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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찬란한 스트레스」

by 답설재 2014. 8. 6.

찬란한 스트레스

 

 

단풍은 잎들이 받은 스트레스란다

늦가을 찬바람 속에 사는 스트레스란다

스트레스인데도 찬란하다

곱디고운 색깔.

 

(우리 스트레스는 무슨 색깔일까

피로하다, 무슨 색?

화가 치민다, 무슨 색?

신경질 난다, 무슨 색?

미움이 끓는다, 무슨 색?

욕심이 얽혔다, 무슨 색?)

 

잎들의 찬란한 스트레스 앞에서

우리의 스트레스 색깔은 얼마나 유치한가

찬란한 스트레스를 갖고 싶다.

 

 

박두순 3시집 『찬란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싶다』(문학과문화, 2014), 15.

 

 

 

 

 

 

 

채송화 그 낮은 꽃을 보려면

그 앞에서

고개 숙여야 한다

 

그 앞에서

무릎도 꿇어야 한다

 

삶의 꽃도

무릎을 꿇어야 보인다.

 

― 「꽃을 보려면」 전문

 

 

 

 

한때 중학교 국어책에 이 시가 실렸던 내 친구 박두순 시인이, 지난 초여름에 시집을 냈습니다. '찬란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싶다'.

그 시집을 가지고 와서 "시집을 낸 사람이 밥을 사야 한다"고 우겼습니다. 시집 갖고 와서 밥 얻어먹고 갔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였겠지만, 최근에는 몇 번이나 "선배님, 선배님" 하며 그쪽에서 밥을 샀다는 걸 생각해냈습니다. 다른이들에게는 내가 잘 사는 편인데 그에게만 그렇게 되었으니까 그건 아무래도 공평하지 못한 일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선생을 해서 그런가 싶지만, 흡사 아이들에게 뭘 가르치는 것처럼 "무슨 색?" "무슨 색?" 했는데 그게 참 기분좋게 느껴집니다. 어디 가서 나도 한번 써먹어 봤으면 좋을 것 같은,

"피로하다, 무슨 색?"

"화가 치민다, 무슨 색?"

"신경질 난다, 무슨 색?"

"미움이 끓는다, 무슨 색?"

"욕심이 얽혔다, 무슨 색?"

 

우선 아내가 시무룩할 때 한번 그렇게 해볼까 싶기도 한데, 그러면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곰곰히 생각해보고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럴 때 그의 스트레스는 어떤 색일까, 그것까지 생각해보는 것이 나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박 시인은 이처럼 자신의 "삶의 모습 읽어보기"를 시작詩作의 중심축에 놓고 있는 것에 대하여 "이것이 나를 아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나를 이루는 길이라고도 여겨서"라고 했습니다.

무슨 의미를 떠오르게 하지도 않으면서 무턱대고 "너 자신을 알라!" "너 자신을 알라!"고 해대어 이젠 "너 자신을 알라!"가 우스갯감이 되지나 않았을까 싶은 그 금언(金言)이 시인에게서는 이렇게 빛나고 있는 걸 보면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면서 시인으로 살아가는 그가 정말로 부러워집니다.

 

스트레스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잘 있겠습니까? 심장병이고 암이고 심지어 두통이나 급체까지도 다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심장병에 대해서는 우선 나도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실에 비해 시인은 그 스트레스라는 것을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이 세상의 저 수많은, 아름다운 아이들이 무슨 무지개 바라보듯 하는구나 싶어서, 좀 늦어지긴 했지만 이제는 나도 너무 초조해하지도 말고, 너무 심각해하지도 말고, 그저 저 시 속의 저 정도로만 여겨도 좋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기로 할까? 생각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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