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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작은 학교'는 필요 없다?(2016.12.12)

by 답설재 2016. 12. 12.









'작은 학교'는 필요 없다?



  작은 학교 교장이라면 좋겠다. 우선 종일 놀아보게 하겠다. 어디에서 누구와 무얼 하며 놀았는지, 어떤 놀이들이 재미있는지, 다음에는 또 어떻게 놀겠는지 한나절 그 얘기만 해도 좋겠다.


  동네 돌아다니기부터 하고 싶기도 하다. 시시하다고 하면 가령 시냇물을 따라 내려가 보겠다. 지치도록 걸어가다가 점심을 사먹고 노래를 부르며 돌아오겠다. 본 것, 들은 것, 생각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쓰고 그리고, 혹은 꾸며보는 시간도 마련하겠다.


  중학교, 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보건소, 소방서, 협동조합, 유치원 같은 곳을 다 방문하려면 여러 날이 걸릴 것이다. 걱정할 필요 없다. 할일이 많은 곳들이니까. 예를 들면 지금쯤 불조심 포스터를 그려 소방서 홈피에 실어주고, 자기네 집 가스레인지 옆에 붙여놓았는지 '인증샷' 좀 보자고 하겠다. 우리 고장 순례라고나 할까? 일주일이나 보름쯤? 중학교 교장, 면장, 이장, 파출소장… 그분들과 대담도 해야 하니까 더 걸릴 수도 있다. 괜찮다. 내친김에 함께 의논해서 예산을 마련하면 버스를 대절해서 1년에 서너 차례 교과서에 나오는 곳들을 찾아가보는 프로그램도 만들겠다.


  오후에는 그림이나 그릴까? 아니지! 그건 1년 내내 씨름이나 합주만 하자는 것처럼 편파적이지. 피아노, 태권도, 영어회화, 발레, 인라인스케이트, 프로그래밍, 합창, 민요, 조소, 리코더… 학원이 드문 동네니까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다 듣고 학부모와 지역인사들 중에서 마땅한 강사를 알아보고 자원봉사를 해줄 분도 찾겠다.


  공부? 무슨 공부? 아, 교과서 진도! 얼마든지! 일방적 설명은 그만두겠다. 앞에 서서 "여러분! 조용히 하세요! 내 말부터 들어보세요!" 하는 건 콩나물 교실 시대에 어쩔 수 없어서 써먹은 비상한 방법이니까 이젠 집어치우겠다. 함께 계획하고 알아낸 것들을 차근차근 편집하게 해서 서로 다른 또 하나의 교과서를 가지게 해주겠다. 저절로 유식해지게 해주겠다.


  이런 일이 가능하게 하려고 단위학교에 교육과정 편성·운영권을 주고, '학교교육과정'을 만들게 하고, 교과서대로 주입(注入)하는 교육 좀 그만하자고 간청하는 게 아닌가?


  아무려면 교장이 주도하고 다른 선생님들은 그저 돕기만 하라고 하겠는가. "이런 수가 어디 있느냐!"고들 하겠지. 적성에 따라 사이좋게 가르치면 된다. 전교생이라고 해봐야 몇 명 되지도 않을 테니까 우리는 걸핏하면 다 모여서 공부하고 걸핏하면 소그룹으로 나뉘어서 공부할 것이다.


  각자 장래에 하고 싶은 일은 어떤 것인지, 그러려면 어떤 공부를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 일찌감치 생각하고 자세히 알아보는 긴 시간을 갖게 하겠다. 대학수능시험 성적을 보고나서 겨우 한두 달 우왕좌왕하는 걸 진로지도로 여기는 어리석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주고야 말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한꺼번에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만두자. 그 학교 아이들을 만나면 더 늘어나서 숨이 막힐지도 모른다. 음… 한마디는 더 해야겠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우리와 함께 지낸 6년(혹은 3년)을 떠올리며 힘을 낼 수 있게 해주겠다. 언제나 그런 행복한 시간을 찾게 하고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되게 하겠다.


  학생 수가 줄어든 '작은 학교'는 그동안에도 많이 사라졌지만 앞으로 더 없앤다고 한다. 5년 안에 80여 곳을 통폐합해야만 하는 교육청도 있다. 수많은 아이들을 모아놓고 "여러분! 조용히 하세요!" 하던 방법을 그 작은 학교에서도 써먹으면 어떤 학부모가 도시로 나가자고 하지 않겠나. '이런 시시한 학교에서 뭘 배우겠나?' 싶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 그러면 통폐합해야 한다. 당연하다. 학생이 없는 학교를 왜 그냥 두겠나. 그게 말이나 되겠나.


  그렇지만 작은 학교가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만은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이 적으면 개별교육에 불리한가? 교사 수가 적으면 민주적 운영이 불가능한가? 작은 학교여서 장애가 있다면 그런 건 없애면 된다. 그게 교육이고 행정이다. 그래서 교육자가 있고 그 교육자를 돕는 교육행정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