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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박두순 「사람 우산」

by 답설재 2014. 10. 7.

사람 우산
 
 
집에 오는 길
소낙비가
와르르 쏟아졌다
 
형이 나를
와락 끌어안았다
 
그때 형이
우산이었다.
 
들에서 일하는데
소낙비가
두두두 쏟아졌다
 
할머니가 나를
얼른 감싸 안았다
 
그때 할머니가
우산이었다.
 
따뜻한 사람 우산이었다.

 

 

 

내 친구 박두순 시인이 낸 동시집의 표제작입니다.

 

작품에 대해 얘기를 할 형편은 아니니까 딴 얘기나 하겠습니다.

동시를 읽어보면, 사물이나 사회현상을 단순화하는 것 아닌가 싶을 경우가 많았습니다. 또 "단순화"라는 건 보다 아름답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어른들하고 이야기하고, 일을 도모하고, 놀고 하다가 아이들을 상대로 이야기하고, 일을 도모하고, 놀고 하면, 일단 정직해져야 하고, 그러니까 속일 수가 없고, 마음이 편해지고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건 내가 초등학교 교사도 해보고 교장도 해봐서 잘 아는 사실입니다.

가령, 우리가 그 아이들을 속이면 그들은 우리의 눈만 바라봐도 다 알게 되는데, 직접적으로 불만을 터뜨리지 않는다 해도 우리가 어른이니까 속아주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더 들려면 한이 없지만, 아이들은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면서 서로 눈을 들여다보려고 하는데 선생님들은 바쁘거나 복잡한 생각을 하느라고 그걸 눈치채지 못하거나 걸핏하면 쳐다봐 주지도 않을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심사를 다 짐작하고 그 상황을 단순화시켜서 넘어가 주는 것인데, 자꾸 그렇게 하다 보면 드디어 그들의 마음에도 금이 가게 되고 더러 어른 흉내도 내고 하다가 결국 아주 고약한 사람으로 변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박두순 시인은 지난번에 새로 낸 시집 『찬란한 스트레스』를 갖고 와서 "시집을 낸 사람이 밥을 사는 것"이라고 했으니까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 망설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또 그렇게 말하기도 뭣하고 했는지 시집만 우송해 왔습니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쪽에서 밥을 사야 할 것입니다. 시인에게는 돈이 별로 없기 때문에 자꾸 밥을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박두순 동시집 「사람우산」(문학과문화, 2014)

 

 

작품론을 쓴 평론가(김종헌)는 이 작품을 가려 설명했습니다. 멋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혼자여서


혼자여서 외롭다고?
아니야
해도 혼자 하늘을 가고
달도 혼자 떠 흘러가도
외롭지 않고 좋아 보이지.


혼자여서 외롭다고?
아니야
민들레꽃도 들길에 혼자 피고
깃발도 혼자 펄럭이며 놀아도
외롭지 않고 좋아 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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