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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목욕탕 수건」

by 답설재 2014. 9. 14.

목욕탕 수건

 

 

이재무

 

 

얼마나 많은 몸뚱어리를 다녀온 면수건인가

누군가의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와 등짝과 발바닥을

닦았을 면수건으로 머리를 털고 얼굴을 닦는다

내 사타구니와 겨드랑이와 등짝과 발바닥을

닦은 이 면수건으로 누군가는

지금의 나처럼 언젠가 머리를 털고 얼굴을 닦을 것이다

목욕탕 면수건처럼 사람들의 속살을

구석구석 살갑게 만나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면수건처럼 추억이 많은 존재도 없을 것이다

면수건처럼 평등을 사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닦고 나면 무참하게 버려지는 것들이

함부로 구겨진 채 통에 한가득 쌓여 있다

 

 

 

―――――――――――――――――――――――――――――――――――――――

이재무 1958년 충남 부여 출생. 1983년 『삶의문학』 등단. 시집 『벌초』 『온다던 사람 오지 않고』 『몸에 피는 꽃』 『시간의 그물』 『위대한 식사』 『푸른 고집』 『저녁 6시』 『경쾌한 유랑』 등.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2014.9.13. 화도의 하늘

 

 

 

 

 

탈의실은 난장판입니다. 수건은 다시는 오지 않을 곳이라 해도 그렇게 하진 않을 것처럼 여기저기 던져져서 자동차 바퀴에 짓밟힌 짐승처럼 짓뭉개져 있고, 트레이닝복도 배암이 허물 벗듯 몸뚱이만 빠져나간 그대로 바닥이나 평상 위에 버려져 있고,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는데 선풍기는 죽을 것처럼 돌아가고, 전등은 있는 대로 다 켜져 있고, 옷장 문은 다녀간 사람 수만큼 열려 있고…… 다 써버린 화장품 통, 샴푸 통이 나뒹굴고, 더러 속옷도 버려져 있고, 갈아입은 속옷 상표가 무슨 기념품처럼 거울에 붙어 있고…… 바닥에는 여기저기 비 온 뒤 동네 골목길처럼 물이 흥건하고, 발걸레는 '틀림없이' 제자리를 벗어나 있고……

아무도 없으니까 출입구를 나서다가 신발 갈아신는 바닥에 침을 탁 뱉는, 제 또래 중늙은이 녀석을 마침 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맞닥뜨린 적도 있습니다. '아, 이런 녀석이 있나!'

 

 

 

 

 

 

'집구석'에서도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지 모르지만 그 밀폐된 공간에서 팬티를 '탁' '탁' 털어서 입는 녀석도 있습니다. 하도 같잖아서 그러지 말라고 얘기했더니 글쎄 "새 팬티" 어쩌고 하다가 아무래도 무안한지 부리나케 나갔습니다. 다시는 안 올 것처럼 허겁지겁하더니 바로 어제저녁에도 보이길래 일부러 좀 쳐다봤더니 괜히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몸을 씻고 있었습니다. 그럴 걸 왜 그런 짓을 했는지, 원!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만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신발 하나로 마음대로 출입하는 녀석도 보나마나 많을 것입니다.

살펴보면 희한한 녀석들이 수두룩합니다. 게다가 '어른'이라는 것들이 아이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하나도 덜하진 않습니다.

 

주부들 중에 누가 이 글을 읽는다면, 집에서는 전혀 쌩쌩한 남자가 밖에 나갔다 하면 원숭이나 침팬치처럼 기이한 행동을 할지 모르니까 평소에 지속적으로 반복 훈련을 잘 시키고 단단히 일러서 내보내셔야 할 것입니다.

"침은 왜 뱉아요? 당신이 무슨 야구단 구원투수 흉내내는 건가요?"

"창피하지도 않아요?"

"새 팬티를 미쳤다고 털어서 입어요? 당신 미친 거 아니에요?"

"그곳은 밀폐된 공간이잖아요. 먼지는 누가 다 마시나요?" 등등 초등학생 가르치듯, 아니 유치원생 가르치듯!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흩어져 있는 수건을 주어 정리하고 바닥의 물기를 닦고 있었는데, 관리하는 젊은이가 보게 되었습니다. 착한 일을 좀 해서 담임 선생님께 칭찬을 받게 된 초등학생처럼 괜히 쑥스러워져서 얼른 이렇게 물었습니다. "하루종일 이런 일을 하시려면 많이 힘드시죠?"

힘이 많이 든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는 그의 어정쩡한 대답을 듣고, 또 묻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성 탈의실은 정갈할 것 아닙니까?" 말하자면 남자 탈의실은 이처럼 엉망이지만 저쪽은 이쪽의 힘만 들여도 될 것 아닌가 물은 것입니다.

 

그가 예상 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런 것 가지고 거짓말을 할 것 같은 젊은이는 아닌데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말도 마세요. 이쪽은 이만하면 우수하고 이렇게 도와주는 분도 계시잖아요. 저쪽은 악취도 더 심하고 어질러 놓는 것도 말을 하기 싫을 정도인데, 그러니까 불평불만은 그칠 날이 없어서 관리하는 여성이 못해먹겠다고 연방 그만둡니다. 그렇다고 내가 들락날락할 수도 없고……"

 

 

 

 

는 그 대답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내가 직접 여성 탈의실에 들어가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볼 수는 없으므로 "남성 탈의실보다 더 엉망"이라고 한 그 놀라운 사실을 일단 발설(發說)은 하지 않기로 하고, 관리하는 그 젊은이가 내게 거짓말을 한 걸로 여기자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내에게 물어서 확인해 볼 수도 없지 않겠습니까?

"여성 탈의실은 더 엉망이라대?"

그러면 아내가 어떤 표정을 짓겠습니까? "뭐가 그리 궁금해요? 직접 한번 확인하지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