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수학 공부가 싫다고 할 때(수학이란 본래 그런 공부인지 알 수는 없고, 수학 교육은 아이들이 너무 많이 혹은 지나치게 수학을 좋아할까 봐 일부러 따분하게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이런 얘기가 있지" 하고 소개해 주었더라면 싶은 이야기가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 수련사가 수도원 본관에 있는 장서관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해 몰래 잠입하고서도 우왕좌왕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이런 장면도 있다. 바늘자석 이야기에 이어서 나오는 장면이다(347).
「사부님, 그럼 가시지요. 세베리노에게는 그 기적의 돌이 있습니다. 이제 물과 물그릇과 전피만 있으면 됩니다.」
나는 흥분에서 떠들었다. 사부님은 내 어깨를 낚아챘다.
「가만……. 까닭을 모르겠다만, 나는 이 도구를 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랍 광물학자의 지시대로 만들기만 하면 제대로 말을 들을 것 같은 기분이구나. 철학자가 가르치지 않아도 농부가 쓰는 낫을 그대로 본떠 만들면 제 몫을 하지 않더냐? 걱정스러운 것은 그 미궁 안으로 어떻게 등잔과, 물그릇을 가지고 다닐 수 있느냐, 하는 것인데……. 가만있자……. 좋은 생각이 하나 있기는 하다. 우리가 미궁 밖에 있더라도 이 도구는 북쪽을 가르쳐 줄 테지?」
「그렇습니다만, 태양 아니면 별이 있으니까 밖에서는 필요가 없습니다.」
「안다, 나도 안다. 허나 이 도구가 미궁의 안팎에서 기능할 수 있는 바에 우리 머리는 왜 아니 되겠느냐?」
「머리라고 하셨습니까? 물론 머리라면 안에서도 돌아가고 밖에서도 돌아가기는 합니다. 사실, 밖에서라면 본관 장서관의 서실(書室) 배치도는 그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안에섭니다.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통 방향을 알 수 없다는 게 바로 문제 아닙니까?」
「그래서 하는 소리다. 어쨌든, 내게 생각이 있으니까 그 도구 이야기는 더 이상 말자. 그걸 생각했더니, 자연의 법칙, 우리 사유의 법칙에도 생각이 미치는구나……. 그래! 바로 이것이야! 밖에서 장서관 서실의 배치도를 그려 보는 것이다. 이렇게 그린 것으로 내부를 헤아려 보자는 것이다.」
「그래, 수학이라는 걸 한번 이용해 보자. 아베로에스가 말했듯이, 절대적인 것에 대한 접근은 수학으로써만 가능하니까.」
「그렇다면 사부님께서도 보편적인 지식이라는 걸 처음으로 용인하시는 것이군요?」
「수학상의 지식은 기왕에 이미 진리의 하나로 그 몫을 해 온, 지성이 구축한 명제다. 진리의 하나로 몫을 해 왔다……. 무슨 까닭이냐? 수학적 개념은 고유한 것이며, 수학은 다른 학문을 앞질러 성립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서관은 내가 보기에 수학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무슨 까닭이냐? 수학 없이는 미로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학적 명제를 설계자의 명제와 비교해 보면 여기에서 과학적 명제를 도출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또 무슨 까닭이냐? 수학이라고 하는 것은 관계의 과학이기 때문이다. 아니다, 아니다……. 지금은 형이상학적인 말놀이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오늘은 악마가 들어 유리알을 깨면서 우리 일을 훼방하는구나. 너는 눈이 좋으니까 양피지 글씨를 읽을 수 있지? 석판도 있고, 석판에 뭘 그릴 수도 있고, 필기구도 있고, 좋다. 가지고 있지? 가자, 아드소. 본관을 한 바퀴 돌아보자. 그러면 뭔가 우리 머리를 치는 게 있을 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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