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 네거리에 걸린 점집 안내 현수막 글귀가 마음을 끌었다. "마음이 아파서 우야노~ 힐링하러 오이소~"
대단한 걸 알려주거나 팔자를 고쳐주겠다고 하지 않았네? 저 사람들은 길흉화복을 마음대로 하는 사람들 아닌가? 겨우 힐링이나 해주겠다고? 생각하다가, 힐링이라도 확실하다면 큰 것이긴 하네, 하고 고쳐 생각했다. 요즘은 마음이 아프고 나을 기미는 전혀 없다. 마음이 아프다기보다는 우울하다. 코로나 블루 때문인가? 그렇긴 하지만 그것만도 아니다. 점집에 간다고 힐링이 될 것 같지도 않다. 점집에서 코로나의 특성을 알 것 같지도 않고, 당신도 곧 나이가 줄어들어 청장년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해주지도 못할 것이어서 점집 연락처도 적어 오지 않았다.
나의 우울에는 몇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보편적, 객관적인 것. 자주 초등학교 저학년 국어나 바른생활 교과서가 생각난다. 그 교과서 삽화들이 떠오른다.
교육부에서는 올해 쓸 교과서의 그 삽화들을 바꾸고 있을까?
새 학년이 시작되면 운동장이나 교내 곳곳에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 친구들끼리 손을 들고 웃으며 인사하는 정겨운 모습...
그런 장면들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아니 바꾸지 않아도 될까?
코로나가 걷히면 우리도 곧장 이렇게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주나? 저학년 아이들은 그런 세상을 모를 텐데? 실제로 그게 가능하기나 할까?
차라리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고, 손 소독제를 쓰는 장면을 그려주는 것이 현실적이고 마땅하지 않을까?
암울하고 어려운 이 상황은 앞으로 또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누가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아파트 현관에서 마주치는 이웃은 그 순간 깜짝 놀란다. 나를 귀신 대하듯 하는 건가? 놀라고 싶어서 놀라는 건 아니겠지? 자신도 모르게 놀라겠지? 내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으면 아예 계단으로 올라가거나 괜히 우편함 앞으로 피하기도 한다. 내가 있거나 말거나 서슴지 않고 들어오는 사람은 거의 택배회사 직원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하나......
이렇게 해서 어떻게 사나......
나이도 나를 우울하게 한다.
양력 1월 1일에는 한 살 더 먹는 걸 유보했다. 내 나이는 본래 음력으로 계산해왔기 때문에 아예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1월도 가고 어김없이 음력 1월 1일이 다가와 어쩔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아직 백 살이 되려면 멀었지만 그렇다고 어떤 경우에도 젊은이 쪽으로 설 수는 없는 일이고(그렇다고 노인만 사는 시골을 수소문해서 갈 것도 아니고) 이젠 꿈에서라도 내 자신을 중년이라고 할 수는 없게 되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ㅎ~
아무것도 새로 시작하기는 어렵다. 아흔 살 백 살에 뭘 새로 시작하는 사람이 없진 않지.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그렇게 말하는 건 말이 되질 않는다. 뭘 해볼까? 하면 가능한 일이 있나? 찾아보라고? 어디서 찾아봐?
나는 이 블로그에 열중하고 있었다. 책도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읽는다. 생각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이 블로그가 시들해지고 있다. 무슨 수가 나나? 그것 자체가 좋은 일이라고? 누구에게, 무엇이 좋은가?
마음의 정리는 끝났나?
일단 언제까지라도 살아 있는 것이 좋은가? 그건 아니다! 흔한 말로 "골골 팔십"이라고 했는데 여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잖아? 혹 이러다가 헉헉대며 아흔 살, 백 살을 채우게 되면 귀찮아하지 않을 사람 단 한 명이라도 있나?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이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늘 애드블룬에 지나지 않았다 해도 정치는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요즘은 그조차 암울하다.
따분하고도 초조하다.
우울의 근원은 또 있다.
아무리 내 블로그지만 그런 것들을 다 털어놓을 순 없지. 체면도 그렇고 자존심도 있지.
마지막이 느껴질 때까진 기다려야지.
정말이지 그로키 상태가 되었다.
내일이 임인년이 시작되는 설날이다.
이 매듭에서라도 뭔가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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