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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개혁15

바꾼다고? 싫어! 좋은 거라도 싫어! 나는 교사 시절부터 교과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교육부에 들어가 일할 때에는 그 관심을 증폭되어 몸이 다 망가지도록 일했다.그렇게 해서 지병을 갖게 되었고, 퇴임은 내겐 그 고초의 시작이 되었고, 심할 때는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구나' 싶었다. 오늘 낮에도 문득 옛일을 떠올리다가 '아, 그건 우리나라 역사상 내가 처음 도입한 거지'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런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모든 걸 생각하기도 싫어졌다. 무슨 일이든 하던 대로 하면 저항이 없다. 작은 일이라도 바꾸자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귀찮고, 잘못되면 책임 때문에 걱정스럽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꾸려면 웬만한 일은 아예 지시하듯 해버려야 하고 저질러 놓고 보자는 식으로 추진해야 .. 2024. 5. 20.
개인별로 배우고 싶은 것을 배우게 하자! (2024.2.23) 우리나라 출산율(0.78명, 2022년)은 이미 세계 최저지만 곧 0.6명대로 내려간다고 한다. 서울은 벌써 0.53으로 떨어졌다. 충격이고 위협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의 학령인구 추계에 의하면 지난해에 40만 1752명이었던 초등학교 입학생이 올해는 34만 7950명으로 줄고, 2029년에는 다시 24만 4965명으로 급감해서 현재 513만 1218명인 초중고 학생이 427만 5022명으로 줄 것이라고 한다. “자포자기”라는 제목을 붙인 신문도 보였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육아휴직, 보육·양육 지원에 노력하고 있는데도 이렇다. 정당들은 계속해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나갈 것이다. 지자체들도 최선의 지원을 강구해나가고 있다. 기업들도 방관하지 않는다. 출산 때마다 1억 원씩 지원하는 곳도 있다. 그럼에.. 2024. 2. 23.
발견 : 삶과 아름다움 사이의 절망적 간극 극복 방법 여기 돈이 많아서 집 안을 아름답게, 화려하게 꾸며놓고 살아가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젊은이가 있다. 누추한 자신의 집을 둘러보며 우울해하는 그 젊은이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에세이에 등장한다. 젊은이는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서 식탁보 위의 나이프, 먹다 만 과일 조각, 뜨개질을 하고 있는 어머니, 찬장 위 술병 옆의 고양이를 둘러보며 서글퍼하고 혐오감을 느낀다. 프루스트는 이 젊은이가 우울함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고 싶어서 그를 루브르 박물관으로 가게 하되 웅장한 궁전을 그린 베로네세, 항구 풍경을 그린 클로드, 군주의 생활을 그린 반다이크의 그림보다는 장 바티스트 샤르댕의 작품이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화가 샤르댕은 과일 그릇, 주전자, 커피 주전자, 빵 덩어리, 나이프, 와인이 담긴 유리잔, 납작한.. 2024. 1. 4.
‘어떻게’를 잃고 ‘무엇’에 빠져버린 교육 여기 대학 진학을 절체절명의 목표로 하는 한 고등학생이 있다. 놀기 좋아하지만 영리한 학생을 떠올려도 좋고 기억력은 그저 그래도 성실의 표본인 경우도 좋고 붙잡고 앉아 일일이 설명해주고 닦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경우여도 좋다. 물론 다른 경우도 있다. 성적이 좋지 않은데도 대학에 꼭 진학하고 싶어 하고 실패하면 실의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는 것만 전제하면 된다. 이 학생은 현실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① 지금부터 학교 공부에 열중한다, ② 조밀한 학습계획을 세워 자기 주도적으로 실천한다, ③ 경험 많은 가정교사를 채용한다, ④ 학원에 더 ‘투자’하고 수면 시간을 줄인다, ⑤ 학교공부, 학원 다니기, EBS 청취 등 종합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한다, 등등 예시가 신통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우리 교.. 2023. 12. 29.
'가설 학습' :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설명 지금 가정부의 아들이 갈릴레이 갈릴레오에게 질문한다. 안드레아 가설이 뭐예요? 갈릴레이 그럴 것 같다고 추정하지만, 사실을 확보하지 못한 주장이란다. 저 아래 광주리 가게 앞에서 펠리체 부인이 아기의 젖을 먹는 것이 아니고, 아기에게 젖을 먹인다는 것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가설이란다. 직접 가서 보고 확인하지 않는 한 별들에 대해서 우리는 아주 조금밖에 못 보는 흐릿한 눈을 가진 벌레들과 같단다. 사람들이 수천 년 동안 믿어 왔던 이론들은 무너질 지경에 이르겠지. 그런 이론들은 거창한데, 그걸 받치는 근거라는 기둥이 형편없이 약하거든. 법칙들은 많은데 그걸 설명해 주는 것은 거의 없단다. 이에 반해 새로운 가설들은 법칙은 별로 없지만 많은 사실을 밝혀주고 있지. 안드레아 하지만 선생님은 나한테.. 2023. 12. 22.
학교는 말이 없다 (2023.6.30) "자신의 꿈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맞춤형 학습을 제공합니다" "재능을 찾아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실현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행복 가꿈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존중의 마음으로 타인과 어우러지는 균형 잡힌 인재로의 성장을 도모합니다" 어느 고등학교 신입생 모집 팸플릿 내용이다. 더 바랄 게 없다. 어떻게 이걸 실현하는지 보고 싶고, 이 나라는 지금 교육 천국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문제는 대입전형, 수능시험이다. 수능 때문에 저 '공약'도 허사(虛辭)가 된다. 유치원, 초등학교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고 있다면 부정할 사람이 별로 없겠지? 사정은 곧 바뀐다. 초등 '의대 준비반' 소문은 그렇다 치고 중고등은 말할 것도 없다. 학교마다 그 어떤 이상적 활동을 구상해도 학생들은 오.. 2023. 7. 2.
별나라에서 온 대통령? (2023.1.27) 학생들의 과목별 노트는 공식적으론 사라진 것 같다. 지시에 따른 변화는 아닌 것 같고 교과서가 ‘활동형’으로 바뀌면서 생각이나 느낌, 조사, 토론 결과 등을 교과서에 바로 적게 해주었기 때문이지 싶다. 앨빈 토플러(『제3의 물결』)가 공장을 모델로 해서 운영되는 대중 교육에서는 표면상으론 초보적인 읽기와 쓰기, 수학을 중심으로 역사와 기타 과목들도 가르치긴 했지만, 그 배후에 숨겨진 ‘시간엄수와 복종, 기계적인 반복 작업에 익숙해지는 것’ 등 세 가지 덕목(德目)이 산업사회의 기반으로서 훨씬 더 중요한 교과과정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하고, 대부분의 산업주의 국가에선 ‘지금(1980년)’도 여전히 그 덕목들이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탄했던 지난 세기의 교육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때는.. 2023. 2. 15.
교육을 바꿔야 하는 이유 (2017.2.13) 김 교사는 교감의 주변을 살펴보며 다가갔다. 무슨 지시를 기다리는지 부동자세로 깜빡깜빡 센서만 작동하는 로봇(가령 R-A)도 보이고 사람 흉내를 내고 싶은지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드는 R-B도 보였다. '저것들은 새 학기를 앞둔 긴장감도 느끼지 않겠지? 이럴 땐 나도 로봇이라면…' "김 선생님, 웬 일이에요?" "저, 올해는 도서실 관리를 제가 좀 맡았으면 해서요." 교감은 곧장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우리 옛날 얘기는 그만하는 게 좋겠어요. 도서정리나 관리는 로봇들도 서로 맡겠다고 야단인걸요. 개인별 독서이력 작성은 기본이고 심지어 독서상담을 맡겠다는 로봇도 나타났어요! 지난겨울에 이미 전교생 독서이력을 다 조사하고 앞으로는 어떤 책을 읽으면 좋겠는지 개인별 권장도서 목록까지 다 작성해 왔.. 2017. 2. 13.
교육과정 실천이 교육개혁이다 (2016.10.17) 교육과정 실천이 교육개혁이다 전철을 타고 현장체험학습을 가는 아이들(2013.10.26.) A. 토플러(1980)는 "노동의 터전이 논밭과 가정에서 공장으로 전환됨에 따라 대중교육(Mass-education)에서 강조된 덕목은 시간엄수, 복종, 기계적 반복 작업"이었다고 비판했다('제3의 물결'). 그는 한국에서 자.. 2016. 10. 17.
무엇을 위한 교육개혁이었나?(20160617) 한국경제TV(2016.5.31) 무엇을 위한 교육개혁이었나? "지금 우리는 지나친 경쟁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인공지능 알파고와의 '대결'로 더욱 유명해진 이세돌 기사가 공익광고에 나와서 물었다. 경쟁으로 일관한 신산한 삶에서 우러난 강한 설득력을 느꼈다. 이 광고의 시사점이 어떤 .. 2016. 6. 27.
어느 단역 전문 탤런트가 본 교육(2015.11.30) 그가 내시로 출연한 사극(史劇)이 있었는데, 이번엔 그의 자녀교육을 화제로 한 토크쇼를 봤다. 사회자에 의하면 초등학생 남매에 대한 그의 교육방침을 '심판'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아버지로서의 구실이 영 엉뚱하고 특이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숙제를 하는 그 '착한' 오누이에게 그는 "제발 그러지 좀 말고 함께 놀자"고 보챘다. 뿐만 아니라 아예 "휴일엔 놀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강요하고, 훼방을 놓았다. 종일 그렇게 했다. "하필 휴일에 책을 보나!" "시원하게 놀자" "텃밭(주말농장)에 가자. 거기서 점심 차려먹자" "친구들이 왔으니까 운동하러 나가자"… 부인도 줄곧 남편의 말에 미소로써1 동조했지만, 아이들은 고비마다 시무룩했다. 공부는 언제 하느냐고 항.. 2015. 11. 29.
강기원 「일요일의 일기」 일요일의 일기 강기원 월요일 돈을 빼앗겼다 화요일 놀림을 당했다 수요일 교복이 찢겨졌다 목요일 몸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렸다 금요일 모든 것이 끝났다 토요일 드디어 해방됐다* 걱정인형을 무표정한 걱정인형을 안고 잠들었던 아이는 여섯 날의 일기를 써놓고 일요일의 일기를 쓰지 못했네 쓰지 못했네 일요일의 일기 걱정인형이 움푹 파인 눈동자 내려다보며 걱정인형이 올려다보는 천장에 목 을 맸 으 므 로 · · 일요일엔 *13살 학생의 일기 ―――――――――――――――――――――――――――――――――――――――― 강기원 1957년 서울 출생. 1997년 『작가세계』 등단. 시집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 『바다로 가득 찬 책』 『은하가 은하를 관통하는 밤』. 수상. 『현대문학』 2014년 9월호, 180~181쪽.. 2015.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