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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159

강의는 시험이 필요하게 만든다. 시험은 강의가 중요하게 만든다. "네이키드퓨처"라는 책은 지난 10월에 읽었다. 그런데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책의 내용이나 읽은 느낌을 아는 대로 다 써보라고 하면 나는 고려해 볼 것도 없이 낙제다. 블로그의 '임시보관함'에 들어갔다가 이 파일을 보고 '아, 이 책을 읽었지!' 했고, 책 이야기를 쓴 날짜를 확인해 봤더니 10월 17일이어서 내 기억력이 이제 바닥에 가까운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파일을 작성해서 임시보관함에 넣어둔 것은, 내용들이 평소 생각해 온 교육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내 경험이나 주장을 덧붙여 보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그리 쉽겠나 싶어서 옮겨쓴 그대로 실어두기로 했다. 다만 내가 이 책 필자의 생각에 공감한 부분의 대표적인 표현에는 색을 넣었다. .............. 2023. 11. 29.
헤르만 헤세의 수업 헤르만 헤세는 「빌헬름 셰프 주제에 의한 변주」(《책이라는 세계》)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만일 내가 교사여서 수업을 해야 한다면, 학생들에게 작문 같은 걸 시키게 된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매일 한 시간씩 뚝 떼어주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얘들아, 우리가 너희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좋은 거란다. 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정한 원칙과 진리를 한번쯤 시험 삼아 뒤집어보려무나!"라고 말이다. 아무 단어든 뒤집어 철자를 바꾸어보면, 종종 굉장한 교훈과 재미와 탁월한 착상을 던져주는 화두를 얻게 되기도 한다. 즉 그런 유희를 통해 사물에 붙여진 꼬리표가 떨어져나가고 그 사물에 대해 새롭고 경이롭게 말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낡은 창유리에 싱거운 색칠 장난을 하다가 비잔틴 모자이크가 나오는 것도, 끓는 찻주.. 2023. 8. 25.
재미있는 어휘력 성장 이리저리 TV 채널을 바꾸다가 '유퀴즈(유퀴즈 온 더 블럭)'에 멈췄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아직 식상하지 않습니다. '해결사'가 주제로 '문해력'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방송으로 가려는 순간, 흥미로운 차트가 보였습니다. "자녀의 어휘력은?" 중학생 자녀에게 아래 상자에 담긴 단어의 뜻을 적게 해 보라. 세 단어 이상 정확한 뜻을 썼다면 평균 정도의 어휘력 수준인 셈이다. 상당수 중학생의 오답은 아래와 같다. 대관절 → 큰 관절 을씨년스럽다 → 욕??! 시나브로 → 신난다 개편하다 → 정말 편하다 오금 → 지하철역 이름 샌님 → 선생님의 줄임말 미덥다 → 믿음이 없다 이 프로그램은 아무리 전문가라도 혼자 이야기를 늘어놓도록 놔두지 않아서 역겹지 않습니다. 한글날만 되면 신문에 나는 이런 기사를 보.. 2023. 8. 11.
천여 마리 닭에게 이름을 붙여준 축계옹 낙양 사람 축계옹(祝鷄翁)은 시향(尸鄕) 북산 기슭에 살면서 100여 년 동안 닭을 길렀는데, 그 닭들이 저녁에는 나무 위에 홰를 틀게 하고 낮에는 놓아길렀습니다. 그는 천여 마리나 되는 닭에게 모두 이름을 붙여주었는데 어떤 한 마리를 부르면 그 닭이 즉시 달려왔습니다. 그는 또 닭과 달걀을 팔아 천여만 냥을 벌었지만 문득 돈을 그대로 두고 오(吳) 나라로 가서 양어장을 만들었고, 그 후 오산(吳山)으로 올라갔는데 그의 곁에는 항상 백학, 공작 수백 마리가 머물렀다고 합니다. 신선 설화집 《열선전》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십 년쯤 담임을 했는데(또 20년쯤은 교육행정) 이름 때문에 해마다 고생을 했습니다. 아이들 이름 외우기가 그렇게 어려웠습니다. 수업 중에 내가 부르고 싶은 아이를 바라보며 이름이 생.. 2023. 7. 26.
"제 말뜻 아시겠습니까, 우리 형제님들, 자매님들?" 교육 현장의 갈등이 극에 달한 것 아닌가 싶고 이대로 갈 수 있겠나 싶고 이런 교육방법 말고는 없나 의구심을 갖게 된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어느 젊은 정치가는 교사와 학부모 간의 개인적인 소통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럴 수도 있을까, 어처구니가 없다. 점점 더 깊은 수렁에 빠지는 건 명약관화한 일이다. 알랭 드 보통이 색다르고 요란한 교육방법을 제안한 걸 봤다. 이걸 적용해 보자는 얘기는 아니다. 테네시 주 녹스빌의 뉴 비전 침례교회의 무대에서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주장 앞에서는 거의 저항할 엄두조차 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우리 중 누구도 감옥에 있지 않습니다." ("아멘, 옳습니다, 아멘, 목사님" 하고 회중이 말한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형제님들, 자매님.. 2023. 7. 24.
수학이란 무엇인가? 하필 수학 공부가 싫다고 할 때(수학이란 본래 그런 공부인지 알 수는 없고, 수학 교육은 아이들이 너무 많이 혹은 지나치게 수학을 좋아할까 봐 일부러 따분하게 하는 것 같긴 하지만) "이런 얘기가 있지" 하고 소개해 주었더라면 싶은 이야기가 있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는 윌리엄 수도사와 아드소 수련사가 수도원 본관에 있는 장서관의 구조를 파악하지 못해 몰래 잠입하고서도 우왕좌왕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이런 장면도 있다. 바늘자석 이야기에 이어서 나오는 장면이다(347). 「사부님, 그럼 가시지요. 세베리노에게는 그 기적의 돌이 있습니다. 이제 물과 물그릇과 전피만 있으면 됩니다.」 나는 흥분에서 떠들었다. 사부님은 내 어깨를 낚아챘다. 「가만……. 까닭을 모르겠다만, 나는 이 도구.. 2023. 5. 22.
교사 '선댄스'의 짝 내 제자들..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고 있겠지? ^^ 음... 학생을 혼자 앉히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싫어했다기 보단 그냥 좀 미안했죠.. 그래서 우리 반 학생 수가 홀수인 경우 한 명은 꼭 제 책상 옆에 앉혔죠.. 지금부터는 선생님 짝이라며.. 솔직히 말하면 나 역시 그걸 즐겼나 봅니다. 제 짝이 있기를.. 2022. 12. 15.
교장 훈화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간단히..." 운동장 조회 시간이었다. 나가지 않아도 아무도 못 알아챌 거라 생각하고 몇 번 안 나갔다가 주의 쪽지가 날아와서 요즘은 얼른 나가는 은영이었다. 방송으로 하면 딴짓이라도 할 텐데 운동장 조회가 있는 날은 꼭 화창했다. 교장 선생님 훈화 말씀은 어째서 시대가 바뀌어도 이렇게 늘 재미가 없을까. 교장 선생님 대상으로 누군가 재미있게 말하기 연수 프로그램을 좀 짜든가, 그도 아니면 짧게 말하기라도 하도록 방침이 내려왔으면 좋겠다고 은영은 투덜거렸다. 어쩌면 웬만해선 재미있는 사람들이 교장이 못 되는 건지도 모른다. 드물긴 해도 어딘가에는 분명 재밌는 교장 선생님이 있는 학교가 있을 텐데 다음번에 취직할 때는 알아보고 해야겠다. 그런 얘기를 얼핏 했더니 인표가 "우리 집안 아저씨예요. 까지 마세요." 해서 뜨악.. 2022. 10. 20.
지금 아이들 곁에서 퇴근했어요. 컴퓨터는 꼴도 보기 싫어서 폰으로 답장 써요, 선생님. 오후에만 확진자 2명의 연락을 추가로 받고... 그러고 나니 갑자기 제 목이 아픈 것 같고 기침이 나는 것 같았어요. 착각이었지만요. 꼭 걸릴 것만 같이 위태롭고, 이미 우리 학교 교사 확진도 걷잡을 수없이 막 내달리고 있어요. 언제 걸리는지 때를 기다리는 느낌이에요. 사실상 자포자기 상태로 교실만 지킬 뿐이에요. 이게 정점이라고, 이젠 끝물이라고, 이젠 다 왔다고 말해주길 바라요. 아니 말 안 해도 그냥 우리는 이렇게 여기 있을 거예요. ​ 선생님, 어느 신체 기관보다도 눈은, 선생님께 유의미한 부분일 텐데, 말썽이 나면 선생님 속상하실 것 같아요. 장착하면 시력 2.0으로 보완해주는 VR 기계 같은 것, 발명해서 끼고 저의 노안도 치.. 2022. 4. 4.
독서 인증제? 독서 대체벌?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어요. 글쓰기가 싫었다기보다 그게 숙제라는 게 싫어서 일기 쓰기를 싫어했던 기억이 나요. 어느 날 엄마가 중학생들이 쓰는 예쁜 공책을 사다 주면서 앞으론 여기다 일기를 써보라고 하시는 거예요. 앞장에 좋은 글귀도 써주고 날짜와 날씨 적는 칸도 만들어주셨죠. 공책도 정말 예뻤지만, 친구들과 다른 일기장이어서인지 숙제라는 느낌이 들지 않더라고요. 그때부터 쭉 일기를 써왔어요. 그 습관이 서평을 쓰는 데 도움이 돼요." 그 엄마에 그 딸이다. 초등학교 1학년인 그의 큰딸은 책을 무척 좋아하면서도, 학교에서 숙제로 내주는 독후감 쓰기는 무척 싫어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편지'다. 예쁜 편지지를 딸에게 내밀며 '네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편지를 책 얘기를 해보라'고 제안한 것. 결과는 대성.. 2022. 4. 2.
'오이'와 '이오' 교사 시절에는 늘 뭔가 더 배우고 싶었습니다. 사범대학에 편입해서 2년을 더 배웠고 28학점인가 특수교육 과목들도 이수했습니다. 그룹별로 시각장애, 청각장애, 정신지체, 지체부자유, 정서장애 등 특수교육 분야별로 학교도 방문해서 교육 현장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정신지체아들의 학교를 방문했을 때 한 원로교사로부터 들은 얘기는 지금도 잊히지 않았습니다. "어떤 단어가 읽고 쓰기에 가장 쉬운지 아십니까?" 특별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었고, 곧 그 교사가 답을 알려주었습니다. "오이입니다. (공책에 뭔가 쓰고 있는 두어 명 아이들을 가리키며) 이 아이들은 한 학기 5개월 내내 오이만 씁니다. 처음에는 실제로 오이를 갖다 놓고 쓰게 했습니다. 방학 때도 오이를 써오라고 숙제를 냅니다. 그런데 2학기 개학해서 오이.. 2022. 3. 20.
중국인 교수의 새로운 한국사 강의 "중국인 교수의 새로운 한국사 강의, 학생들 환호" '어떤 강의였지?' 2014년 9월 27일, 그땐 저 내용이 생생했는데 글자가 보이질 않아서 답답합니다. 역사 사실에 대해 이런 견해도 있고 저런 견해도 있다는 얘기를 하고 학생들이 덧붙이고 토론하는 형식의 강의였지 싶습니다. 그렇게 가르치는 건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연한 건데 당연한 그걸 하지 못하고, 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견해가 유일무이한, 위대한 지식인양 일방적으로 강의하니까 그걸 듣는 학생들은 따분하고 짜증이 나고 나중에 학자가 되어서는 그 강의와 아주 다른 견해의 또 다른 일방적 강의를 하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짜증이 나지 않게 생겼습니까? 초등학교 때 개요를 배운 역사를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는 살만 더 붙여서 하는 강의를 듣고 또 들.. 2022.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