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이처에 대해서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지금까지 잊지 않고 있는 건 아프리카 어딘가에서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는 것이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단편적 지식은 양(量)으로나 질(質)로나 초라한 그 수준에 그대로 머물고 있다. 하다못해 인터넷 검색창에 "슈바이처"라고 넣어보면 뭔가 좀 읽을 수 있었을 것인데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 나는 그동안 동네 맛집은 자주 찾으면서도 슈바이처에 대해서는 그런 착안을 해 볼 생각이 아예 없었다.
☜ 알베르트 슈바이처(출처 : 나무위키)
슈바이처는 산업시대의 인간을 부자유하고, 집중력이 없으며, 불완전하고, "인간성을 상실한 존재"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규정하고, 많은 사람이 스스로 생각할 힘을 잃고 소속된 집단의 세력에 자신을 내맡긴 채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에리히 프롬 "사유냐, 존재냐").
그뿐만 아니라, 사회는 이제 그 세련된 조직으로 인해서 인간의 정신생활에 대한 전대미문의 세력이 되어버렸고, 그 세력 앞에서 인간은 독자적인 정신적 존재로 살아가기를 중단할 만큼 무력해져 버렸다....... 이렇게 우리는 새로운 중세로 퇴행한 것이다. 하나의 보편적 의지에 밀려서 사고(思考)의 자유는 쓸모가 없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개성으로서 사고하는 데에는 무력해지고, 모든 면에서 오로지 소속된 집단이 이끄는 대로 자신을 내맡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고의 독립을 포기함으로써 우리는 진리에 대한 신념을 잃었다. 어떻게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정신적 삶은 해체되었다. 공적(公的) 상황의 과도한 조직화가 사고부재(思考不在)라는 조직을 초래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세련된 조직이 우리의 정신생활을 지배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 세력 앞에서 우리는 독자적인 정신적 존재로 살아가기를 중단할 만큼 무력해졌다?
사회의 보편적 의지에 밀려서 우리의 사고의 자유는 쓸모가 없어지고 자유로운 개성으로서 사고하는 데 무력해졌고, 소속된 집단이 이끄는 대로 자신을 내맡기고 있다?
사고의 독립을 포기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신념도 잃었다?
우리의 정신적 삶은 해체되었다? 공적으로 과도한 조직화가 이루어져 사고부재의 조직이 되어버렸다?
이럴 수가 있나!
그나저나 슈바이처 선생이 나를 보면 뭐라고 할까?
"아, 이 사람아! 그래, 41년 교직생활을 하고서도 나에 대해 아는 건 그래, 국민학교 다닐 때 배운 그 사실에 머물러 있었다고? 말이 돼?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난처하지만 부끄럽진 않아?"
"저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죠."
"할 말이 있다고? 해 봐. 무슨 할 말이 있나?"
"우리가 국민학교 다닐 땐 그래도 국어책에 박사님 일화가 여러 페이지에 걸쳐 소개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런데 이후로는 교과서에서 그런 글을 본 적이 없는 것 같고, 박사님에 대해서는 아프리카 오지 사람들을 치료해 주셨다는 것, 그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으셨다는 것 이상의 지식을 필요로 하지도 않았거든요. 아, 어디선가 피아노 연주도 잘하셨다는 얘기도 듣거나 읽은 것 같긴 하고요."
"그래, 좀 쑥스럽긴 하지만 나에 대해서는 그 정도 지식만으로 충분하더라는 얘기지? 시험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럼요! 시험에 나오지 않았고, 그러니까 아이들도 궁금해하지 않았고요. 우리는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대학교, 대학원 학생들에게까지 공교육을 통해서 전달해주어야 할 지식이 얼마나 방대한지요."
"이제야 바른말이 나오는군! 그래 교육의 맹점이야. 왜 그런 지식들을 그렇게나 열심히, 많이 주입하는가 말이야. 그렇게 가르치는 건 다른 것을 알아보고 뭘 좀 깊이 알아보고 싶은 학생들에 대한 저지, 방해, 폭력일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사실도 내가 우리 사회의 세련된 조직이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지. 교육을 바꿔야 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바꿔야 해. 이제 학생들에게 컴퓨터 속에 들어 있는 지식을 주입하는 건 무용한 일에 지나지 않아. 알겠나? 알아듣겠나?"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와의 대담은 그렇게 진행되었지만 그 일은 잠깐 사이에 꿈결처럼 이루어져 나는 우리의 대화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여 여기까지만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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