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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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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추위 엄청나게 춥습니다. 아예 밖에 나가기가 싫고, 지난해 초겨울 눈 많이 왔을 때 젊은이처럼 걸어가다가 미끄러져서 손목에 금이 갔던 일이 자꾸 떠올라 조심스럽고 두렵습니다. 이렇게 들어앉아만 있으니까 거의 늘 이렇게 살아가면서도 뭔가 불안한 느낌도 있습니다. 그런 느낌이 심할 때는 잠시 정신과 생각도 했습니다. 12월에 이렇게 추운 건 드물었지 않습니까? 설마 올겨울 내내 이런 식이진 않겠지요? 혹 2024년 1, 2월 내내 기온이 이 정도로 내려가진 않고 좀 춥다가 말다가 하며 그럭저럭 겨울의 끝에 이르고 슬며시 새봄이 오면 이번 겨울은 '에이, 실없는 겨울이었네!' 하고 비웃음을 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나저나 조심히 지내시기 바랍니다. 전 잘 있습니다. 뭐든 '와장창!' 무너지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요. 2023. 12. 22.
'가설 학습'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설명 지금 가정부의 아들이 갈릴레이 갈릴레오에게 질문한다. 안드레아 가설이 뭐예요? 갈릴레이 그럴 것 같다고 추정하지만, 사실을 확보하지 못한 주장이란다. 저 아래 광주리 가게 앞에서 펠리체 부인이 아기의 젖을 먹는 것이 아니고, 아기에게 젖을 먹인다는 것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가설이란다. 직접 가서 보고 확인하지 않는 한 별들에 대해서 우리는 아주 조금밖에 못 보는 흐릿한 눈을 가진 벌레들과 같단다.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믿어 왔던 이론들은 무너질 지경에 이르겠지. 그런 이론들은 거창한데, 그걸 받치는 근거라는 기둥이 형편없이 약하거든. 법칙들은 많은데 그걸 설명해 주는 것은 거의 없단다. 이에 반해 새로운 가설들은 법칙은 별로 없지만 많은 사실을 밝혀주고 있지. 안드레아 하지만 선생님은 나한테.. 2023. 12. 22.
베르톨트 브레히트 「민주적인 판사」 민주적인 판사 미합중국 시민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심사하는 로스앤젤레스 판사 앞에 이탈리아 식당 주인도 왔다. 열심히 준비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새 언어를 몰라 시험 과정에서 보칙(補則) 제8조의 의미를 묻는 질문을 받고 우물쭈물 머뭇거리다가 1492년이라고 겨우 대답했다. 시민권 신청자에게는 국어에 대한 지식이 법으로 규정되어 있으므로 그의 신청은 각하되었다. 3개월 뒤 더 공부해서 다시 도전했으나 새 언어를 모르는 걸림돌은 여전했다. 이번에는 남북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누구였는가 하는 질문이 주어졌는데, (큰 소리로 상냥하게 나온) 그의 대답은 1492년이었다. 다시 각하되어 세 번째로 다시 왔을 때, 대통령은 몇 년마다 뽑느냐는 질문에 그는 또 1492년이라고 대답했다. 판사는 그가 마음에 들었고.. 2023. 12. 21.
알랭 드 보통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알랭 드 보통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 박중서 옮김, 청미래 2011 흥미롭다. 우리의 삶을 바꿔준다? 방법이 제시되었다. 1. 오늘의 삶을 사랑하는 방법 2. 나를 위해서 읽는 방법 3. 시간 여유를 가지는 방법 4. 성공적으로 고통받는 방법 5.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6. 좋은 친구가 되는 방법 7. 눈을 뜨는 방법 8. 사랑 안에서 행복을 얻는 방법 9. 책을 내려놓는 방법 알랭 드 보통의 여느 책처럼 좀 현학적인 문체에 끌려가며 읽어야 해서 다 읽고 나니까 '뭐였지? 어떤 방법이었지?' 하고 몇 가지는 다시 찾아 확인했다. 알랭 드 보통이 프루스트의 글을 인용하여 제시한 대로 내 삶을 바꾼다? 그럼 이 책은 자기 계발서이고, 이런 관점을 확인해 가며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다.. 2023. 12. 20.
세이쇼나곤 「연꽃 이슬」 보다이사(菩提寺)라는 절의 결연팔강(結緣八講)에 참배했을 때 어떤 사람이 '어서 돌아오시오. 매우 적적하오이다'라는 편지를 보냈기에, 어렵게 찾은 은혜로운 연꽃의 이슬을 두고 그 허무한 세상에 어찌 다시 갈까나 もとめてもかかる蓮の露をおきて 憂き世にまたは帰るものかは 라고 써서 보냈다. 부처님의 자비로움이 가슴속 깊이 와닿아서 더 있다 갈 것을 생각하니, 중국 고사에서 집 식구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것도 까맣게 잊어버린 상중(湘中)과 같은 심정이었다. 일본 헤이안 시대 이치조(一條) 천황의 중궁 데이시의 여방 세이쇼나곤(淸少納言)이 지은 《베갯머리 서책(枕草子)》에서 옮겨 썼다. 결연팔강(結緣八講)이란 불도와 인연을 맺기 위해 하는 법화팔강(法華八講)으로, 법화경(法華經) 8권을 8좌(座)로 나누어 하루에 두.. 2023. 12. 19.
이태수 「눈(雪)」 눈(雪) 이태수 눈은 하늘이 내리는 게 아니라 침묵의 한가운데서 미끄러져 내리는 것 같다 스스로 그 희디흰 결을 따라 땅으로 내려온다 새들이 그 눈부신 살결에 이따금 희디흰 노래 소리를 끼얹는다 신기하게도 새들의 노래는 마치 침묵이 남은 소리들을 흔들어 떨치듯이 함께 빚어내는 운율 같다 침묵에 바치는 성스러운 기도 소리 같다 사람들이 몇몇 그 풍경 속에 들어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 먼 데를 바라본다 그 시간의 갈라진 틈으로 불쑥 빠져 나온 듯한 아이들이 몇몇 눈송이를 뭉쳐 서로에게 던져 대고 있다 하지만 눈에 점령당한 한동안은 사람들의 말도 침묵의 눈으로 뒤덮이는 것 같다 아마도 눈은 눈에 보이는 침묵, 세상도 한동안 그 성스러운 가장자리가 되는 것만 같다 .......................... 2023. 12. 18.
눈이 내리네 2023. 12. 16.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발췌)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 김석희 옮김, 휴머니스트출판그룹 2023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은 해외에 있는 전체주의 국가가 아니다. 우리 자신의 개인적 태도와 우리 자신의 제도 속에는 외적인 권위와 규율, 획일성, 외국의 지도자에 대한 의존이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 준 조건들이 존재하고, 바로 그것이 우리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한다. 따라서 싸움터는 이곳, 우리 자신과 우리 제도의 내부에도 존재한다."(죤 듀이)(21) 프로이트는 개인의 정서적 장애와 정신적 불안이라는 현상에 관심을 기울여, 우리를 화산 꼭대기로 데려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분화구를 들여다보게 해 주었다.(25) 인간이 타인이나 자연과의 원초적 일체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 2023. 12. 16.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 에리히 프롬 《자유로부터의 도피 Escape From Freedom》 김석희 옮김, 휴머니스트 2023 인간이 타인이나 자연과의 원초적 일체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자유를 얻으면 얻을수록, 인간이 '개인'이 되면 될수록(自由의 쟁취), 자발적인 사랑과 생산적인 일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결합시키거나(그 자유의 享有) 자신의 자유와 개체적 자아의 본래 모습을 파괴하는 끈으로 세계와 자신을 묶어서 일종의 안전보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자유로부터의 逃避)는 것이다(39). 이 책의 주제이다(괄호 안은 답설재가 붙인 설명임). 인간 생활의 예로부터의 변화 과정은 이 주제를 보여주고 있다. 국가적·사회적으로도 그렇다. 현재의 상황도 그렇다. 개인적인 현재의 사정도 그렇다. 자유를 마음껏 누리는 사람도 있고, 웬만.. 2023. 12. 16.
영화 사부: 영춘권 마스터 영춘권의 마지막 사부가 각 문파를 차례대로 격파하고 훌훌히 떠난다. 온갖 생각이 오고가도 쳐다보고 있으면 되는 영화가 좋을 때는, 쳐다보고 있으면 되니까 좋다. 스틸 컷을 몇 장 복사해 보았다. 김 교수가 영화 "오펜하이머" 봤냐고, 거기 자신의 친구들이 여럿 나온다고 두 번이나 이야기했는데...(2023.12.6. 수) 2023. 12. 15.
"야, 이놈들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부터는 고달픈 삶이랄까, 그 이전이 보잘것없는 세월이었다면 이후는 고달픈 일들의 연속이었다. 그것도 어쩔 수 없어서 선택한 일들이어서 말하자면 나는 세월에 끌려다녔다. 그럭저럭 책은 좀 읽었다. 그건 국어를 가르쳐주신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 덕분이었다. 굽이굽이에서 그분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중학교 담임도 국어 교사였는데 그는 취미란에 '독서'를 써넣은 나를 일으켜 세우고는 온갖 창피를 다 주었다. 독서는 취미가 아니고 필수라느니 이제 온 국민이 독서를 생활화해야 한다느니, 무엇보다도 독서를 밥 먹듯 해야 한다느니... 그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독서에 힘쓰지 않고 돈 버는 일에만 매진하는 게 마치 중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내 잘못인양 한 시간 동안 나를 세워놓은 채 그렇게 지껄여대는 바.. 2023. 12. 13.
지식의 쓰레기 지식도 시간이 지나면 쓰레기가 된다. 가령 인터넷에서 보는 '지식'에서 그 쓰레기를 구분하지 못하여 낭패를 보는 경우는 허다하다. 지식을 만드는 사람들이 지금도 우리 생활에 유용한 지식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이 나오면 그 새 지식이 나온 부분의 묵은 지식은 당연히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 교육부에서는 학생들에게 전해줄 마땅한 지식을 선정하기 위한 작업을 한다. 새로운 지식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지 말아야 할 쓰레기 같은 지식은 어떤 것인지, 잘 구분해서 선정하려고 한다. 그걸 정해놓은 것이 '교육과정'이고, 그 지식을 실제적으로 담아놓은 것이 '교과서'다. 나는 서울에 올라와 사당동 전셋집 2층에서 혼자 살 때, 초등학교 사회과에서 가르쳐야 할 지식을 선정하는 일을 잘해보려고 벽.. 2023. 1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