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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

테레사 수녀님의 선종

by 답설재 2022. 1. 21.

출처 : https://designerzom.tistory.com/77

 

 

1997년, 광화문 그 빌딩에서 미친놈처럼 일하던 그해 초가을 수녀님이 선종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슬펐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다 하겠지만 나는 잠시 이 나라 이 사회의 교육을 위해 내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이 수녀님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서의 도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분은 "인생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과 같다"고 하셨다.

낯선 여인숙에서 하룻밤...

 

아직 대구에 있을 때, 이튿날 아침 회의에 참석하려고 너무 늦게 기차를 타고 영등포역에 내린 밤, 호객하는 여인을 따라 여인숙에 들어갔었다. 행색을 살펴본 여인은 곧장 솜 이부자리를 펴 준 다음 또 다른 남자를 찾으러 나갔고 나는 예상보다 더 포근한 그 이부자리 속에서 이내 세상모른 채 잠이 들었었다. 이튿날 아침 그녀는 굳이 황탯국이 정갈한 식사도 마련해 주었고 우리는 헤어져 이후로는 어떻게 지내는지 알아보지도 않았다. 여인숙이었고 여인숙 여인이었다고 소홀했겠지?

 

수녀님은 그 여인숙이 쓸쓸했었을까.

이승 또한 그러했을까.

그분은 하느님을 만난 적도 없고 계시를 받은 적도 없고 기도에 응답을 들은 적도 없다고 하셨다.

 

임금님은 온 마을 사람들에게 꽃씨를 나눠주었다.

가을날에 임금님은 거리에 나가보았다.

집집마다 화려한 화분을 내놓았지만 거들떠보지도 않더니 훌쩍훌쩍 우는 한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임금님, 죄송해요. 아무리 정성을 기울여도 싹도 나지 않았어요."

임금님은 그건 볶은 씨앗이었다는 걸 밝혔다.

 

수녀님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걸 읽으며 임금님과 소년을 떠올렸다.

그리고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는 인간인 걸 수녀님께는 미안해했다.

수녀님 생각을 하면 이승의 삶 또한 억울해 할 필요가 하나도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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