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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박두순12

미래동시모임 《나 나왔다》 미래동시모임 《나 나왔다》 계간문예 2023 이런 세상에 동인이라니... 아니, 이런 세상이어서 더 행복하겠다. 서금복·조영수·김순영·문성란·박순영·조은희·정나래·류병숙·전지영 노란 자동차 / 조은희 도로 주행 연습하는 노란 차 뒤를 트럭 버스 자동차가 갑니다 오리 떼처럼 졸졸 따라 갑니다 외길 따라 서두름도 속도도 늦추며 따라 갑니다 노란 자동차 걸음마를 따라 갑니다 이 동시를 읽으며 솔직히 양심에 찔렸다. 이젠 정말 그러지 말아야지 했다. 동요 작곡 하는 누가 이 동시에 곡을 붙이면 우리의 자동차 운전 문화가 청량음료를 마실 때처럼 기분 좋게 발전하지 않을까 싶었다. '과수원길' 노래를 들으면 과수원 주인은 아카시아 등 여러 가지 꽃무리 속에서만 살아가지 싶었던 것처럼. 이런 동시 40편이 실렸다. .. 2023. 10. 24.
박두순 「친구에게」 친구에게 박두순 친구야 너는 나에게 별이다. 하늘 마을 산자락에 망초꽃처럼 흐드러지게 핀 별들 그 사이의 한 송이 별이다. 눈을 감으면 어둠의 둘레에서 돋아나는 별자리 되어 내 마음 하늘 환히 밝히는 넌 기쁠 때도 별이다. 슬플 때도 별이다. 친구야 네가 사랑스러울 땐 사랑스런 만큼 별이 돋고 네가 미울 땐 미운 만큼 별이 돋았다. 친구야 숨길수록 빛을 내는 너는 어둔 밤에 별로 떠 내가 밝아진다. ................................................................. 그 망초꽃은 어떤 모습일까. 저 중에 닮은 것이 있지 않을까. 2023. 6. 28.
박두순 시집 《어두운 두더지》 박두순 시집 《어두운 두더지》 시선사 2022 길 -김수환 추기경 세상에서 가장 멀고도 힘들고 어려운 길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길'이라고 김수환 추기경이 생전에 인터뷰하며 말했다. 평생 걸었지만 그길 도달하지 못했다며 쓸쓸한 표정도 슬쩍 지어보였다. 나는 이 시집의 88편의 시를 한꺼번에 읽었다. 미안했다. "시를 그렇게 읽나? 그렇게 배웠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여기저기 다시 살펴보는 사이 그런 비난이 들려오는 듯했다. 소설이나 수필 같으면 며칠 혹은 몇 달 길어봤자 대개 몇 년 만에 쓰는 것이겠지만, 시는 그렇지 않아서 수십 년간 썼을 걸 생각하면 원망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그런 느낌을 가지게 될 것 같았다. 그 미안함이 몰려와서 '내가 정말 어쩌다가 이렇게 읽었지?' 싶었다. 혁명으로 .. 2022. 6. 27.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 박두순 벌은 원래 육식이었다네 1억 5천만 년 전엔 파리 진딧물 나비 거미를 잡아먹는 육식이었다네 공룡이 들끓어 좁아진 육식의 자리 견디지 못해 육식을 그만 포기했다네 꽃가루받이 택배 대가로 꿀을 얻어다 새끼를 길렀다네 그게 편해 채식주의로 바꾸었다네 그보다 채식주의자가 된 다른 이유가 있었다네 꽃을 사랑했다네, 아주 열심히 채식주의자가 된 진짜 원인은 그것도 아니라네 꽃 몰래 향기를 훔쳐가는 거라네. * 조선일보 2021년 3월 20일 자 기사를 바탕으로 쓴 것임. 《시와 소금》 vol.38 여름호에서 시인은 아무래도 종이 다릅니다. 정년퇴임하고,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꿀벌 치는 거나 배워두었더라면...' 했던 일이 생각나고 시청 방향 왼쪽으로 보이는 절 입구 산비탈에서 벌을 치기 시.. 2021. 6. 10.
「소」 내 친구 雪木 박두순 시인이 시 '소'를 선물했습니다. '소 해'(소년)여서 그랬는지, 이 블로그에 써놓고 갔습니다. 이중섭 화가가 생각났는데 서울미술관에서 본 황소는 화가 난 것 같아서 이중섭 화가네 가족을 태우고 가는 정다운 소를 여기에 옮겨놓았습니다. 이제 雪木의 그 시입니다. 소 박두순 큰 입을 가지고도 물지 않는다 큰 눈으로 보기만 한다. 2021. 1. 7.
박두순 《인간 문장》 박두순 시집 《인간 문장》 언어의집 2019 설목(雪木)이 네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진시황에게 ―시안 병마용갱을 보고 그대, 미처 몰랐는가 삶은 혼자 사는 거고 외로운 것이라네 산봉우리처럼 솟은 그대 무덤도 혼자고 무덤 높이는 외로움의 높이라네 살아서 아무도 그댈 지켜주지 못했지 자객이 들이닥쳤을 때 다 도망가고 혼자 자신을 지켰지 않았던가 보시게, 죽어서 지켜 주리라던 육천 병마용사도 눈 멀겋게 뜨고 무표정하게 우두커니 서 있기만 하네 그런데 누굴 믿나, 믿지 말게 그대 삶은 혼자 사는 거고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것이라네 1 이건 설목이 나를 위해 쓴 시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설목이 내 생애와 생각을 바라보며 '위로를 좀 해줄까?' 싶어서 궁리를 하다가 문득 진시황 무덤을 본 일이 생각나서 얼른 이 시.. 2019. 11. 12.
박두순 엮음《하늘 고치는 할아버지》 가슴으로 읽는 동시 《하늘 고치는 할아버지》 박두순 해설하고 엮음, 열림원 2019 1 박두순 시인이 수요일 낮에 좀 만나자고 했습니다. 오래전에 한 약속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책이 나왔다고, 그 책이 아주 예쁘다고 했습니다. '이런! 책이 나왔다고? 예쁘게 나왔다고?'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릴 수 없겠다 싶었습니다. 『하늘 고치는 할아버지』 우송되어 왔습니다. 그 '예쁜 책'입니다. 2 어른들 읽으라고 만든 '동시 해설집'입니다. 면지 한 페이지에 단 두 줄로 된 글이 있습니다. 마음이 고장난 이 시대 어른에게 이 짧은 글을 오랫동안 들여다보았습니다. 서러워진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아, 내 마음은 왜 이렇게 고장이 났을까.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을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2019. 1. 24.
"여기서 멈춥니다" "여기서 멈춥니다" 우리나라 최초 동시문학 전문지 《오늘의 동시문학》 50호(종간호) 여기서 멈춥니다 박두순(주간, 동시인) 추위가 엄한 계절이 왔습니다. 어쩌다 <오늘의 동시문학>도 엄한 계절을 맞아, 걸음을 멈춥니다. 이 자리에 섭니다. 더 나아가지 못합니다. <오늘의 동시문.. 2017. 1. 3.
「매미의 새 옷」 매미의 새 옷 황인희 나는 매미 녀석의 비밀을 알았다 매미가 벗어놓고 간 것은 단 한 벌 7년을 그 옷으로 견디다가 새 옷 장만해 입고 나왔다 매미 녀석 우리집 창문에 붙어 날마다 시끄럽게 한 거 봐준다 새 옷 장만하느라 애먹었을 테니까 ―――――――――――――――――――――――――――――――――――――――――― · 1991년 경남 창원 출생 · 경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재학 · 경남대학교 청년작가아카데미 3기 재학 · 이메일 : einhml@hanmail.net 《오늘의 동시문학》 제48호(2015 가을·겨울), 75쪽(신인상 당선작). Ⅰ 아이들이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합니다. 설명할 것도 없습니다. 아이들도 시를 읽고 싶어 합니다. 읽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일 때.. 2015. 11. 5.
박두순 「사람 우산」 사람 우산 집에 오는 길 소낙비가 와르르 쏟아졌다 형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때 형이 우산이었다. 들에서 일하는데 소낙비가 두두두 쏟아졌다 할머니가 나를 얼른 감싸 안았다 그때 할머니가 우산이었다. 따뜻한 사람 우산이었다. 내 친구 박두순 시인이 낸 동시집의 표제작입니다. 작품에 대해 얘기를 할 형편은 아니니까 딴 얘기나 하겠습니다. 동시를 읽어보면, 사물이나 사회현상을 단순화하는 것 아닌가 싶을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단순화"라는 건 보다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어른들하고 이야기하고, 일을 도모하고, 놀고 하다가 아이들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일을 도모하고, 놀고 하면, 일단 정직해져야 하고, 그러니까 속일 수가 없고, 마음이 편해지고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건 내가 초등학교.. 2014. 10. 7.
「찬란한 스트레스」 찬란한 스트레스 단풍은 잎들이 받은 스트레스란다 늦가을 찬바람 속에 사는 스트레스란다 스트레스인데도 찬란하다 곱디고운 색깔. (우리 스트레스는 무슨 색깔일까 피로하다, 무슨 색? 화가 치민다, 무슨 색? 신경질 난다, 무슨 색? 미움이 끓는다, 무슨 색? 욕심이 얽혔다, 무슨 색?) 잎들의 찬란한 스트레스 앞에서 우리의 스트레스 색깔은 얼마나 유치한가 찬란한 스트레스를 갖고 싶다. 박두순 3시집 『찬란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싶다』(문학과문화, 2014), 15. 채송화 그 낮은 꽃을 보려면 그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한다 그 앞에서 무릎도 꿇어야 한다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보인다. ― 「꽃을 보려면」 전문 한때 중학교 국어책에 이 시가 실렸던 내 친구 박두순 시인이, 지난 초여름에 시집을 냈습니다. '찬란.. 2014. 8. 6.
박두순 「새우 눈」 새우 눈 박두순 새우를 그렸다 눈은 까만 점만 하나 톡 찍으면 되니 아주 그리기 쉬웠다 문득 궁금해졌다 고 작은 눈으로 어떻게 앞을 보나? 고 작은 눈으로 어떻게 바다를 다니나? 고 작은 눈으로 어떻게 먹이를 찾아내나? 아니다 새우 눈은 크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넓은 바다를 보나 그 넓은 바닷길을 다니나 그 커다란 잠수함을 피하나 망원경 마음눈 가진 모양이지? ━━━━━━━━━━━━━━━━ 박두순 1950 경북 봉화 출생. 1977년 , 동시 추천. 동시집 등 10권과 시집 등 2권. 「대한민국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등 수상. 『오늘의 동시문학』 2012년 가을호, 45쪽. 나이가 육십이 넘어도 아이들 같은 마음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 2012. 9.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