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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오이'와 '이오'

by 답설재 2022. 3. 20.

DAUM 이미지(2022.3.19. 늦은밤)

 

 

교사 시절에는 늘 뭔가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사범대학에 편입해서 2년을 더 배웠고 28학점인가 특수교육 과목들도 이수했습니다.

그룹별로 시각장애, 청각장애, 정신지체, 지체부자유, 정서장애 등 특수교육 분야별로 학교도 방문해서 교육 현장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정신지체아들의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한 원로교사로부터 들은 얘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았습니다.

"어떤 단어가 읽고 쓰기에 가장 쉬운지 아십니까?"

특별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고, 곧 그 교사가 답을 알려주었습니다.

"오이입니다. (공책에 뭔가 쓰고 있는 두어 명 아이들을 가리키며) 이 아이들은 한 학기 5개월 내내 오이만 씁니다. 처음에는 실제로 오이를 갖다 놓고 쓰게 했습니다. 방학 때도 오이를 써오라고 숙제를 냅니다. 그런데 2학기 개학해서 오이를 쓰게 하면 아예 쓰지 못하기도 하고 '이오'라고 쓰기도 합니다."

 

그때 그 교사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감동했었습니다.

'아, 아이들을 이렇게 힘들게 가르치는 교사들도 있구나. 특별한 장애가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는 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구나. 아이들이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걸핏하면 멀쩡한 아이들을 꾸중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구나.....'

 

그때 그 교사를 만난 것은 내 교직 생활에 분명 보탬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그 교육방법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1학기 내내 오이를 쓰게 하다니! 아무래도 그건 교육이 아니라 노동, 그것도 단순노동에 지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걸 교육이라고 하고 있다면 그런 교육쯤 누가 못하겠습니까? "얘들아, 오이를 써라!" 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약 정신지체아를 가르친다면 나는 그까짓 오이를 쓰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으므로 하루하루 한 시간 한 시간 일반학교의 저 아이들보다 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을 것입니다. 그 아이들은 정신지체이기 때문에 더 다양하게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더 다양한 삶을 살아야 할 사람들인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가르치고 배우는 것, 그게 삶이고, 삶이 곧 교육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