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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지금 아이들 곁에서

by 답설재 2022. 4. 4.

 

 

 

퇴근했어요. 컴퓨터는 꼴도 보기 싫어서 폰으로 답장 써요, 선생님.

오후에만 확진자 2명의 연락을 추가로 받고... 그러고 나니 갑자기 제 목이 아픈 것 같고 기침이 나는 것 같았어요. 착각이었지만요. 꼭 걸릴 것만 같이 위태롭고, 이미 우리 학교 교사 확진도 걷잡을 수없이 막 내달리고 있어요. 언제 걸리는지 때를 기다리는 느낌이에요. 사실상 자포자기 상태로 교실만 지킬 뿐이에요. 이게 정점이라고, 이젠 끝물이라고, 이젠 다 왔다고 말해주길 바라요. 아니 말 안 해도 그냥 우리는 이렇게 여기 있을 거예요.

선생님, 어느 신체 기관보다도 눈은, 선생님께 유의미한 부분일 텐데,

말썽이 나면 선생님 속상하실 것 같아요. 장착하면 시력 2.0으로 보완해주는 VR 기계 같은 것, 발명해서 끼고 저의 노안도 치료하고 싶어요. 선생님도 하나 드리고...

선생님, 꽃이 활짝 피어서 가슴이 벙긋벙긋거려요. 올봄에 아이들과 학교 뜰을 거닐며, 제가 개나리라고 생각하고 자세히 보지 않았던 꽃이 영춘화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이 나이에. 바닥에 떨어져 문드러져 가는 목련 갈색 잎은 너무 처참하고, 위를 보면 아직 살아있는, 특히 흐드러지기 전의 봉긋한 모양일 때의 고고함은 굉장히 우아해서 한참을 올려다봐요. 꽃처럼 저렇게 환했던 나는 언제였을까도 생각해요.

선생님, 저는 잘하고 있어요. 저는 잘 지내요. 칭찬도 필요 없고 욕도 먹지 않는 사람으로, 딱 한 자리만 지켜내자는 마음으로 버티고 있어요. 언젠가 선생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설 수 있도록 그렇게 지내고 있을게요.

사랑하는 선생님,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 영문 필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예요. 글 속 모리 교수님이 자신에게 루게릭병이 없는 24시간이 주어진다면 뭘 하겠느냐고 물으니, 침대에서 일어나기, 스트레칭하기, 가족들과 소박한 음식 즐겁게 먹기, 친구랑 얘기하기, 걸어서 정원의 나무와 새들 보기, 근사한 저녁을 먹고 멋진 파트너와 춤을 추기, 그리고 귀가해서 잠자기를 하고 싶대요. 그게 다야?... 반문할 정도로 소박한 걸 하고 싶다는 모리 교수님의 말을 읽고, 그 평범한 일상을 해내는 지금을 덜 불평하려 해요. 선생님께 소식을 전하는 이런 이벤트의 시간은 굉장히 특별하기까지 하구요. 저의 친구로 거기 계셔주셔서 감사해요. 많이 많이 사랑해요,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