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박두순
벌은 원래 육식이었다네
1억 5천만 년 전엔
파리 진딧물 나비 거미를 잡아먹는 육식이었다네
공룡이 들끓어 좁아진 육식의 자리 견디지 못해
육식을 그만 포기했다네
꽃가루받이 택배 대가로
꿀을 얻어다 새끼를 길렀다네
그게 편해 채식주의로 바꾸었다네
그보다 채식주의자가 된 다른 이유가 있었다네
꽃을 사랑했다네, 아주 열심히
채식주의자가 된 진짜 원인은 그것도 아니라네
꽃 몰래 향기를 훔쳐가는 거라네.
* 조선일보 2021년 3월 20일 자 기사를 바탕으로 쓴 것임.
《시와 소금》 vol.38 여름호에서
시인은 아무래도 종이 다릅니다.
정년퇴임하고,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며 '꿀벌 치는 거나 배워두었더라면...' 했던 일이 생각나고
시청 방향 왼쪽으로 보이는 절 입구 산비탈에서 벌을 치기 시작한 후배를 부러워하던 일도 떠올랐습니다.
* 파리 진딧물 나비 거미 대신 꿀을 가져다가 새끼를 길렀다.
* 아니다, 꽃을 사랑했다.
* 그것도 아니다, 사실은 꽃 몰래 향기를 훔쳐간다.
그런 얘기를 해주면서 꿀 한 병 사면 2~3년은 먹는데 죽을 때까지 몇 병이나 먹겠다고 그러냐고 묻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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