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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이원석 「미인」

by 답설재 2021. 7. 10.

미 인 

 

이원석 

 

계속 저어주세요 쉬지 말고 그를 저어주세요 기름이 굳어지지 않도록 국자로 젓느라 땀이 뚝뚝 떨어지네요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벽면을 긁어내듯 저어주세요 이따금 우러나는 걸쭉한 핏물은 체로 건져내야죠 뽀얀 거품 사이로 떠오르는 한 손이 당신 손등을 쓸어주네요 그래도 계속 저어줘야죠 바닥까지 휘젓다 그의 흉곽에 국자가 닿네요 살점이 풀어지도록 그를 짓이겨주세요 그의 입술에 묵은 숨결이 매달리네요 그런 건 부드럽게 건져주세요 그가 깊이 우러나도록 연골까지 하나하나 해어뜨려주세요 그리고 다시 저어주세요 그의 눈물은 건져주세요 그의 번민도 건져주세요 그의 미래도 그의 두려움도 그의 희망과 그의 고요도 건져주세요 분노를 끌어내리는 슬픔은 해어뜨려주세요 맥없이 가라앉는 표정들은 녹여주세요 자맥질하는 마음들을 휘저으며 땀을 흘리던 당신 체와 국자를 놓치고 쓰러지네요 당신 대신 내가 그를 건져낼게요 무수한 그릇에다 그를 나눠 담을게요 고소한 내음이 피어나는 그를 모두 드셔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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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1990년 광주 출생. 2018년 『시인수첩』 등단. 

 

 

 

월간『現代文學』2018년 12월호에서 보았습니다.

그 충격이 잊히질 않습니다.

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