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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우스운 스승의 날

by 답설재 2020. 5. 18.

 

 

 

 

스승의 날이란 게 지나갔습니다.

 

누가 그런 날을 정해달라고 했을까요?

1969년에 교사생활을 시작하면서 당장 '뭐 이런 날이 다 있나?' 했지요.

낯간지러워서요.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는가요?

"누가 당신 좋으라고 정했나?" 하면 그것도 그렇고, '꼴에 한때 선생이었다고.' 해도 그러니까 그냥 '난 상관도 없네~' 하고 지나가면 그만일 수도 있으니까요.

"스승님!" 하고 엎어질 사람이나 '우리 선생님!' 하고 절절하게 그리워할 사람도 있을 것 같지 않고요.

 

그렇게 오십여 년……

퇴임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그날만 되면 아침부터 전화가 오거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가 울리거나 했습니다.

 

'얘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연락했을까? 아직 죽지 않았구나! 나도 곧 늙을 텐데 이젠 함께 늙어가겠네, 하고 생각할까? 대화중에 제정신인지도 알아보고 싶겠지? 약간 웃기는 소리를 해버리면 어떻게 될까? 나중에 저희들끼리 킥킥대겠지?'

 

함께 근무한 적이 있는 사람이 연락해도 마찬가지였지요.

묻는 대로 또박또박 답만 하면 통화가 단숨에 끝나버리고 싱거울 것 같아서 괜히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재미있는 척 이쪽에서 먼저 꺼내면 저쪽은 마지못해 대화를 이어가지만 '아, 이런! 간단히 안부나 물으려고 했더니 옛날 얘기를 꺼내서 물고 늘어지잖아! 앞으로는 전화 같은 건 아예 하지도 말아야지.' 할 수도 있거든요.

백발백중 "건강은 괜찮으시죠?" 하면, "건강만 괜찮지요." 하고, 또 그렇게 한 해가 가는 거죠.

 

지금 교단에 있는 분들은 어떤가요?

올해는 어떻게 지내셨지요?

비대면사회가 되어서 그 영향이 없지 않은가요?

 

심각하게 여길 것까진 없겠지요.

또 이렇게 저렇게 변화하며 지내게 될 테니까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를 찾는 전화나 문자메시지가 ‘코로나 19’라는 철조망을 뚫고 기어이 내게로 도착한 것 같은 느낌.......

 

염치없지만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나를 가르친 분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죽었는지 혹 살아 있는지도 모르잖아. 함께 근무한 사람들도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고 있잖아. 그들에게서도 배우며 지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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