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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선물13

조영수 동시집 《마술》 조영수 동시집 《마술》 그림 신문희, 청색종이 2018 책 중에서도 동시집을 읽는 저녁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 시간이 선물 같았습니다. 그런 경험이 있으면 누구나 그렇다고, 선물 같다고 할 것 같았습니다. 세상이 복잡하지 않습니까? 이런 세상에 동시집을 읽고 있으면 그 시간 아이들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이번에 조영수 동시집 《마술》을 읽으며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즐겁다 재미있다 밝다 맑다 가볍다 우울하지 않다 세상은 괜찮다 ..................... 이런 것들이 이 동시집을 읽는 동안의 느낌이었습니다. 아, 시라고 해서 굳이 무슨 운율 같은 걸 넣으려고 애쓰지 않은 것 같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억지가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더욱더 .. 2022. 9. 7.
선물, 저 엄청난 색의 세계 5학년 때였던가 6학년 때였던가, 모처럼 12색인 크레파스를 앞에 놓고 황홀했었다. '이런 색도 있단 말이지?' 온갖 색깔을 거쳐 무채색마저 흰색, 회색, 검은색 세 가지를 다 갖추어 이제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바다를 그리면서 한 가지 색으로 칠하게 되므로 다른 책은 쓰지 않아서 좋았고 더구나 하늘도 파란색이어서 더 좋았다. 괜히 다른 색을 써야 한다면 그게 무슨 꼴인가 싶었다. 그렇지만 그 파란색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닳아서 곤혹스러웠다. 그래서 다음에는 초록과 검정 두 가지 색만 쓰면 되는 수박을 그렸고 그다음엔 노랑과 빨강 두 가지 색만 써서 태양을 그렸다. 크레파스가 퍽 퍽 닳은 걸 보면 색칠이 희미하긴 하지만 잘 닳지 않는 크레용이 더 실용적이긴 하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화려한 존재의 .. 2022. 2. 14.
황순분 「코스모스」 코스모스 코스모스 아름답다. 길 옆에 가는 사람 아름답다. 코스모스는 길 가는 사람이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코스모스는 길 가는 사람이 /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 구절에 깜짝 놀랐습니다. 저 코스모스가 반가워서 코스모스 꽃밭이 선물 같다고 썼던 자신이 한심하구나 싶었습니다. 저 한적한 길의 코스모스가 나를 보고 반가워했었다니 난 그것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 "길 옆에 가는 사람 아름답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나는 저 코스모스가 순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지만 저 시인이 그 코스모스 옆으로 지나가는 나를 보고 아름답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게 참 미안하고 쑥스러웠습니다. 이제 보니까 첫 문장 "코스모스 아름답다"는 평범함을 가장한 예사로움 같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그.. 2021. 11. 3.
내가 설˙추석 선물을 보내는 곳 교장선생님! 코로나로 전국이 혼란스러운데도 명절 한과는 길도 잃지 않고 잘 도착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염치를 무릅쓰고) 늘 건강하셔서 일 년에 한 번씩만 앞으로 이십 년간 더 받기를 원합니다. ㅋㅋ 그렇게 해 주실 거지요? 올해 한가위에는 긴 장마로 여름 감귤류가 너무 싱거워 따가운 가을 햇살을 담뿍 받은 것으로 기다렸다 보내드릴게요.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엔 가지 마옵시길...^^ 좀 서글퍼서 밝히기가 싫기는 하지만 이제 나는 일 년에 두 차례의 명절 선물을 딱 두 군데만 보냅니다. 한 군데는 교육부에서 근무하며 만난 열한 명의 장관 중 한 분입니다. 그분은 내가 교장으로 나가게 되었을 때 "선비처럼 살라"고 부탁했고, 학교를 방문해서 아이들에게 한 시간 강의를 하고 선생님들과 두어 시간 대화를 .. 2020. 9. 22.
기억 혹은 추억 목록 2007.11.1. 실비 지라르데 글, 퓌그 로사도 그림, 이효숙 옮김 《교통안전 이야기, 앗, 조심해!》 비룡소, 2007. 2007.11.17. 디디에 레비 글, 조제 파롱도 그림 《맛있는 냄새가 나요》삼성당, 2006.(교장실) 2007.12.24. 아미 크루즈 로젠달 글, 레베카 도티 그림, 유경희 옮김 《왕짜증 나는 날》 김영사, 2007. 2008.1.23. 알랭 그루세 글, 크리스티앙 오브랭 그림, 이문영 옮김 《우주비행사 초록개미》 삼성당, 2006. 2008.4.1. 허은실 글, 홍기한 그림 《출렁출렁 기쁨과 슬픔》 아이세움, 2007. 2008.4.10. 강무홍 글, 박윤희 그림 《우당탕 꾸러기 삼남매》 시공주니어, 2007. 2008.5. 김리리 글, 한지예 그림 《나는 꿈이 너무 많.. 2019. 9. 19.
나의 호시절 나의 호시절 1 70대 초반을 지나는 한 여성의 고운 일상을 날마다 찾아가 확인하며 지냅니다. 사시사철 '옥상 정원'의 꽃 이야기가 피어나는 블로그입니다. 분명히 전문적인 그 일을 구체적으로 쉽게 써서 보여주고 있어 한 해 두 해 시간이 가면서 그 꽃들 속에서 나이들어 가는 여성의 일.. 2017. 5. 4.
「선물」 Ⅰ 누구를 만나러 갈 때는 꼭 '뭘 들고 가지?' 생각합니다. '빈손으로 어떻게?' 누가 찾아왔다가 돌아갈 때도 그렇습니다. 준비해 놓은 건 없고 빈손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고 해서 얘기를 나누는 중의 앉은자리에서라도 두리번거립니다. '내줄 만한 게 없을까?' 평생 그 생각을 가지고 지냈지만 그게 실천하기가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Ⅱ 지난해 추석에는 어느 고등학교 교문에서 이렇게 적힌 현수막을 봤습니다. "선물 안 받고 안 주기 운동" 그런 현수막을 달아 놓으라고 문구까지 정해주었을 것 같고, '오죽하면……' 싶기도 하지만 한심하고 기가 막혀서 한참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어디로 가나…… 이 사회……'1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 있으면 교육적으로 바로잡는 것이 '교육'이고, 더구나 이.. 2016. 2. 26.
『다시, 봄』 장영희 쓰고 김점선 그림 『다시, 봄』 샘터, 2014 장영희 교수가 29편의 영미시(英美詩)를 열두 달로 나누어 싣고 해설했습니다. 백과사전의 소개는 이렇습니다. 장영희(張英姬, 1952~2009) 영문학자, 수필가, 번역가. 소아마비 장애와 세 차례의 암 투병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따뜻한 글로 희망을 전하였다. 주요 작품으로 "내 생애 단 한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 등이 있다. 봉급을 받게 되어 마음대로 책을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구입한 책 중에는 흔히 영문학자 장왕록 교수가 번역한 책이 있었는데, 장영희 교수는 그분의 따님이라는 걸 나중에 알고 두 사람을 부러워했습니다. 소아마비가 심해서 어릴 때는 누워서 살았답니다. 어머니가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업고 다녔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 2016. 2. 14.
선물 혹은 그리움 청소기를 앞세우고 돌아다니다가 발견했습니다. ― 자칫하면 지울 뻔했구나. 고것들이 와서 남겨 놓았습니다. ― 어느 녀석일까? ― 뭘 하려고 이쪽으로 갔을까? 다 그만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2015. 8. 11.
그 아이가 보낸 엽서와 음악 그 아이가 보낸 엽서와 음악 예전에 교장실 청소를 하러 오던 그 아이입니다. 지금은 쓰이지 않지만 '등대'라는 제 닉네임을 지어준 아이입니다. 그 아이는 교장실에 오면 청소를 하는 시간보다 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많았습니다. 책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교장실 청소는 하면 더 좋고, 안 해도 별로 표가 나지 않아서 오고 싶은 날만 오는 아이도 있고, 그 아이처럼 매번 오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여러 사람이 사는 세상이니까 질서와 규칙도 지켜야 하고 누군가 청소도 해야 하지만, 그걸 모르는 건 아니지만, 가도 좋고 가지 않아도 좋고, 가서 청소하고 싶은 날은 가고, 바쁜 일이 있거나 약속이 있거나 하면 누구에게 말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고, 그게 얼마나 자유롭고 좋은지 그 아이들이 지.. 2010. 9. 8.
「선물」 선 물 김 명 리 우리가 헤어지던 그해 겨울 당신은 내게 향로를 주었다 손아귀로 꼭 한 줌, 저녁 숲에 차오르는 이내를 닮았다 했으나 뚜껑 여닫을 때마다 바스락거린다 봄 강 물마루의 얼음장 풀리는 소리가 난다 보름사리로 밀리며 쓸리는 달빛, 물빛 유채꽃 불씨들이 한줄금 연무로 날.. 2010. 3. 3.
부총리님께 -다시 아산병원을 다녀와서 - 아침에 병원 창 너머로 내다본 한강 위로 오늘도 또 눈발이 날리더니 종일 오락가락했습니다. '강원 산간은 눈폭탄'이란 기사가 보이니 부총리님 계신 곳은 더하겠지요. 그 골짜기에서 괜찮으신지요? 지금 이 시각에도 눈이 내립니까? 택배회사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잘못 알려주어 연락이 왔었습니다. 혹 도움이 될까 싶어서 "그분이 부총리님"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해놓고는 뭔가 제 얄팍한 의도를 드러낸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저는 이제 '정말로' 담배를 끊었습니다. 결재를 받으며 지내던 그 시절, "요즘은 덜 피우는가? 냄새가 덜 난다." 하실 때마다 "예" 하고 대답하던 제 능청이 너무나 송구스러웠습니다. 그 이후 최근까지도 호기롭게, 때로는 심지어 '행복한' 마음으로 담배를 피워대면서도 전화나 이메일로 그걸 물어.. 2010.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