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학교교육

강의는 시험이 필요하게 만든다. 시험은 강의가 중요하게 만든다.

by 답설재 2023. 11. 29.

지난 초여름 L시인이 오르한 파묵의 나라 터키에서 내게 보내준 사진: "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기도 하고 어떤 이유로 '설정'한 것 같기도 한 이 풍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요 ㅜㅜㅜ"...

 

 

 

"네이키드퓨처"라는 책은 지난 10월에 읽었다. 그런데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책의 내용이나 읽은 느낌을 아는 대로 다 써보라고 하면 나는 고려해 볼 것도 없이 낙제다.

 

블로그의 '임시보관함'에 들어갔다가 이 파일을 보고 '아, 이 책을 읽었지!' 했고, 책 이야기를 쓴 날짜를 확인해 봤더니 10월 17일이어서 내 기억력이 이제 바닥에 가까운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파일을 작성해서 임시보관함에 넣어둔 것은, 내용들이 평소 생각해 온 교육 문제의 핵심이라고 생각했고, 그렇다면 내 경험이나 주장을 덧붙여 보려는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게 그리 쉽겠나 싶어서 옮겨쓴 그대로 실어두기로 했다.

다만 내가 이 책 필자의 생각에 공감한 부분의 대표적인 표현에는 색을 넣었다.

 

 

.........................................................................................

 

 

˙ 교사, 교육부 장관, 학교 관리자, 학부모, 직원들이 현재 우리가 성적이라고 부르는 척도를 대체할 새로운 성취도 측정 방식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 그러나 가장 중요한 단계는 철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오늘날 교육이 어떤 상태인지 인정해야 한다. 필수 교육이면서 비용이 많이 들고 형편없는 상태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표준화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했던 똑똑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으며 사람들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해도 그 내용을 잊고 만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하고 있다. 이런 시험을 치르는 목적은 순전히 무능한 학교와 교사를 식별해 내기 위해서이다.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목적과는 동떨어진 경우가 점점 증가하고 있다. 강의는 시험을 필요하게 만든다. 시험은 강의를 중요하게 만든다. 시험은 빅데이터 현재이다.

벌거벗은 미래는 이와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강의'란 소크라테스 시절부터 상대적으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는 플라톤이 저서 「국가(The Republic)」대부분을 소크라테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기록한 내용으로 채우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분명히 알 수 있다. 강의가 교습 방법으로 오래 지속된 까닭은 실용적이기 때문이지만 이는 딱히 찬사는 아니다.

 

˙네그로폰테는 이 프로그램(특별히 제작된 노트북을 저개발국 어린이들에게 기부하는 OLPC One Laptopper Child 운동)의 성공을 배포한 노트북 대수나 시험성적 향상을 근거로 평가하지 않는다. 이는 잘못된 척도이기도 하고 그는 시험, 교과과정, 정확히는 교습(teaching)에 계속해서 초점을 맞추는 행위가 진정한 학습을 방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교습 없이 학습은 불가능하다는 가정은 잘못이다. 네그로폰테는 강의 직전에, MIT테크놀로지리뷰(MIT Technology Review) 온라인 판에 "우리는 어떤 일에 관한 사실을 방대하게 기억한다고 해서 그 일을 이해한다는 척도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무리 낙관해도 이는 필요할 뿐 충분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학생들에게 암기를 강요한다. 암기식 학습이 육체 운동과 비슷하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는 암기한 사실이 벽에 던진 스파게티처럼 잘 달라붙어 있는지 상당히 편리하게 시험할 수 있다. 때로는 지식을 지나치게 반복 입력해서 그 주제를 아는 동시에 싫어하게 되기도 한다."라고 썼다. 네그로폰테에게 있어 우리가 학교라고 부르는 존재의 대부분은 잘해봐야 쓸데없는 시간 낭비이고 최악의 경우 학습을 가로막는 진짜 장애물이다.

 

˙교육자 존 테일리 개토(John Taylor Gatto)는 1800년대 이후부터 나타난 교습 시스템은 주로 부모들이 재봉실, 도축장, 방앗간에서 힘들게 일하는 동안 공장 노동자들의 자녀를 돌보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한다.

공교육의 목적 역시 대략 이와 비슷했다. 개토는 정규 교육이란 본질적으로 창의력을 억누르고 해괴하게 아동기를 늘리는 동시에 따분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의무 교육은 어린이들에게 부수적으로만 도움을 준다. 그 진짜 목적은 아이들을 하인으로 만드는 것이다. 공립학교에서 30년을 근무하고 긴 일생을 살아오면서 나는 천재가 먼지만큼이나 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수많은 교육받은 사람들을 감당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천재성을 억압한다. 내가 생각하는 해결책은 정말 간단하고 멋진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감당하도록 내버려 두라."

학교를 바라보는 네그로폰테의 회의적인 시선은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의 한층 더 도발적인 의견 역시 생각나게 한다. 밀은 "일반적인 공교육은 사람들을 서로 똑같이 찍어내가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그리고 사람들을 찍어내는 이 틀은 정부 내에서 가장 힘 있는 자를 기쁘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그 힘 있는 자가 군주이든, 귀족이든, 혹은 기존 세대의 대다수이든 무관하다. 공교육의 효율성과 성공 정도에 비례하여 정신을 지배하는 폭정을 확립하며 이는 자연스러운 경향에 따라 신체를 지배하는 폭정으로 이어진다."

 

˙학교가 그 형태를 급격하게 바꾸는 일은 있어도 아마 앞으로도 존속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대인관계 형성이라는 행위를 쉽게 디지털화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인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현실 세계의 같은 장소에 함께 있어야 한다.

 

˙학습은 더 수월해지고 훨씬 더 많은 부분이 학교 밖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며 이 모든 요소는 우리가 지금 현재 알고 있는 학교와 교사의 중요성을 약화시킬 것이다.

 

 

패트릭 터커 《네이키드 퓨처 THE NAKED FUTURE》(이은경 옮김, 미래엔 2014)에서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