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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학교는 마음 편하게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2016.9.19)

by 답설재 2016. 9. 19.







학교는 마음 편하게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의 3월은 학교 측에서 아이들이 잘 적응하도록 배려해주는 기간이라 그나마 여유롭지만, 4월이 되면 곧 교과서에 따른 본격적 학습을 시작하고 당장 '받아쓰기'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다. 앨빈 토플러도 "공부란 건 결국 읽는 일"이라고 했지만 대부분의 학습이 글자를 익혀야 가능한 것이므로 글자읽기가 학습의 기초·기본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이 시기 아이들은 워낙 자유분방하고 주의집중시간이 짧아서 자칫하면 가르쳐야 할 걸 놓치게 되므로 교사들은 온갖 노력으로 끊임없이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켜야 한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도 한두 시간이면 아랫배가 출렁거리니 오죽하겠는가. 그러다가 6월쯤? 아이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철이 좀 들고 말귀도 제법 알아들어서 그 시기만 잘 넘기면 반(半)은 성공이다.


  그런 시기에 '백약이 무효일 때의 통제수단'(?)이 바로 받아쓰기이다. "자, 이제 받아쓰기 좀 해보자!" 하면 일순간 온 교실이 가라앉는다. 학부모들은 하교하는 자녀에게 다짜고짜 받아쓰기한 걸 내놓으라고 하니까 천방지축인 아이들도 꼼짝을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위력이 그처럼 대단하긴 해도 아이들이 '시험보기(경쟁)'에 순응(順應)하기 전에는 교실이 난장판이 되기 일쑤다. 종횡무진 돌아다니며 남의 틀린 글자를 바로잡아 주는 아이도 있다. "얘네 엄마 엄청 무서워요! 큰일 나요!" 그런 아이에겐 어떤 설명이 필요할까? "시험은 혼자 치러야 한다. 가르쳐주는 건 나쁜 짓이다!"


  당연한가? 남을 돕고 서로 가르쳐주는 건 나쁜 일인가? 그래서 경쟁부터 가르쳐야 할까? 모두들 잘 배우면 좋겠지만, 고학년이 되면 어차피 등급화해야 하는 제도가 기다리고 있어서(다 '수'를 받을 수 있도록 가르쳤다고 해봐야 그럼 그렇게 하라고 할 리가 없다!), 제아무리 잘 가르치고 배워도 다 '수'를 받을 수는 없으므로(잘하는 아이가 너무 많으면 안 된다니!) 처음부터 아예 도움을 주고받지 못하도록 가르쳐야 할까? '교육'의 이름으로?


  그동안 몇 차례 "초등학교에서는 시험을 치르지 않도록 한다!"는 '선언'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교육부가 1~2학년의 한글교육을 강화하기로 했고, 어느 교육청에서는 '안성맞춤 교육과정'을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취학 전 사교육의 부담을 없애고 한글을 익히지 못한 채 입학한 아이가 학습부진을 겪는 부작용을 해소하여 학부모들이 안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뻔하다. 반론이 전개될 것이다. 90% 이상 한글을 익혀서 입학시키는 현실을 무시한 정책, 경쟁사회의 기본원리를 외면하는 시책이라는 성토가 나올 것이다. 교육부나 교육청, 학교는 그런 비판에 대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 우선 느긋해야 한다. 좀 늦은 아이가 기가 죽어서 아예 낙오자로 추락하는 경우를 예방해야 한다. "학교에서 가르치면 걷지도 못하고 밥도 못 먹고 말도 못하는 부진아가 나올 것"이라는 조소를 상기해야 한다.


  늦게 배우는 건 특징일 뿐인데도 그동안 우리는 쉽사리 부진·무능으로 취급했다. 아이들은 천차만별의 개성을 가졌기 때문에 다 소중하다. 그런데도 늦고 빠른 특성에 따라 협력하며 배울 수 있게 해주지 못하고 가르치는 쪽의 편의에 따라 설정한 공통적 학습속도를 강제로 적용하여 획일적·경쟁적으로 가르친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


  교육과 아이들을 보는 눈(觀點)을 바꾸면 좋겠다. 아직 글자를 익히지 않았어도 학습에 지장이 없고 차별을 받지 않는 지도 방법을 개발하면 좋겠다. 이미 글자를 읽을 줄 아는 아이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자연스러운 교육이 필요하다. 정답도 오답도 없고 느려도 괜찮은 학습문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해결하는 시험문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평소의 수업도 그렇게 해야 한다. '내 동료는 모두 소중하다'는 인식을 갖지 못하면 남보다 빨리 글자를 익히고 남보다 더 많이 알아도 존중받지 못하는 학교문화를 가꾸어야 한다. 학교는 어느 아이나 마음 놓고 배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이런 교육을 이상하다고 하면 우리는 비정상이다.







                                                                         Chung Kim,《underwater cwkim》IMG_7739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