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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헤르만 헤세의 수업

by 답설재 2023. 8. 25.

 

 

 

헤르만 헤세는 「빌헬름 셰프 주제에 의한 변주」(《책이라는 세계》)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만일 내가 교사여서 수업을 해야 한다면, 학생들에게 작문 같은 걸 시키게 된다면, 나는 아이들에게 매일 한 시간씩 뚝 떼어주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얘들아, 우리가 너희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물론 좋은 거란다. 하지만 가끔은 우리가 정한 원칙과 진리를 한번쯤 시험 삼아 뒤집어보려무나!"라고 말이다. 아무 단어든 뒤집어 철자를 바꾸어보면, 종종 굉장한 교훈과 재미와 탁월한 착상을 던져주는 화두를 얻게 되기도 한다. 즉 그런 유희를 통해 사물에 붙여진 꼬리표가 떨어져나가고 그 사물에 대해 새롭고 경이롭게 말해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 낡은 창유리에 싱거운 색칠 장난을 하다가 비잔틴 모자이크가 나오는 것도, 끓는 찻주전자에서 증기기관이 나오는 것도 바로 그런 순간이 아니겠는가?

 

 

헤세가 교사가 되고 싶어한 건 아니다. 그저 작가로서의 교육적 견해를 이야기한 것이었다. 이렇게 덧붙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상태, 이런 정신자세, 세계를 익숙한 모습 그대로가 아닌 더욱 풍요로운 의미로 새롭게 발견하고자 하는 이런 마음가짐을 이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으니, 즉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이야기하는 작가들이다.

 

 

헤세는 작가여서 작가 얘기로 돌아갔지만 헤세의 이 이야기는 결국 창의성에 관한 교훈이 될 것이다. 오늘날 학교교육은 너무나 '타이트해서'(이런 말 해도 되나 모르겠네? 가르치고 배워야 할 것이 뭐가 그리 많은지...) 헤세처럼 저렇게 매일 한 시간씩 뚝뚝 떼어내면 당장 말썽이 생기고 온전한 교사생활을 하지도 못할 건 뻔한 일이다.

 

그렇긴 하지만 언젠가 세상은 또 변해서 하루 한 시간씩이 아니라 모든 시간을 교사 재량으로 운영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오고야 말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