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상1153 모임의 끝 코로나가 난동을 부리기 전의 초겨울에 우리는 둘이서 만났습니다. 죽은 사람도 있긴 하지만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여럿인데도 그렇게 되었습니다. 오래전 사당동에서 처음 만날 때는 열 명 정도는 되었고 너도나도 그 산촌에서 태어나 서울 올라와 산다는 의식으로 서로 어깨를 올리고 잘난 척하고 그랬는데 그렇게 잘난 척하는 꼴을 연출한 뒤로는 하나씩 하나씩 줄어들었습니다.맨 처음에 누가 나오지 않게 되었을 때는 마음이 살짝 어두워지고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나중에는 '또?' '또!' 하게 되었고 드디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싶었습니다. O는 하필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지병으로 죽었습니다. 집 짓는 일을 하고 자신의 집이 열 채는 된다고 하더니 그게 다 빚으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고, 마.. 2022. 1. 9. 바퀴벌레와 숙명론 어느 날 오후 그가 학자의 책 가게에 들렀더니 4명의 말수 좋은 젊은이가 중세에 사용된 바퀴벌레 퇴치법에 대해 한창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비드 신부밖에 읽은 적 없는 책에 대한 아우렐리아노의 기호를 알고 있는 주인은 아버지 같은 심술로 그에게 토론에 참가하도록 권했다. 그러자 그는 즉석에서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곤충인 바퀴벌레는 이미 구약성서에서 슬리퍼로 혼쭐이 난 적이 있다. 그러나 그 종자는 붕산을 묻힌 토마토에서 설탕이 든 밀가루에 이르기까지의 온갖 퇴치법을 능가한다고 설명했다.1,600가지에 이르는 이 종자는 인간이 원시 시대부터 모든 생물―인간을 포함해―에게 가해 온 집요하고 비정한 박해에도 잘 견디어 왔다. 그 박해의 극심함은 생식 본능과는 별도로 인간에게는 보다 명확하고 보다 강한 바퀴 전.. 2022. 1. 7. 젊음 예찬 2022. 1. 4. 「다리, 너머」... 나는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는 왜 아플까? 단편소설 한 편을 읽으며 생각했었습니다. '내가 지금 죽으면 이렇게 죽는 것이겠구나......'2010년 봄이었으니까 그럭저럭 12년이 되어갑니다.그해 1월에 나는 심장병으로 병원에 실려갔다 돌아와서 이젠 웬만하면 그렇게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를 파먹으려고 덤벼드는 일이 있었습니다.이제 이야기지만 사람의 일입니다.결국 그해 9월 나는 다시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 병원으로 실려갔습니다.생각도 하기 싫은 기억입니다. 나를, 내 심장을 파먹으려드는 그 일이 그해 4월호 『현대문학』(98~125)을 읽으며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연규상 「다리, 너머」)연규상 작가는 1966년 충북 음성 출생으로 충북대 영문과 졸업하고 201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라고 했습니.. 2021. 12. 27. J, 마침내 2021학년도가 지나갑니다 J. 내가 퇴임한 그해, 그러니까 학교라는 세상으로 치면 2010학년도 1학기에 나는 난생처음 한가했습니다. 교사들은 여전히 바빴지요? 바쁘지 않을 리 없습니다. 대한민국 교사들은 언제나, 아이들의 그 예쁜 눈을 들여다볼, 혹은 그 표정을 잠깐 일별할 여유도 없이 매 순간 바쁘니까. 바쁘지 않으면 이상해서 마침내 바쁜 게 미덕이 되었지요? 기이한 미덕. 그 기간에 나는 나 혼자인 나의 세상에서 이런저런 생각이나 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지내는 게 어쩌면 그렇게도 어색하던지...... 내가 이래도 되나? 괜찮을까? 순간 순간 걱정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어처구니없어했습니다. J. 그땐 자주 생각하고 뭔가 안타까워하기도 하고 궁금해하고 그랬습니다. '지쳤나?' '무슨 일 있나?' 그런 생각 하고 또 하.. 2021. 12. 23. 어머니의 영혼 꿈속에서 이미 저승으로 간 부모와 대화를 나누는 건 대체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더구나 포옹을 하거나 손을 잡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와 그의 어머니도 대화는 나누었는데 손을 잡거나 하지는 못했습니다. 표독스러운 여신 키르케를 잘 다루어 1년간 꿈결 같은 대접을 받은 오디세우스는 그 여신의 안내로 저승세계를 찾아가게 되고 어머니도 만납니다. "오, 아들아, 어찌하여 이 어두운 세계로 들어왔단 말이냐. 너는 분명 살아있는 몸이 아니냐. 그런데 트로이에서부터 여태껏 바다를 헤매고 돌아다녔단 말이냐? 이제까지 이타카에는 전혀 가지를 못한 것이냐." "어머님, 제가 귀국하기 위해 이렇듯 테이레시아스 망령에게 신탁을 받으러 왔습니다. 트로이를 떠난 후 겹친 재앙 때문에 이렇듯 .. 2021. 12. 15. '엉뚱한 결론' 질의응답이나 토론이 불가능한 일방적 강의를 들을 때 그 논리가 편파적이거나 합리적이지 못하면 분통이 터진다. 가령 '바둑을 둘 줄 모르는 사람이 뭔 일을 하겠느냐?'고 하면 듣는 사람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마치 사람은 다 공부를 잘해야 하는 것처럼 "넌 왜 공부를 이렇게밖에 못하나?" 하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글도 마찬가지다. 억지 주장을 늘어놓은 걸 보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런 경우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는 걸,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다는 걸,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걸 논리적으로 설명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글을 쓸 수밖에 없고 그건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속을 끓이다가 그만둘 수밖에 없지만 마음속으로라도 글을 읽은 소감을 정리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게 하지 않고.. 2021. 12. 11. Leisure / W. H. Davies 2016년 3월 초 어느 날, 콜로라도의 교수 '노루' 님이 이 블로그에 긴 댓글을 썼습니다. 그때 나는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잘 쳐다봐주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를 썼을 것입니다. "선생님~" 아이들이 부르면 어떤 선생님은 웬만해선 그 애를 바라봐 주지도 않고 말할 게 있으면 해 보라는 시늉만 하곤 했습니다. 복도에서 선생님을 만난 아이가 "안녕하세요, 선생님~" 해도 어떤 선생님은 코대답도 않고 지나갑니다. 나는 그게 정말 못마땅했습니다. 아이들을 바라봐 주지도 않는 주제에 그 아이를 어떻게 가르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습니다. 길게 얘기하면 아직도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나는 2010년 2월에 정년이 되어 학교를 떠나며 그 학교 교직원 전체의 의자를 모조리 회전의자로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해놓고.. 2021. 11. 24. 감옥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저는 이 명상 수련회를 지난 구일 동안 지도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을 거의 꺼낼 뻔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다시 똥 무더기로 기어들어 갔습니다. 여러분은 바깥으로 나오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바로 집착입니다. 사람을 꺼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는 나오지만 다시 기어들어 갑니다. 여기에는 재가 수행자들이 있습니다. 이 수련회가 끝나면 출가해서 스님이 될까요? 아마도 똥 무더기 속으로 다시 기어들어 갈 것입니다. 그곳이 근사하고 따뜻하며 아늑하다고 말할 것입니다. 벌레가 보는 방식과 같은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 어렵습니다. 우리는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자신이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옥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 다른 세상을 알려하지 않습니다. 의지는 감.. 2021. 11. 18. 나이든 사람들은 불쌍한가? 《죽음의 수용소에서(Man's Search for Meaning, 빅터 프랭클)》라는 책에서 세 토막의 글을 옮겨놓았습니다. 둘째 세째 토막만 옮겨쓰고 싶었으나 그렇게 하면 의미 파악에 지장이 있어서 첫째 토막까지 옮겨놓았는데 첫째 토막은 그 의미가 어렴풋해서 둘째 토막의 맥락이 연결되는 것만으로 넘길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적절하게 행동할 기회와 의미를 성취할 수 있는 잠재력은 실제로 우리 삶이 되돌이킬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에 영향을 받는다. 물론 잠재적 가능성 그 자체도 큰 영향을 받는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기회를 써버리자마자 그리고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키자마자 단번에 모든 일을 해버린 것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과거 속으로 보내고, 그것은 그 속에서 안전하게 전달되고 보존.. 2021. 11. 14. 인간세상이 그리운 곳 반겨줄 사람 없는데도 인간세상이 그립습니다. 정겨운 사람과 마치 옛날처럼 지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럴 수 없겠지요? 그런데도 그립습니다. 아파트에 들어앉아서도 그렇습니다. 창밖의 어디에선가 인기척이 들려오면 더 그렇습니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정겨운 대화일 것 같습니다. 나가면 누군가 만날 수 있을 듯해서 들어앉아 있는 것조차 괜찮다 싶습니다. '적막강산'인 곳도 있습니다. 밤이 되면 이름 모를 무엇이 울고, 밖으로 나서면 솔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뿐입니다. 불빛은 누가 사는지도 알 수 없는 단 한 집뿐입니다. 자다가 일어나 창문을 내다봐도 그 집 보안등뿐입니다. 내일 아침이 되어도 나는 출근하지 않습니다. 출근할 곳이 없습니다. 만날 사람도 없고 갈 곳도 없습니다. 내일 아침이 되어도 여기 있어야.. 2021. 11. 10. 크로노타입 - 종달새와 올빼미 아내는 일찍 자는 걸 좋아합니다. 일찍 자는 걸 좋아한다? 그건 아니었는데 나와 결혼해서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아서 새벽에 남몰래 일어나야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정을 나는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 사정은 쓰지 않겠습니다. 단칸방 살림을 오래 했으니까 내가 불을 켜놓고 꼼지락거리거나 부스럭거리거나 들락날락할 때마다 당연히 저 인간도 좀 자면 좋겠구먼 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나는 어떻게 생겨먹은 건지 낮보다는 밤에 정신을 차릴 수 있어서 뭘 좀 읽어봐야 할 것이 있으면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냥 뒀다가 밤에 읽기 일쑤였습니다. 그런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그러자니 아내 보기 미안해서 이렇게 선언해버렸습니다. "당신은 종달새야. 난 올빼미고." 그럼.. 2021. 11. 8. 이전 1 ··· 26 27 28 29 30 31 32 ··· 9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