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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채식주의자」

by 답설재 2021. 6. 10.

 

 

채식주의자

 

 

박두순

 

 

벌은 원래 육식이었다네

1억 5천만 년 전엔

파리 진딧물 나비 거미를 잡아먹는 육식이었다네

공룡이 들끓어 좁아진 육식의 자리 견디지 못해

육식을 그만 포기했다네

꽃가루받이 택배 대가로

꿀을 얻어다 새끼를 길렀다네

그게 편해 채식주의로 바꾸었다네

그보다 채식주의자가 된 다른 이유가 있었다네

꽃을 사랑했다네, 아주 열심히

채식주의자가 된 진짜 원인은 그것도 아니라네

꽃 몰래 향기를 훔쳐가는 거라네.

 

* 조선일보 2021년 3월 20일 자 기사를 바탕으로 쓴 것임.

 

 

《시와 소금》 vol.38 여름호에서

 

 

 

시인은 아무래도 종이 다릅니다.

정년퇴임하고,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꿀벌 치는 거나 배워두었더라면...' 했던 일이 생각나고

시청 방향 왼쪽으로 보이는 절 입구 산비탈에서 벌을 치기 시작한 후배를 부러워하던 일도 떠올랐습니다.

 

* 파리 진딧물 나비 거미 대신 꿀을 가져다가 새끼를 길렀다.

* 아니다, 꽃을 사랑했다.

* 그것도 아니다, 사실은 꽃 몰래 향기를 훔쳐간다.

 

그런 얘기를 해주면서 꿀 한 병 사면 2~3년은 먹는데 죽을 때까지 몇 병이나 먹겠다고 그러냐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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