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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2022/0217

걷기·오래살기 2016년 6월 15일, '파이낸셜뉴스'에서 「하루 15분 걷기 운동만 해도 수명 길어진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15분쯤이면 나도 가능하겠지?' 싶어서 기사를 읽고 댓글란으로 내려갔다가 놀라움과 함께 수치스러움을 느꼈습니다. '이렇게들 생각하는구나...' 나의 경우 삶의 용기 같은 것이 그런 수치스러움에게 갉아먹히게 되고 그건 예방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마음에 드는 댓글을 고른 것이 아니고 한 부분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은 닉을 감춘 것이고, 가령 1시간 전은 댓글 단 시각, ■은 댓글이 '좋다'고 한 사람(엄지를 위쪽으로 든 손), □은 아니라고 한 사람(엄지를 아래쪽으로 든 손)은 아니라고 한 사람 수입니다. ** 그래도 조금이라도 걸어 다니고 운동하는 노인네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맨날 술이나.. 2022. 2. 28.
귀신과 요정 요정이라는 말은 유럽 중세에 처음 등장했다. 요정 이야기는 특히 아일랜드·콘월·웨일스·스코틀랜드에서 성행했으며, 중세 이래 문학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요정은 아름다우며, 사람보다 더 오래 살지만 영혼이 없기 때문에 죽으면 그것으로 끝난다. 종종 바꿔친 아이를 대신 남겨놓고 어린애를 요정의 나라로 데려가기도 한다. 요정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면 결혼도 할 수 있지만, 몇 가지 제약이 따르고 이를 어기면 결혼생활이 끝나거나 사람이 목숨을 잃는다. 요정들은 사람과 크기가 같거나 작으며, 아주 작으면 키가 10㎝ 정도밖에 안 되는 요정도 있다. 고추나물과 서양가시풀은 요정을 물리치는 힘이 있고, 산사나무?현삼화?금방망이는 요정들이 매우 아끼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함부로 다루면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다음백과.. 2022. 2. 27.
오미크론, 우리 선생님은 어떻게 대응할까? (2022.2.25) ‘팬데믹(pandemic)’이 온다고 했을 때 우선 그 단어에서부터 두려움을 느꼈다. 태풍 이름처럼 일회적·자의적으로 만든 말이 아닌데도 이런 말이 있었나 싶었다. 함께 나타난 단어들조차 온화한 구석이 없는 것들이었다. 재택근무, 화상수업으로 이어진 락다운(lockdown)에 ‘갑자기 이런 세상이 되다니!’ 싶고, 영업시간 단축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보며 셧다운(shutdown)이 원망스러웠다. 그 팬데믹의 고비만 넘기게 되면 숨 막히는 상황은 끝이겠구나 했던 기대는 다시 오미크론이라는 복병으로 돌연 물거품이 되었다. 이젠 굳이 팬데믹이라는 용어를 쓰지도 않고, 희망을 주는 듯하던 ‘위드 코로나’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독감쯤의 고통을 겪는다지만 정말 그렇겠나 싶고, 감염 정점에서는 일일 몇십만 명이.. 2022. 2. 25.
달빛이 잠을 깨웠습니다 발 사이로 달빛이 들어와 잠을 깨웠습니다. 무슨 증거를 삼으려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W 장학관을 안내한다고 어느 대학 건물에 들어가고 있는데 작동을 멈춘 에스컬레이터 손잡이가 칼날 같았습니다. 뭐가 이런가 싶어 둘러봤더니 다른 이들은 손잡이를 잡지 않고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강의를 들은 교수를 찾긴 했는데 그는 병 든 모습이었습니다. 그 건물에서 헤매다가 마스크를 쓰지 않은 걸 깨닫고 얼른 내려와 뒤돌아봤더니 건물 주변이 매우 어수선했습니다. 일단 마스크를 사려고 인근 가게로 들어갔다가 무슨 진기한 먹거리를 만들어 파는 걸 봤습니다. 그걸 좀 사 먹을까 싶었지만 요령 좋은 사람들 때문에 도무지 주문할 틈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 달빛이 나를 깨운 것인데 나는 지금 그렇게.. 2022. 2. 24.
앨리스 먼로 ... 기억 보트가 움직이자마자 옆자리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트에서 처음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었고 항해 내내 할 말이 아주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일어나 갑판으로 나가 사람이 거의 없는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 구명 용품이 든 통 중 하나에 자리 잡고 앉은 그녀는 익숙한 장소들, 또 알지 못할 장소들에 대해 아련한 아픔을 느꼈다.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그 모든 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것이었다. '기억'함으로써 그 모든 일을 다시 한 번 경험한 후 봉인해 영원히 보관해 둘 생각이었다. 단 하나도 놓치거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그날의 일을 순서대로 재구성해 마치 보물인 양 마음 한구석에 갈무리해 넣어두려는 것이었다. 메리얼은 두 가지 일을 예상할 수 있.. 2022. 2. 23.
여기 이 세상에 눈 내리는 날 점심때쯤 눈이 내렸다. 하늘이 부옇긴 해도 구름 사이로 자주 햇빛이 비쳐 내려서 곧 그치겠지 했는데 두어 시간은 내렸고 쌓이진 않고 곧 사라졌다. 바람이 불면 눈송이들이 스스로 갈 길을 찾아가겠다는 듯 제각각 흩날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난분분 난분분'이란 말이 떠올랐지만 그건 '흩날려 어지럽다'(亂粉粉)는 뜻이어서 눈송이들이 어린아이들처럼 즐거이 떠돌아다니는 듯한 그 모습을 '난분분'이라고 하는 건 마땅하지 않을 것 같았다. 오늘 또 눈이 내리는구나 했고, 나는 나의 세상과 함께 점점 축소되고 있고 그렇지 않던 힘이나 크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며 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굳이 그걸 입밖에 내어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다. 서글픈 일이 아닌가. 2022. 2. 21.
"사람의 일생은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사람의 일생은 대체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유종호, 「산등성이의 남향 참호」 『현대문학』 연재 《회상기回想記-나의 1950년》 제10회(2015년 10월호, 206쪽). "한국 인구에 다섯을 기여한 뒤 심장마비로 4·19 나던 해 쉰이 채 안 된 나이로 세상을 뜬 작은이모의 전성시대"를 이야기하며. 나의 어머니도 마흔여덟에 세상을 떠났다. 그 죽음은 죽어서도 흔들렸다. 나도 따라 흔들렸다. 2022. 2. 20.
음악이라는 세상 중구난방으로 있던 사람들이 음악을 들으며 숙연해지고 내면으로 들어갔다 나오고... 하는 장면입니다. 그 순간, 그 시간에 대해 '인간은 거기까지였다, 끝이 났다'고도 했습니다. 소설 《거짓의 날들》(나딘 고디머, 271~272)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는 레코더판을 올려놓은 뒤, 자신이 직접 녹음하기라도 한 것처럼 오보에 소리가 커졌다가 잠잠해지는 동안 긴장하고 서 있었다. 음악 소리가 방에 내려앉았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 위로 용암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 소리는 앉거나 서거나 기대고 있는 사람들 위에 내려앉으며 또 다른 폼페이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십여 분 정도 점점 더 깊숙이 자기 속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모든 움직임과 말이 생명을 잃고 차가워졌다.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푸른 눈.. 2022. 2. 19.
파란편지 애독자 파란편지 애독자 2008.03.27 21:27 안녕하셨어요? 우리 교장선생님.. 아직 성복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신 것만 같아서.. 지금도 어딘가 여행을 가셔서 자리를 비우신 거라... 믿고 싶은 학부모입니다. 저희 아들이 요즘 들어 부쩍 교장선생님 언제 다시 오냐고.. 이제 5학년이라 알 것도 같은데... 아마 그 녀석도 저와 마찬가지로 믿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그러는 거겠지요... 참 원망스러워요. 성복초등학교에서 하시던 일 아직 완성도 되지 않고 이제 겨우 밑그림만 그려 놓으시고 책임감 없이 어디로 가신 건지... 선생님이 오시기 전에는 교장선생님들은 다 그냥 비슷하신 걸로 알고 있었는데... 저희에게 희망을, 꿈을 심어주시고 꿈이 미쳐 봉오리도 피우기 전에 겨울을 만들어 놓으시다니... 소용없는 투정.. 2022. 2. 17.
어제는 눈 어제는 눈발이 곱더니 오늘은 깊은 응달 잔설로만 남았습니다. 눈이 저렇게 내리는 시간에 나는 주차장 안에서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눈은 내릴 땐 저렇지만 내리고 녹아 사라지는 것이어서 생각이 깊어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생각이 깊어진다고는 해도 낭만적인 어떤 영화 그리고 음악 혹은 먼 옛 일들 흔히 서러움으로 변해버린 그 일들 그런 것들에 머물다가 돌아오거나 스러집니다. 오늘 생각하니까 그 정도였습니다. 2022. 2. 16.
선물, 저 엄청난 색의 세계 5학년 때였던가 6학년 때였던가, 모처럼 12색인 크레파스를 앞에 놓고 황홀했었다. '이런 색도 있단 말이지?' 온갖 색깔을 거쳐 무채색마저 흰색, 회색, 검은색 세 가지를 다 갖추어 이제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바다를 그리면서 한 가지 색으로 칠하게 되므로 다른 책은 쓰지 않아서 좋았고 더구나 하늘도 파란색이어서 더 좋았다. 괜히 다른 색을 써야 한다면 그게 무슨 꼴인가 싶었다. 그렇지만 그 파란색이 한꺼번에 너무 많이 닳아서 곤혹스러웠다. 그래서 다음에는 초록과 검정 두 가지 색만 쓰면 되는 수박을 그렸고 그다음엔 노랑과 빨강 두 가지 색만 써서 태양을 그렸다. 크레파스가 퍽 퍽 닳은 걸 보면 색칠이 희미하긴 하지만 잘 닳지 않는 크레용이 더 실용적이긴 하다고 생각했다. 저렇게 화려한 존재의 .. 2022. 2. 14.
이 세월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달랑 "설명할 길도 없고 설명해봤자 별 수 없는 세월…"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옵니다. 베이징에서는 동계올림픽이 열리고 있고 적지 않은 나이에 기저질환이 있는 나에게 코로나는 여전히 위협적인 나날입니다. 순조로운 건 이야기하기가 쑥스럽긴 하지만 나의 이 세상에서는 단지 시간의 흐름뿐입니다. 일주일 후면 '우수'니까 봄이 완연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수(雨水)가 걸핏하면 우수(憂愁)가 되어 떠오릅니다. 문득 내가 국민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네 시간을 마치고 우리 교실이 있는 건물 뒤편 공민학교에 다니는 이웃집 성완(誠完)이 형을 찾아간 그 시간이 떠오릅니다. 칠십 년 가까이 지나가버린 그 시간은, 봄이 오면 꼭 한두 번씩 떠올려본 장면입니다. "봄비가 내립니.. 2022. 2.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