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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서로를 욕되게 말자고」

by 답설재 2014. 5. 27.

 

 

 

 

 

 

 

 

 

 

 

       서로를 욕되게 말자고

 

 

                                            유안진

 

 

아지랑이 눈빛과

휘파람에 얹힌 말과

안개 핀 강물에 뿌린 노래가

사랑을 팔고 싶은 날에

 

술잔이 입술을

눈물이 눈을

더운 피가 심장을

팔고 싶은 날에도

 

프랑스의 한 봉쇄수도원 수녀들은

붉은 포도주 '가시밭길'을 담그고

 

중국의 어느 산간마을 노인들은

맑은 독주 '백년고독'을 걸러내지

 

몸이 저의 백년감옥에 수감된

영혼에게 바치고 싶은 제주祭酒

 

시인을 팔고 싶은 시의 피와 눈물을.

 

 

 

 

 

――――――――――――――――――――

유안진  1941년 경북 안동 출생. 1965년 『현대문학』 등단. 시집 『달하』 『월령가 쑥대머리』 『봄비 한 주머니』 『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 『다보탑을 줍다』 『거짓말로 참말하기』 『알고考』 등. <정지용문학상> <소월시문학상 특별상> <월탄문학상> 등 수상.

 

 

 

 

 

 

 

 

 

 

  아지랑이 눈빛, 휘파람에 얹힌 말, 안개 핀 강물에 뿌린 노래,

  그런 것들이 사랑을 팔고 싶은 날,

 

  술잔이 입술을 팔고 싶은 날,

  눈물이 눈을 팔고 싶은 날,

  더운 피가 심장을 팔고 싶은 날,

 

  그런 날에도 프랑스 어느 깊이 봉쇄된 수도원의 수녀들은 '가시밭길'이라는 이름의 붉은 포도주를 담근답니다.

  그런 날에도 중국의 한 산간마을 노인들은 '백년고독'이라는 이름의 맑은 독주를 걸러낸답니다.

 

  '백년감옥' 안에 갇혀 있는 영혼에게 바치는 술,

  시인을 팔아버리고 싶은 시, 그 시의 피와 눈물……

 

 

 

  『현대문학』 2010년 2월호 158~159쪽에서 이 시를 다시 읽으며 문득!

  이 시로써 유행가 한 곡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곡을 만들 줄 아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이 노랫말에 곡을 붙여서 부르고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날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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