참여로 피해의식을 가지지 않도록 해주어야 하며, 그분들도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대한민국 엄마들 중에는 위의 기사들이 사실일 만큼 분명 '불쌍한 엄마들'이 있으며, 그 엄마들이 불쌍하다면 그들의 자녀 또한 틀림없이 '불쌍한 아이들'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렇게 간섭하면 그 간섭만큼만 자라고 더 이상 성장할 수는 없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언젠가 유리병 속의 벼룩 이야기를 했지만,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다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조그마한 실수나 실패에도 노출되지 않고 안정적으로 대학에 가도록 철저히 관리되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이 엄마의 그늘 외에 그 무엇을 경험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이른바 '대치동, 목동 엄마들'처럼 하겠다면 그들에게 밑질 수밖에 없지만, 아예 따라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걸 알아야 합니다. 한정된 생활 속에서 한정된 경험을 한 아이들은, 다양한 생활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한 아이들이 장차 이 세상의 흐름을 주도할 때 그 경쟁력, 그 진취성, 그 창의성을 따라갈 수 없으므로 그들의 그늘에서 주어진 일이나 하고 있어야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대학도 필요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오늘날 IT 업계를 주도하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도 각각 포틀랜드의 리드대 1학기, 하버드대 2년 중퇴자들입니다. 월드스타가 된 우리나라의 어느 유명 가수는 오늘 수백 명의 스태프를 데리고 그의 얼굴이 그려진 전세항공기를 타지만, 오디션에서는 18번이나 떨어졌었답니다.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나 그 가수나 엄마가 따라다니며 송곳 꼽듯이 관리하여 키운 것은 아니었고, 더구나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쫓겨난 적도 있습니다. 실패해보지 않고 무얼 하겠습니까. 최근 「유에스에이투데이」는 자녀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알파맘'과 자녀교육에 조급하지 않고 자신의 수양에 더 큰 관심을 갖는 '베타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했다는데, 그것은 교육관의 차이일 뿐 적어도 그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답니다. 실제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많고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높을수록 수능점수가 높더라는 통계도 있지 않습니까.


대치동, 목동 엄마들의 '비법'? 교육에 무슨 비법입니까. '불쌍한 엄마들'은 분명 불쌍하지만, 아이들도 우리처럼 여유롭게 살고싶어한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덜덜 볶거나, 아이들이 '엄마와 함께 지내는 행복'까지도 유보하고 다른 나라로 내보내는 그 마음, 그 정서, 아니면 그 현실이 불쌍할 뿐입니다.

 

 

2007년 5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