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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선생님11

우리 선생님의 실종 (2022.5.27) 선생님들이 학부모들에게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는 건 단지 교육적 차원이었는데, 학부모 중에는 그 정보의 취득이 무슨 대단한 권한인 양 착각한 경우가 흔했다. 수업 중이든 회의 중이든 퇴근해서 휴식 중이든 걸핏하면 곤혹스럽게 하고 심지어 반말을 ‘찍찍’ 해대기도 해서 2019년 9월, 마침내 그런 행위를 교권침해로 규정했다. 서울교육청에서는 “희망하지 않을 경우, 전화번호를 비공개”로 해서 사생활을 보호하기로 했고 경기도에서도 그 필요성(사생활 침해, 인맥 공개, 부정 청탁 우려 등)과 법적 근거(개인 정보 보호)를 들어 교사의 연락처를 알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희망하지 않을 경우” 혹은 “알리지 않아도 된다”였지만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전화번호를 거의 알려주지 않는다. 그 대신 e알리미, 아이알리미,.. 2022. 5. 27.
지금 아이들 곁에서 퇴근했어요. 컴퓨터는 꼴도 보기 싫어서 폰으로 답장 써요, 선생님. 오후에만 확진자 2명의 연락을 추가로 받고... 그러고 나니 갑자기 제 목이 아픈 것 같고 기침이 나는 것 같았어요. 착각이었지만요. 꼭 걸릴 것만 같이 위태롭고, 이미 우리 학교 교사 확진도 걷잡을 수없이 막 내달리고 있어요. 언제 걸리는지 때를 기다리는 느낌이에요. 사실상 자포자기 상태로 교실만 지킬 뿐이에요. 이게 정점이라고, 이젠 끝물이라고, 이젠 다 왔다고 말해주길 바라요. 아니 말 안 해도 그냥 우리는 이렇게 여기 있을 거예요. ​ 선생님, 어느 신체 기관보다도 눈은, 선생님께 유의미한 부분일 텐데, 말썽이 나면 선생님 속상하실 것 같아요. 장착하면 시력 2.0으로 보완해주는 VR 기계 같은 것, 발명해서 끼고 저의 노안도 치.. 2022. 4. 4.
눈부신 만남 1992년~1996년 사이에 제겐 눈부신 만남의 순간이 일어났습니다. 첫 발령받은 병아리 교사에게 학교란 얼마나 미로 같은 지, 무형의 교육 현장은 또 얼마나 헤매게 하는지 우왕좌왕! 갈팡질팡! 시계가 도는지, 제가 도는지 알지 못한 시간들이 흐를 때 대선배님 한 분이 나타나셨죠. 지금도 변함없는 웃음을 그때도 얼굴 가득 띄우시고, 지금도 따뜻한 그 음성을 그때 역시 한 톤도 올리지도 내리지도 않으신 채 "괜찮아요." "~~~ 하면 되지요." "아이들은 옳아요." "아이들이 예쁘죠?" "아이들이 대단하죠?"......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네주셨죠. 교사와 아이들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영원까지 사랑하는 사이임을 일깨워주시려던 것임을...... 20년 경력이 된 지금에야 비로소 .. 2022. 3. 22.
짜장면 한 그릇을 먹어도 엊그제 저녁에 1978년에 담임한 달동네 아이 S가 전화를 했습니다. 57세쯤? 손주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전기공사 일을 한다고 했고, 서울에서 일해 보라는 제의가 왔는데 돈을 엄청 더 벌 수 있고 선생님도 만나볼 수 있을 텐데 '서울 일을 하겠나' 싶더라고, 자신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새 또 한 해가 가서 설을 앞두고 있고, 서너 시간 운전해서 서울 가면 선생님 만나 짜장면 한 그릇을 먹어도 선생님은 괜찮다 하실 텐데 그것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 J에게서는 자주 전화 오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내게 전화를 하려고 술 한 잔 마셨거나 술 한 잔 하니까 전화를 하고 싶었거나 했을 것입니다. 이제 얼굴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 아이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애착이 깊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 2022. 1. 24.
「손바닥 편지」 손바닥 편지 / 이화주 "어제 집에 가서 숙제 안하고 뭐 했니?" "원교 엄마가 놀러 오라고 하셨어요." "그럼 저녁에는 뭐 했니?" "아빠랑 개구리 구워 먹었어요." 선생님은 아무 말도 안 하셨지만 자꾸 자꾸 미안해서 살며시 다가가 선생님 손바닥에 편지를 썼다. 우리 선생님 방긋 웃으시더니 내 손바닥에도 간질간질 답장을 써 주셨다. '선생님도 너 좋아해.' 나무늘보라는 분이 설목의 카페《오늘의 동시문학》(2021.5.15)에 소개한 동시입니다. 이화주 동시집 《손바닥 편지》(아동문예, 2005)의 표제작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던 시간이 떠오릅니다. 사라진 세월입니다. 2021. 5. 18.
우스운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이란 게 지나갔습니다. 누가 그런 날을 정해달라고 했을까요? 1969년에 교사생활을 시작하면서 당장 '뭐 이런 날이 다 있나?' 했지요. 낯간지러워서요.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는가요? "누가 당신 좋으라고 정했나?" 하면 그것도 그렇고, '꼴에 한때 선생이었다고.' 해도 그러니까 그냥 '난 상관도 없네~' 하고 지나가면 그만일 수도 있으니까요. "스승님!" 하고 엎어질 사람이나 '우리 선생님!' 하고 절절하게 그리워할 사람도 있을 것 같지 않고요. 그렇게 오십여 년…… 퇴임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그날만 되면 아침부터 전화가 오거나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신호가 울리거나 했습니다. '얘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연락했을까? 아직 죽지 않았구나! 나도 곧 늙을 텐데 이젠 함께 늙어가겠네, 하고.. 2020. 5. 18.
"사장님!" 자주 가던 식당에 예약 전화를 했더니 난데없이 "사장님!" 어쩌고 했습니다. 그동안은 "어르신"이었기 때문에 영 쑥스러웠습니다. "아니, 저 모르시겠습니까?"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누구누군지……." 나는 "사장님!"이 싫습니다. 사장이라니! 수만 명 이상을 거느리는 사장님에서부터 서너 명의 직원을 둔 사장님까지 천차만별의 사장이 있고, 더구나 혼자서 혹은 부부가 자영업을 하는 경우의 사장도 많으니까 "사장님"은 편리하게 통용되는 호칭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 서울 거주자들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하거나 더 많은 사람을 부를 때 남성에 대해서는 '아저씨' '선생님' '사장님', 여성에 대해서는 '언니' '여기요' '이모'라는 호칭을 주로 사용한다는 뉴스를 본 적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날 점심시간, 옆 자리의 한.. 2017. 7. 11.
"선생님, 죽지 말아요!" "선생님, 죽지 말아요!" 향기(香氣)와 향수(鄕愁) : 아이들이 커피 찌꺼기로 방향제를 만드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전철역으로 들어가다가 저 아이들 냄새가 풍겨서 곁으로 다가가 한참동안 바라보았습니다. Ⅰ 어느 해안도시에서 지금 비행기(아니면 기차, 아니면 배, 배도 아니면 .. 2015. 4. 12.
W.G. 제발트 『이민자들』Ⅱ - 교사 파울 W.G. 제발트 소설 『이민자들』 이재영 옮김, 창비 2008 - 파울 베라이터 : 어떤 눈으로도 헤칠 수 없는 안개무리가 있다 - Ⅰ 소설 『이민자들』의 네 이야기 중에서 둘째 편은 파울 베라이터라는 아름다운, 독일인 초등학교 선생님 이야기다. 아이들에게는 '모범적인 형처럼, 그들의 일원처럼' 느껴지던 그 선생님이 1983년 12월 어느 날, 막 일흔네 번째 생일을 지내고, 말하자면 그냥 살아도 곧 세상을 떠나게 될 적지 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버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그의 억울한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파울 베라이터는 이런 선생님이었다. 파울의 전임자는 엄하기로 악명이 높던 호르마이어 선생님이었는데, 금지된 짓을 하다가 그에게 적발된 학생들은 몇 시간 동안 모난 장작 위에 무릎 꿇고 .. 2012. 7. 22.
'선생님'이라는 이름 '선생님'이라는 이름 - 스승의 날에 생각해본 '선생님'- ♬ 식당에서 종업원을 부르는 걸 보면 천차만별이고 때로는 '가관(可觀)'입니다. 사실은 이런 비판을 하면서도 어떻게 부르는 게 좋을지 판단이 되지 않아서 좋은 제안을 하기가 어렵고 거의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스스로의 무지(無知)는 생각도 않고, 우리말의 호칭이 그리 발달되지 못한 건 아닌지 공연한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어이, 종업원!" 그렇게 부르면 당장 '저 사람이 화가 났나?' 아니면 '저놈이 무슨 재벌이거나 대단한 권력을 가졌나? 왜 저렇게 잘난 척하지?' 하고 백안시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상냥하게 "종업원?" 하고 부른다 해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볼 건 뻔합니다. "종업원님!" "보소!" "헤이!" "이봐요!" "여기요!".. 2012. 5. 12.
스승의 날 Ⅰ(훈화) 스승의 날입니다. 무슨 위원회인가 하는 곳에서 우리 교사들의 자동차 트렁크 좀 보자고 오는 거나 아닌가 싶기도 했고, 다른 어떤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하나, 교장으로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날입니다. 며칠 전, 호기롭게, 이 골짜기의 학교에서 그런 일이 생기면 나도 그냥 있지 않겠다고 했지만 막상 그렇게 되면 참 곤혹스러울 것입니다. 다행히 아침나절에 어느 교사로부터 메일 한 통을 받은 것 말고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좀 쑥스러워하며 소개합니다). 교장선생님. 오늘 교장선생님 훈화 말씀을 듣고 저의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성남의 모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을 하신 선생님이 구리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하실 때 전 그 옆에 있는 부양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신출내기 교사였습니다. 이웃학.. 2009. 5.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