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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문인수 「명랑한 거리」

by 답설재 2014. 8. 20.

명랑한 거리

 

 

문인수

 

 

이 시를 쓸려면 여기, 한 식당을 소개할 수밖에 없겠다.

아구찜 대구찜 알곤찜 황태찜 해물찜 등

찜전문집이다. 이 '누나식당' 주인 처녀는 키가 크다. 말만 한 건각에 어울리게시리 무슨 산악회 회원인데,

산 넘고 산 넘은 그 체력 덕분인지 껑충껑충, 보기에도 씩씩하기 그지없다.

나는 지금까지 그저 서너 번 이 집에서 밥 사 먹었을 뿐이니 뭐,

단골이라 할 것도 없다. 오늘 저녁답에도 이 식당을 찾았으나 말짱

헛걸음했다. 문을 닫았다. 어, 잘되는 가게였는데……? 걸어 잠근

출입문 손잡이 위쪽에 뭐라 쓴 종이 한 장이 붙어 있다.

 

"안녕하십니까. 저희 집을 찾아주시는 고객님들께 죄송한 말씀 전합니다. 2011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잠시 휴업합니다. 12월 17일(토) 저, 시집갑니다. 더욱더 밝은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수진

 

그리고, 방榜 밑에 청첩장이 한 장 '참고'로 붙어 있다.

 

껑충껑충, 그렇게 산 넘고 산 넘는 중에 회원 가운데 한 사내, 그 신랑 찜도 물론 잘했겠지 싶다. 우리나라의 힘센,

좋은 여자란 누구에게나 무릇 오매 같거나 큰누부 같지 않더냐.

 

'알림' 전문을 들여다보는 잠시 나는 참 소리 없이, 맛있게

배불리 웃었다. 껑충껑충, 달려가는 "저, 시집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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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수 1945년 경북 성주 출생. 1985년 『심상』 등단. 시집 『뿔』 『홰치는 산』 『동강의 높은 새』 『쉬!』 『배꼽』 『적막 소리』. <김달진문학상> <노작문학상> <미당문학상> 등 수상.

 

 

 

남양주 '해님과 달님' 정원에서

 

 

 

 

이런 시 같으면 나도 한 편쯤은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 '수진' 씨 같은 처녀야 어디든지 있고, 그 흔한 처녀 하나 찾아 서로 터놓고 지내면 그 수진 씨 같은 처녀도 언젠가 결혼을 할 것 아니겠는가 싶었던 것입니다.

문제는 가게 유리창에 이유를 확실히 밝히지 않은 채 나붙은 "임시휴업" 혹은 자랑삼아 써붙인 "휴가"라는 안내문은 봤어도 "시집간다"고 청첩장까지 내다붙인 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될 것 같지 않다는 판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인이 살고 있는 동네니까 저런 처녀가 살고 있을 것 같은 것입니다.
시인이 살고 있는, 찜전문점 '수진' 씨도 함께 살고 있는 저 동네는, 제목에서 보다시피 '명랑한 거리'입니다.

'명랑한 거리'가 잘 있겠습니까?
그런 거리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하필이면 시인이 없는 동네만 골라서 이사 다닌 것 같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정말로 그런 거리가 있을지 그것조차도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저 시인이 살고 있는 동네는,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명랑한 거리'라는 사실은 확신하고 있습니다.


『現代文學』 2012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