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내가 만난 세상1153

○○동 ○○호의 밤 ○○동 ○○호는 전에는 우리와 아래윗집이었습니다. 아무리 이런 세상이지만 인사는 하고 지냈습니다. 네 식구 중 아저씨는 어느 분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아주머니와 아들딸은 엘리베이터에서라도 자주 만났습니다. "안녕?" "안녕하세요?" 누나는 잘 응대해 주었습니다. "인사해!" "안녕.. 하.. 세.. 요." 남동생은 누나가 독촉해야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마지못해 인사를 받아주었고 그나마 혼자 만나면 꼭 모른 척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남매는 연년생이고 신체도 건장해서 얼핏 보면 누가 손위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지만 남동생의 행동거지에 대한 누나의 간섭 혹은 책임감은 남달라서 꼬박꼬박 참견하곤 했습니다. 남동생은 남동생대로 사사건건 고집대로 하고 싶어 했고, 그럴수록 누나는 기어이 그 고집을 꺾으려고 하는.. 2023. 2. 21.
내게 옷을 입혀준 여인 경황 중에 깁스를 하고 대기석으로 나왔다. 성탄절을 앞둔, 눈이 많이 내린 이튿날이었다. '자, 이제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일단 집에 가서 차근차근 생각해봐야 하겠지?' 주의사항을 듣고 계산도 했으니까 겉옷만 입으면 귀가할 수 있다. '근데 이걸 무슨 수로 입지?' 그것부터 난제였다. 한 가지 한 가지 난관들이 기다리고 있고 한동안, 어쩌면 무한정으로 그게 줄줄이 이어진다는 건 계산하지 못했다. 우선 2kg짜리 거추장스러운 걸 팔에 붙여놓아서 겉옷을 입을 수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하나?' 미안해서 아내에게 집에 있으라고 한 것부터 후회했다.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여성이 일어서서 말없이 겉옷을 받았다. 젊었던 날들의 내 고운 아내처럼 세상이 넓고 복잡한 걸 몰랐던 날들의 누나처럼 한 번만 만나.. 2023. 2. 19.
겨울밤 벽시계 사륵사륵…… 사각사각…… 눈 내리나? ... 아니네? ... 좀벌레가 벽을 갉아먹고 있나? 아, 벽시계 소리! 갉아먹는 소리 같은, 눈 오는 소리 같은 갉아 먹히고 내려서 사라지는 나의 겨울밤 나의 시간 2023. 2. 17.
그리운 그때 그녀의 그 윙크 2020년 7월 14일의 글을 새로 탑재함. '나'는 '잔'과 헤어집니다. '잔'은 헤어지지 말자고 하지만 돈도 없고 어쩔 수도 없습니다. '나'는 일자리를 찾아 다른 도시로 가게 되었습니다(찰스 부코스키 『팩토텀』문학동네, 2017, 181~182). 잔은 나를 그레이하운드 버스터미널 바깥에 내려주었다. 그녀는 내가 간신히 짐 가방을 내려놓을 시간만큼만 차를 세웠다가 곧바로 출발해버렸다. 나는 대합실로 들어가 표를 샀다. 그런 다음, 안쪽으로 걸어가 등받이가 딱딱한 긴 의자에 다른 승객들과 함께 앉았다. 우리 모두는 거기에 앉아서 서로를 쳐다보았고, 그러고는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우리는 껌을 씹었고, 커피를 마셨고, 화장실에 갔고, 소변을 봤고, 잠을 잤다. 우리는 딱딱한 긴 의자에 앉아서 그다지 .. 2023. 2. 16.
그리운 도깨비 이순 耳順, 종심소욕 불유구 從心所欲 不踰矩 그런 건 아예 말고 내내 팍팍함... 도깨비 귀신이 어른거려서일까 그런 걸 떠올리고 그리워해서 그럴까 2023. 2. 5.
그새 또 입춘 마음대로 시간이 가서 그리 차갑진 않은 바람이 붑니다. 야단스레 또 한 해의 겨울이 오더니 맥없이 사라지려 합니다. 나는 마음뿐이어서 말도 꺼내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자꾸 멀어집니다. 2023. 2. 3.
선생님 저 지금 퇴근했어요 통화 가능하세요? (2023.1.30. 월. 11:42) ○○아 잘 지내지? 날씨는 차갑지만 햇살은 봄 같아 저 햇살 같은 느낌으로 다 잘 되면 좋겠네~ 선생님 어떻게 오늘 딱 문자 주셨어요? 저 지금 인턴 면접 보러 가고 있어요 결과 나오면 연락드리려고 했는데 지금 너무 떨리네요ㅜㅜ 제가 쓴 곳이 경쟁률도 하필 올해 제일 높더라고요 ㅜㅜ 말씀 감사해요 정말 햇살처럼 잘 풀리고 실수만 안 하고 나왔으면 졸을 것 같아요..! 날이 그래도 2~3일 전보다는 많이 풀렸는데 여전히 춥네요 선생님은 잘 지내시죠? 간단히 쓸게~ 밝은 마음으로 예쁘게 씩씩하게 힘내!!! 네 씩씩하게 하고 올게요~ 끝나면 연락드릴게요~ 그래, 기다릴게~ 좋은 ○○이~ (2023.1.30.16:33) 선생님 ㅜㅜ 저 떨어진 거 같아요ㅠㅜㅜㅜ 저런... .. 2023. 2. 1.
백설난분분白雪 亂紛紛 2023. 1. 26.
재숙이 그래 손주들은 잘 자라고 있고? 네, 선생님...... ...... ... 근데 선생님? 응? 밖에 나가고 싶어도 참으셔야 해요. 내일이 제일 춥대요. 알았어. 이번엔 그렇게 해야 해요. 알았어, 그럴게. . . . . . "음, 근데 말이야, 지난 연말 눈 엄청 왔을 때 이미 손목을 부러뜨렸거든. 돌아다니면 또 부러질까? 이번엔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겠지? 어쩌고 저쩌고......" 하고 싶었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재숙이는 남쪽 바닷가 어느 조선소 팀장으로 외국인들을 포함한 그 팀원들에게 '험악한' 용어를 써가며 일한다고 했습니다. (참 예쁜, 우아한 초로의 아주머니지만) 고운 말만 써서는 말을 잘 듣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손목 부러진 얘기를 하면 나도 걔네 팀원들 비슷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023. 1. 24.
답설재! 계묘년이야! "복토끼 한마리 데려가세요~" 선생님, 새해 더 건강하시고 더 행복해지시고 더 평온하시길 바랍니다~^^ '성희가 부군 이 소장이 그린 토끼를 보내줬네?' '응, 내일부턴 계묘년이잖아. 사람들이 덜 속상하고 안전하게 건강하게 즐겁게 지내면 좋겠어.' '넌?' '아, 나도 그렇게 지내면 좋기야 하겠지...' 2023. 1. 21.
안녕하지 않으시네요? 파란편지 선생님, 안녕하시지 않으시네요. 팔을 다치셔서 불편하실 텐데 한 글자씩 마음을 담아 문자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박한 책을 좋게 받아주시고 격려해 주시니 무척 기쁩니다. 팔을 다치신 곳은 시간이 지나야 낫는 상처이므로 시간이 두 배로 빨리 달려서 선생님께서 얼른 나으시면 좋겠습니다~~♡♡ 눈 쌓인 나무들을 바라보며 ... □○○ 드림 2023. 1. 15.
겨울의 멋 겨울은 새벽녘, 눈이 내리면 더없이 좋고, 서리가 하얗게 내린 것도 멋있다. 아주 추운 날 급하게 피운 숯을 들고 지나가는 모습은 그 나름대로 겨울에 어울리는 풍경이다. 이때 숯을 뜨겁게 피우지 않으면 화로 속이 금방 흰 재로 변해 버려 좋지 않다. 세이쇼나곤(淸少納言) 《베갯머리 서책 枕草子》(정순분 옮김,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1. 사계절의 멋' 중 겨울 부분. 2023. 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