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저녁에 1978년에 담임한 달동네 아이 S가 전화를 했습니다. 57세쯤? 손주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전기공사 일을 한다고 했고, 서울에서 일해 보라는 제의가 왔는데 돈을 엄청 더 벌 수 있고 선생님도 만나볼 수 있을 텐데 '서울 일을 하겠나' 싶더라고, 자신이 없더라고 했습니다.
그새 또 한 해가 가서 설을 앞두고 있고, 서너 시간 운전해서 서울 가면 선생님 만나 짜장면 한 그릇을 먹어도 선생님은 괜찮다 하실 텐데 그것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울먹이는 것 같았습니다.
J에게서는 자주 전화 오는지 묻기도 했습니다.
내게 전화를 하려고 술 한 잔 마셨거나 술 한 잔 하니까 전화를 하고 싶었거나 했을 것입니다.
이제 얼굴은 떠오르지 않지만 그 아이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애착이 깊었습니다.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습니다. 학교에 가서 아이 담임 선생님을 만나보자 싶어서, 굳이 무슨 얘기를 할 것은 아니지만 '선생님'을 만나보기라도 해야 속이 시원하겠다 싶어 찾아와서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내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것입니다. 녀석을 낳아서 대학도 보내고 뜻대로 해보지 못했던 엄마 마음이 오죽했을까, 녀석의 전화를 받으며 생각했습니다.
푸르렀던 날의 나와 S의 어머니만 아는 사실입니다.
그날들의 그 어머니들은 모두 아름다웠는데 이제 그들도 나도 늙어가고 더러 서둘러 이승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손주까지 보고도 연신 "선생님" "선생님" 해서 내 마음은 갈피를 잡지 못했습니다. 내 '아이들' 전화를 받으면 걸핏하면 그렇습니다.
내가 힘이 있으면 다 잘 살게 해 줄 텐데......
세상을 들었다 놨다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게는 그런 힘이 없습니다.
그렇게 그 아이들은 나이 들어가는 것이지만 그 아이들 가슴속엔 그때 그 누추하지만 누추해도 좋은 날들의 내 모습, 세상 일을 모두 다 알고 거의 마음대로 할 듯한 내 위용이 아로새겨져 있을 것입니다. 더러 나를 만나보고서도 돌아가서는 또 그때 그 젊은 시절의 나를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건 나도 그렇습니다. 더러 그들을 만나보았는데도 그 옛날 오종종했던 그 아이들을 떠올리며 지냅니다.
하기야 그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릅니다.
젊은 시절의, 푸르른 날들의 나를 그대로 기억해주는 그것들, 그 아이들...
"얘들아, 그러지 말고 좀 잘 살거라, 응!!! 그거 하나만이라도 좀 시키는 대로 해라! 어째 그것조차 제대로 못하나,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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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그림은 내 블친 SONAGI님의 '서울, 우리 동네'(달동네)입니다. 2017년 3월 27일에 이 그림을 탑재하면서 앞으로 생각날 때마다 이런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었고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http://blog.daum.net/sonagi240/4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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