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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황순분 「코스모스」

by 답설재 2021. 11. 3.

 

 

 

코스모스


코스모스 아름답다.
길 옆에 가는 사람 아름답다.
코스모스는 길 가는 사람이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코스모스는 길 가는 사람이 /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 구절에 깜짝 놀랐습니다.

저 코스모스가 반가워서 코스모스 꽃밭이 선물 같다고 썼던 자신이 한심하구나 싶었습니다.

저 한적한 길의 코스모스가 나를 보고 반가워했었다니

난 그것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 "길 옆에 가는 사람 아름답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나는 저 코스모스가 순박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고 생각했지만 저 시인이 그 코스모스 옆으로 지나가는 나를 보고 아름답다고 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그게 참 미안하고 쑥스러웠습니다.

 

이제 보니까 첫 문장 "코스모스 아름답다"는 평범함을 가장한 예사로움 같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그 길을 지나온 나를 아름답다고 하고 저 코스모스가 그런 내가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라했던 얘기를 한 것입니다.

 

이 시는 황순분, 경상북도 상주시 청리초등학교 3학년 황순분 시인이 썼답니다.

황순분, 황순분......

언젠가 어디에서 '황순분'이라는 이름을 보면 당장 떠올려야 할 텐데 나는 이젠 내 기억력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그런 어느 날 황순분이라는 이름을 보고 이 시를 떠올릴 수 있으면 그건 그저 행운일 것입니다.

 

이 시는 감꽃이라는 분이 카페 "오늘의 동시문학"(2021.10.26)에 소개했습니다.

나는 거기에서 이 시를 보고 오십여 년 전 내가 그 시골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던 일을 떠올렸습니다.

그해 가을에는 코스모스가 많이도 피었습니다.

그해 가을 아이들도 코스모스를 보고 시를 지었을 것입니다.

그 생각으로 이 시를 본 소감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 아이들이 아직도 시를 짓고 있군요!
내가 떠나온 바로 그 교실에서!
이 밤에 벌떡 일어나 그 교실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황순분, 이름도 정겨운 저 어린 시인이 그립습니다.
일전에 어느 시골길에서 코스모스를 보고 그 꽃을 가꾼 이의 선물이라고 했지만
"코스모스는 길 가는 사람이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나도 이렇게 쓸 걸 그랬습니다.
저 시인 때문에 나는 지금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그 카페 주인(雪木)은 이튿날 이렇게 답했습니다.

 

저도 이 시를 읽고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
내가 이런 시를 써야 하는데...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어쩔 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