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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파란편지 모음 2

조기유학을 떠나는 이유 - 우리는 무얼 어떻게 잘못 가르치고 있을까요 -

by 답설재 2007. 8. 29.

성복 학부모님께 드리는 파란편지 87

 

 

 

조기 유학을 떠나는 이유
- 우리는 무얼 어떻게 잘못 가르치고 있을까요 -

 

 

어느 기관의 자문회의가 끝나고 식사를 하면서 맞은편에 앉은 한 변호사에게 질문해보았습니다. "보시기에 우리 교육의 현실이 어떻습니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습니다. "저도 4년 간 교사생활을 했습니다. 그 경험으로 말해보면, 우리의 교육방법은 연역적입니다." 그는 이어 연역적이라고 한 이유에 대해 몇 가지 사례를 들었습니다. 요약하면 학생들이 암기해야 할 핵심을 가르쳐주고는 끝없는 문제풀이에 들어간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어느 일간지의 1면 기사 「1020 인재들 한국 탈출한다」의 핵심은 "무조건 달달 외우는 시험공부 싫어" "반복해 문제만 푸는 수능공부에 지쳤다"는 내용이었습니다(중앙일보, 2007. 6. 5).


귀납적 추리는 개개의 특수한 사실에서 출발하여 그 사실들을 연구함으로써 보편적 법칙·원리를 발견하는데 비해, 연역적 추리는 일반적 원리를 바탕으로 개개의 사실을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아주 간략한 예를 들면,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라는 개념을 알고 여러 시장에서 어떻게 물건을 사고파는지 살펴보는 방법은 연역적이고, 여러 시장을 관찰한 결과로써 시장의 개념을 터득하게 되면 귀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은, 제대로만 가르친다면 연역적이라고 하여 나쁠 것은 없으며, 학습과제의 성격에 따라 어떤 것은 연역적으로, 또 어떤 것은 귀납적으로 가르치면 될 것입니다. 그 변호사가 '우리는 연역적으로 가르치는 경향'이라고 한 것은, 교과서에 담긴 개념을 이론으로 대충 설명해주고 나면 학생들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전쟁처럼 문제를 푸는 한없는 싸움에 빠져들어야 한다는, 뼈아픈 지적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교과서의 중요한 내용을 잘 파악하여 암기하는 데 중점을 두는 우리나라 학생들은 초·중·고등학생 때는 미국 학생들보다 월등한 성적을 거두는데 비해 정작 대학에 가면 뒤지고 만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것은, 미국 학생들은 귀납적으로 '차근차근' 실제 사실들을 잘 살펴보는 공부를 함으로써 좀 더디지만 그 기반이 아주 튼튼해져서 결국은 성공한다는 이야기일 것입니다. '차근차근 공부한다'는 것은 실험, 관찰, 실습, 노작, 토론·토의, 작문, 견학 등 체험을 중심으로 한 학습을 해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과서와 문제집에 의존하는 학습과 체험중심 학습은 결국 어느 쪽이 그 성과가 클 것인가는 자명한 일입니다.


"입시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라면 아그리파나 줄리앙의 소형 석고상 따위는 눈을 감고도 그릴 수 있다. 그것도 제한시간이 있기 때문에 누가 가장 완벽하게 암기한 대로 빨리 그릴 수 있느냐가 현재 한국 입시미술의 관건이다." 어느 대학생은 '주입식 미술'의 폐해를 이렇게 지적했습니다. 그 학생은 또 미술을 이렇게 공부한 학생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미술은 예술이므로 기술적인 면보다는 창작능력을 강조하는 교육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므로 당황하게 된다고 했습니다(조선일보, 2007. 6. 7, 독자투고).


우리는 그러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그러한 교육을 시키고 있으므로, 학부모들도 그들의 자녀가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때부터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실패의 경험은 전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성공의 가도만 달리게 해주어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입니다. 오죽하면 '선행학습'이니 뭐니 하며 학교에서 배우기 전에 학원에 가서 미리 배우게 하겠습니까. 말하자면 사소한 일이거나 아니거나 간단하거나 아니거나 실패하는 꼴을 볼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전학 온 학생들을 면접하는 교장실에 따라 들어온 어머니들은 "이름이 뭐냐?" "왜 우리 학교로 전학 왔지?" 같은, 말문을 열기 위한 질문에도 아이가 교장 앞에서 실수를 저지르기 전에 얼른 자신이 대답을 대신해주어야 직성이 풀립니다. 그렇게라도 도와주어야 속시원하고,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그렇게 도와주겠다는 각오를 가진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만약 다른 나라에 유학을 가게 된다면 그러한 교육방법이 통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이 나라 교육은 대한민국 교육과 확실히 다르다"며 우리 교육을 무조건 매도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말하자면 우리는 학교교육의 방법이 신통하지 못하고, 학부모들의 사고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기유학을 보내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러한 교육을 평가하고 그러한 특단의 결정을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우리 교육현실을 고치려면 어느 한쪽만 정신을 차려서는 불가능합니다. 각 학교의 교장과 교사들, 교육청의 행정 관행, 교육부의 입시제도와 각종 정책, 학부모들의 생각 등 모든 것이 다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이 실현되려면 어느 한쪽을 원망하거나 비판하는 것으로는 전혀 불가능하고, 예를 들어 온 국민이 다 관심을 갖는 '교육대토론회'라도 대대적으로 개최해나가야 하겠지만, 그런 제안을 하는 세력도 없습니다. 만약, 제가 그런 제안을 한다면 모두들 그냥 웃고 말거나 듣지도 않겠지요.


그러므로 저는 우리 학교 교육이라도 고쳐나가고 싶습니다. 저 좀 도와주십시오. 어떻게 돕느냐 하시면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잘 바라보시고 '저렇게 하는 것이 옳겠구나' 하시거나 "그건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면 됩니다.

 

 

2007년 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