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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교육을 바꿔야 하는 이유 (2017.2.13)

by 답설재 2017. 2. 13.

 

 

 

 

 

김 교사는 교감의 주변을 살펴보며 다가갔다. 무슨 지시를 기다리는지 부동자세로 깜빡깜빡 센서만 작동하는 로봇(가령 R-A)도 보이고 사람 흉내를 내고 싶은지 의자에 앉아 다리를 흔드는 R-B도 보였다. '저것들은 새 학기를 앞둔 긴장감도 느끼지 않겠지? 이럴 땐 나도 로봇이라면…'

 

"김 선생님, 웬 일이에요?" "저, 올해는 도서실 관리를 제가 좀 맡았으면 해서요." 교감은 곧장 딱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우리 옛날 얘기는 그만하는 게 좋겠어요. 도서정리나 관리는 로봇들도 서로 맡겠다고 야단인걸요. 개인별 독서이력 작성은 기본이고 심지어 독서상담을 맡겠다는 로봇도 나타났어요! 지난겨울에 이미 전교생 독서이력을 다 조사하고 앞으로는 어떤 책을 읽으면 좋겠는지 개인별 권장도서 목록까지 다 작성해 왔다니까요?" "그럼 전 뭘 해야 하지요?" "김 선생님! 그걸 왜 저에게 물으시죠? 이 학교에 계시려면…."


새 학기가 코앞이고, 올 들어 4차 산업혁명 관련 뉴스가 줄을 잇기 때문인지 머지않은 날의 교무실 모습이 떠올랐다. 고도로 발달된 인공지능 로봇을 잘 "활용(지시, 감독)"하면서 그 로봇들과 "함께(즐겁게, 재미있게)" 지내면 된다고는 하지만 혹 이세돌처럼 서로 겨루고 다투어야 하거나 그것들이 더 영리한 걸 인정하면서 "로봇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소리나 듣지 않을지 게름직한 느낌도 없지 않다.


서글픔과 당혹감이 교차하기도 한다. 직업별 인공지능 대체 예측이 발표될 때마다 언짢았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맥 놓고 기계로 대체될 수밖에 없다니….' 그나마 교육, 의료 같은 건 그럴 가능성이 낮은 분야라는 건 다행스럽다고나 할까?


지난 연말 옥스퍼드대 발표도 그랬다. 전화상담원(99%), 회계관리인(99%), 스포츠경기심판(98%), 부동산중개인(97%), 택배기사(94%) 등은 로봇이 대신할 확률이 아주 높고, 임상심리사(0.28%), 정신건강상담치료사(0.31%), 음향치료사(0.33%), 사회복지사(0.35%), 안무가(0.4%), 외과의사(0.42%), 의상디자이너(0.49%), 전시기획자(0.5%)와 함께 교육도 아직은 사람이 꼭 필요한 분야여서 가령 초등학교 교사의 기계 대체 가능성은 겨우 0.44%였다.
새해가 되자마자 그 발표조차 뒤집혔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앞으로 10년 뒤 인공지능으로 인해 가장 심한 구직난을 겪을 전공 계열은 의약(51.7%)·교육(48.0%)"이라고 예측한 것이다.


견해차의 배경은 말할 것도 없이 분석관점이다. 앞의 분석은 교육을 난이도가 높고 복합적이고 드라마틱한 활동으로 보았다면, 뒤의 분석은 우리 교육의 실체를 '지식의 전수'로 본 것이 분명하다. 즉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와서 융합적·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고 주문하면 학교에서는 또 학생들에게 "융합적·창의적 인재에 관한 지식"을 주입(!)할 것이 분명하고 그렇다면 그런 '주입'은 알파고 같은 것으로써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판단을 한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교육자들이 이 위기를 돌파하려면 4차 산업혁명기의 교육은 3차 혁명기까지의 교육과 전혀 다르다는 걸 보여주어야 한다. 교육을 로봇에게 넘겨주지 말자는 게 아니다. 주입식 교육은 마침내 무용(無用)한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그걸 고수하려고 안간힘을 쏟는 몸부림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다 스스로 배워가며 살아간다. 스마트폰으로 인터넷을 열어 필요한 정보를 검색·분석·대조·비교·평가하고 판단·선택·결정한다. 물론 다른 매체나 방법을 동원하기도 하고 전문적, 집중적인 사고가 필요한 독서도 한다.

 

그렇다면 저 아이들에게도 우리처럼 스스로 알아봐야 하는 상황, 스스로 알아보고 싶어 할 상황을 만들어주면 된다. 교사는 그런 일을 하는 안내자, 협력자의 역할만 해도 충분하다. 바로 그런 일이 교육다운 교육일 수밖에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답 같은 건 알려줄 필요가 없다. 우리는 한때 인구폭증으로 인한 혼란으로 큰 착각을 하며 지냈지만, 교육이란 본래 안내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