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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알베르 까뮈15

마지막 남아야 할 한 단어 다 사라지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 지식은 단 한 문장, 한 문장이 안 된다면 그럼 한 단어, 단어도 길어서는 안 된다면 단 두어 글자로 된 단어, 그것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 그것은 무엇일까? 사랑? 믿음? 힘? 돈? 기억 혹은 추억? 고독? 향수? 상상력 혹은 추리력?...... 나로선 도무지 재미가 없지만 유명한 어느 과학자는 그게 '원자 가설'이라고 했단다. # 1 1960년대 초, 아주 비범한 미국의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어떤 대격변이 일어나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이 모두 파손되고 오직 한 문장만이 남아 다음 세대의 피조물에 전해지게 된다면, 가장 적은 글자 수에 가장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요? 나는 원자 가설(혹은 원자에 관한 사.. 2024. 4. 10.
"라스티냐크, 끝까지 갈게! 몰락한 고리오라도 괜찮아..." 문득 돌아보니까 아무도 보이지 않습니다. 알베르 까뮈가 이야기한 라스티냐크가 생각납니다. 이게 누구지 싶어서 고골리의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라스티냐크처럼 살았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고골리 영감? 그럴려고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게 되었습니다. 나는 괜찮습니다. # 알베르 까뮈로부터 * 분명, 사람들이 유럽의 대도시 속으로 찾으러 오는 것은 바로 저 타인들 한가운데에서의 고독이다. 최소한, 인생에 어떤 목적을 둔 사람들은 말이다. 거기서 그들은 그들의 교제를 선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거나 혹은 버릴 수 있다. 호텔 방과 일르 생 루이의 오래된 돌들 사이를 오가면서 얼마나 많은 정신들이 누그러졌는가! 거기서 고독으로 죽어 간 사람들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어쨌거나, 전자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그.. 2021. 5. 6.
오며가며 Ⅱ 2012.10.23. Ⅰ 우연히 무대 장치들이 무너지는 수가 있다. 기상·전차·사무실 혹은 공장에서 네 시간, 식사·전차·네 시간의 일·식사·잠, 그리고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 똑같은 리듬에 따라, 이 길을 거의 내내 무심코 따라간다. 그러나 어느 날 라는 의문이 솟고, 그리하여 모든 것이 당혹감 서린 지겨움 속에서 시작된다.(알베르 까뮈, 민희식 옮김,『시지프스의 신화』육문사, 1993, 27). 『시지프의 신화』에서 이 부분을 읽으며 '그래, 맞아! 삶은 지겨움의 연속이야' 하고 생각한 것은, 1990년대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이 책은, 참 어쭙잖아서 공개하기조차 곤란한 어떤 이유로 그럭저럭 대여섯 번은 읽었는데, 그렇게 감탄한 그 몇 년 후 어느날에는 '뭐가 그리 지겨워.. 2012. 10. 30.
중들의 사고방식 중들의 사고방식 SBS TV 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에서 중들이 호텔에서 술을 마시고 도박을 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어쩌다가 그 프로그램을 보게 됐는지 후회스러웠고, 중간에 그만 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기가 막혀 하면서 다 보고 말았습니다. ♣ - 왜 호텔 방에서 도박을 했을까요?.. 2012. 6. 1.
영혼과 영원 나는, 초인간적인 행복은 없다는 것과 일상의 범위를 벗어나는 영원은 없다는 것을 배운다. 이 얼마 안 되면서도 본질적인 부속물들, 이 상대적인 진실들은 나를 감동시키는 유일한 것들이다. 다른 것들, 즉, 인 진실들에 관해서는, 나는 그러한 것들을 이해할 만한 영혼을 갖고 있지 않다. 인간이 짐승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천사들의 행복에서 아무런 의미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만 이 하늘이 나보다 더 오래 영속될 것임을 알 뿐이다. 그리고 내가 죽은 뒤에도 지속될 것 말고 그 무엇을 영원이라 부르겠는가? - 알베르 까뮈, 「알지에에서 보낸 여름」(철학 에세이) 중에서 (민희식 옮김, 『시지프스의 신화』 육문사, 1993, 부록 197~198쪽). 블로그 『강변 이야기』(2012.2.6.. 2012. 5. 1.
프란츠 카프카 『황제의 전갈』 황제의 전갈 : 알베르 까뮈가 말하는 프란츠 카프카의 '상징' 카프카 / 황제의 전갈 황제가──그랬다는 것이다──그대에게, 일 개인에게, 비천한 신하, 황제의 태양 앞에서 가장 머나먼 곳으로 피한 보잘것없는 그림자에게, 바로 그런 그대에게 황제가 임종의 자리에서 한 가지 전갈을 보냈다. 황제는 사자(使者)를 침대 곁에 꿇어앉히고 전갈을 그의 귓속에 속삭여주었는데 그 일이 그에게는 워낙 중요해서 다시금 자기 귀에다 전갈을 되풀이하게끔 했다. 그는 머리를 끄덕여 했던 말의 착오 없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의 임종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장애가 되는 벽들을 허물고 넓고도 높은 만곡형 노천계단 위에 제국(帝國)의 강자들이 서열별로 서 있다──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황제는 사자를 떠나보냈다. 사자는 즉시 .. 2012. 4. 3.
교육의 힘 : 카뮈의 스승 알베르 카뮈의 연보에서는 그의 스승에 대한 다음과 같은 기록을 찾을 수 있습니다.* □ 1918년(5세) • 벨꾸르의 공립학교에 입학. 루이 제르멩(Louis Germain) 선생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그의 추천으로 장학생 선발 시험에 응시, 합격함. (1957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고, 후에 《스웨덴 연설》을 제르멩 선생에게 바침). □ 1932년(19세) • 문과(文科) 고등반에서 학업 계속. • 철학교수 쟝 그르니에(Jean Grenier)를 만나 두터운 친분을 가짐. (후에 《표리》와 《반항인》을 그에게 헌정함). 연보에 따라서는 다른 언급을 더 찾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이런 제자를 가졌더라면……' 그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럴 수 있으면 좋을 건 당연하지만 무얼 근.. 2012. 4. 1.
프란츠 카프카 『변신』 프란츠 카프카 『변신·시골의사』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9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잠자리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는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을 대고 벌렁 누워 있었는데, 고개를 약간 들자, 활 모양의 각질(角質)로 나뉘어진 불룩한 갈색 배가 보였고, 그 위에 이불이 금방 미끄러져 떨어질 듯 간신히 걸려 있었다. 그의 다른 부분의 크기와 비교해 볼 때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앞에 맥없이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어찌된 셈일까?」 하고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그의 방, 다만 지나치게 비좁다 싶을 뿐 제대로 된 사람이 사는 방이 낯익은 네 벽에 둘러싸여 조용히 거기 있었다. 『변신』의 처음 부분이다. 외판원 '잠.. 2012. 3. 15.
아포리즘, 까칠한 눈으로 보기 아포리즘(aphorism), 까칠한 눈으로 보기 ◈ 자주 찾아가보는 블로그 『奈良 blue sky』에서 노자의 인간관계론을 정리해놓은 것을 봤습니다. 블로그 주인은 좋은 인간관계를 인생의 윤활유라 전제하고,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노자(老子)는 주나라의 궁중 도서실의 기록계장(도서관리인)이었다가 후.. 2011. 8. 1.
다시 여름방학 다시 여름방학 장마가 끝나자마자 햇볕이 강렬하고, 방학입니다. 아이들에게 부대끼고, '지원'이라는 고운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행정에 시달리며 올해도 다시 반을 지낸 선생님들은 '벌써 여름방학이구나' 하기보다는 '아, 드디어 여름방학이구나!' 하기가 쉽습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합.. 2011. 7. 18.
사랑하는 것과 사랑받지 못하는 것 나는 마침내 가시 철망들을 통과하여 폐허 사이에 와 있었다. 그리하여, 평생에 한두 번밖에 나타나지 않는, 그리고 그 이후로 그 삶은 한껏 은혜 입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게 해 주는, 그러한 장엄한 12월의 햇빛 아래서, 나는 정확히,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 시대와 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나에게만 제공된 것, 그 버려진 자연 속에서 정말로 오직 내게만 제공된 것을 발견하였다. 올리브나무들로 가득 뒤덮인 공회소로부터 차츰 저 아래 마을을 볼 수 있었다. 마을로부터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투명한 대기 속에서 몇 웅큼의 연기가 솟아올랐다. 쉬임없이 쏟아지는 눈부신 차가운 햇빛 아래 숨이 막힌 듯, 바다 역시 고요했다. 세누아로부터 오는 먼 닭 울음 소리만이 오래 가지 못하는 낮의 영광을 축하.. 2011. 5. 11.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Ⅳ 여기로 나를 찾아오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어쭙잖은 처지에서 당연한 것이지만, 속아서 오시는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은 더욱 그렇습니다. 가령 검색창에 "아름다운 육체" "누드"와 같은 단어를 넣어서 오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까미유 끌로델과 로댕 이야기 때문에 이 블로그를 찾게 되고 낭패감을 맛보며 돌아갈 것이 분명합니다. 낭패감으로 말하면 다른 예도 많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느 학생이 '시지프스가 누구지?' '시지프스의 신화가 뭐지?' 단순한 의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어서 검색을 하게 되어 찾아오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시지프의 신화』 Ⅰ Ⅱ Ⅲ을 다 살펴도 분명한 답을 얻지 못하는 헛수고를 하게 될 것입니다. 단지 그 학생을 위해서 『시지프의 신화』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다시 보며 알베르.. 2010.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