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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교장 훈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간단히..."

by 답설재 2022. 10. 20.

 

 

 

운동장 조회 시간이었다. 나가지 않아도 아무도 못 알아챌 거라 생각하고 몇 번 안 나갔다가 주의 쪽지가 날아와서 요즘은 얼른 나가는 은영이었다. 방송으로 하면 딴짓이라도 할 텐데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은 꼭 화창했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은 어째서 시대가 바뀌어도 이렇게 늘 재미가 없을까. 교장 선생님 대상으로 누군가 재미있게 말하기 연수 프로그램을 좀 짜든가, 그도 아니면 짧게 말하기라도 하도록 방침이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은영은 투덜거렸다. 어쩌면 웬만해선 재미있는 사람들이 교장이 못 되는 건지도 모른다. 드물긴 해도 어딘가에는 분명 재밌는 교장 선생님이 있는 학교가 있을 텐데 다음번에 취직할 때는 알아보고 해야겠다. 그런 얘기를 얼핏 했더니 인표가 "우리 집안 아저씨예요. 까지 마세요." 해서 뜨악했더랬다. 좋지도 않은 학교 뭐라고 족벌 경영이냐, 빈정거리고 싶었지만 꾹 참고 디저트를 먹었다.

 

 

정세랑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민음사 2017) 205쪽에 나온다.

나도 교장을 해봤지만 절묘한 표현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 어째서 시대가 바뀌어도 이렇게 늘 재미가 없을까.(그러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도 그랬는데 지금도 그렇다니, 헐~)

- 교장 선생님 대상으로 누군가 재미있게 말하기 연수 프로그램을 좀 짜든가.(정말 그래! 수많은 연수 프로그램이 있는데 왜 그 절실한 프로그램은 없을까...)

- 그도 아니면 짧게 말하기라도 하도록 방침이 내려왔으면 좋겠다.(맞아! 교장들은 방침을 좋아하고 방침에 대해서는 잘 따르거든.)

- 어쩌면 웬만해선 재미있는 사람들이 교장이 못 되는 건지도 모른다.(적성이라는 게 있지. 요즘은 MBTI도 있고. 꼭 그런 사람이 교장이 되겠지.)

- 드물긴 해도 어딘가에는 분명 재밌는 교장 선생님이 있는 학교가 있을 텐데 다음번에 취직할 때는 알아보고 해야겠다.(뭐 알아볼 수도 있겠지?)

 

내가 퇴임한지는 오래됐고 이 소설도 이미 5년 전에 나왔으니까 지금은 달라졌을까? 아이들이나 선생님들이 교장 훈화를 잘 듣고 있을까? 재미있어할까? 재미있다고 더 얘기해달라고 조르기도 할까?

고정관념이라는 게 있지. 그래서 한번 찍히면 그 인식을 바꾸기가 힘든 것일까? 혹 아직도 그런 교장이 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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