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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詩 읽은 이야기

박형권 「탬버린만 잘 쳐도」

by 답설재 2014. 10. 4.

탬버린만 잘 쳐도

 

 

박형권

 

 

옆방 젊은 여자하고는 이사 첫날부터 찌그려졌다

이삿짐 다 옮겨놓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보니

출입문이 두 개 있는데 어느 문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 문이나 열긴 열었는데

꽃 같은 장롱에 복어 주둥이 같은 살림살이들

아, 이 문이 아니었다

얼른 닫고 옆문을 여니 마누라 같은 두루마리 화장지

딸 같은 시집詩集

그래 여기가 내 집이지 한시름 놓는데

누가 문을 쾅쾅 두드린다

―야, 너 뭐하는 놈이야? 여자들만 사는 집을 왜 들여다봐?

그렇게 꼬이기 시작한 인연은 일 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았다

할머니 한 분과 여자와 여자의 어린 딸이 사는 것 같은데

모두

가을바람 앞의 코스모스 같았다

이슬만 먹고 사는지 그 방에서는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며칠째 옆방에서 탬버린 소리가 났다

딸 운동회에 응원단장을 맡은 것일까

내 딸의 운동회에서 이인삼각 경주를 할 때

꼴찌인 우리 식구를 함박웃음으로 반기던 저녁달을 떠올리고 있는데

옆집 여자가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밤 열두 시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노래방 도우미로 가면 탬버린만 잘 쳐도 월 300이라는데

새벽에 눈 화장이 흘러내리도록 울면서 돌아온들 어떠리

다음 날부터

사람 살지 않는 것 같은 그 방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

박형권 1961년 부산 출생. 2006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우두커니』 『전당포는 항구다』.

 

 

 

 

 

 

고정수, 「내 마음 어디로 가고 있나」(취영루 소장)

 

 

 

 

너무나 생생한 스토리가 보여서, 누구에게라도 그걸 좀 설명하고 싶었는데, 그 설명이라는 걸 시작하려다가 누가 나만큼 모를까 싶어서 그냥두기로 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저 이야기를 세 장면으로만 나누어 놓기로 했다.

 

 

옆방 젊은 여자하고는 이사 첫날부터 찌그려졌다 / 이삿짐 다 옮겨놓고 담배 한 대 피우고 보니 / 출입문이 두 개 있는데 어느 문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 아무 문이나 열긴 열었는데 / 꽃 같은 장롱에 복어 주둥이 같은 살림살이들 / 아, 이 문이 아니었다 / 얼른 닫고 옆문을 여니 마누라 같은 두루마리 화장지 / 딸 같은 시집詩集 / 그래 여기가 내 집이지 한시름 놓는데 / 누가 문을 쾅쾅 두드린다 / ―야, 너 뭐하는 놈이야? 여자들만 사는 집을 왜 들여다봐?

 

그렇게 꼬이기 시작한 인연은 일 년이 지나도 / 풀리지 않았다 / 할머니 한 분과 여자와 여자의 어린 딸이 사는 것 같은데 / 모두 / 가을바람 앞의 코스모스 같았다 / 이슬만 먹고 사는지 그 방에서는 음식 냄새가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며칠째 옆방에서 탬버린 소리가 났다 / 딸 운동회에 응원단장을 맡은 것일까 / 내 딸의 운동회에서 이인삼각 경주를 할 때 / 꼴찌인 우리 식구를 함박웃음으로 반기던 저녁달을 떠올리고 있는데 / 옆집 여자가 몸매가 드러나는 원피스를 입고 / 밤 열두 시 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 노래방 도우미로 가면 탬버린만 잘 쳐도 월 300이라는데 / 새벽에 눈 화장이 흘러내리도록 울면서 돌아온들 어떠리 / 다음 날부터 / 사람 살지 않는 것 같은 그 방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났다

 

 

『현대문학』 2014년 7월호, 148~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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