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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축제처럼! (2016.11.14)

by 답설재 2016. 11. 14.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축제처럼!



  그야말로 다사다난한 나날 속에서 관심 밖의 일일 수도 있지만 오는 17일(목)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다. 응시생 60만 5988명과 그 가족들은 시험이 끝날 때까지 얼마나 어렵고 복잡할까.


  어김없이 특별대책이 발표되었다. 관공서 출근시각이 늦춰진다. 전철 러시아워 운행시간도 연장되고 횟수도 늘어난다. 시내버스도 집중 배치되고 시험장 안내도 해준다. 개인택시 부제 운행도 해제된다. 행정기관들도 비상 수송 등 편의를 제공한다. 전국 1183개 시험장 주변은 차량 출입이 통제되고, 영어 듣기평가를 위해 항공기 이착륙 시각이 조정되며, 각종 소음 유발을 자제해야 한다. 이것들은 권장사항이 아니다. 교육부에서는 '국민적 협조'를 당부했다.


  문제는 우리의 시각(視覺)이다. 익숙해서 당연한 일 같지만 예삿일이 아니다. 영국의 데일리메일은 "시험의 중압감이 나쁘다는 걸 확인하려면 잠시 한국 학생들을 동정하는 시간을 가져보라"면서 한국에서는 수능시험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 결혼 등 일생을 좌우하는 관문으로서 일시에 수십만 명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했다. 가령 전국이 '침묵상태(hush mode)'가 되는 듣기평가에 대한 '배려'는 사실은 어린 학생들에 대한 '압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노력만 하면 누구나 고득점자가 될 것처럼 무한 경쟁을 시키기도 하고, 무슨 축제에서처럼 함성을 올려 응원을 해도 좋은 일로 여긴다. 어느 교육감 후보가 소화가 잘 되는 비빔밥을 먹으며 '열공'했다는 일화가 회자되었고, 특목고 교장이라는 사람이 모든 학생을 다 명문대에 진학시켜 줄 것도 아니면서 방학도 없이 공부 많이 시켜 좋은 대학 보내려는 게 죄냐고 부르짖는 걸 봤고 "교육감이 된 사람은 우선 경쟁의 가치부터 인정하라"는 주장이 일간지 사설로 등장하는 것도 봤다. 이 나라의 지배적인 교육관(敎育觀)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심지어 "수능에 좋은 IQ 보양 레시피"라는 기사가 정부 발간 월간지에 실린 적도 있다.


  교육에 웬만큼만 관심이 있다면 "경쟁중심, 평가만능 교육"을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하고, 우리 학생들이 암기위주 주입식 수업, 객관식 시험 성적으로 한 줄을 세우는 경쟁에 너무나 시달리고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런데도 이 시험의 위상은 흔들릴 줄 모른다. 허물어질 기미가 없다. 최근에는 한국에까지 와서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의 90%는 아이들이 40대쯤이면 전혀 쓸모없을 것"이라고 한 유발 하라리 교수의 발언이 충격을 주었지만 우리 교육에 미칠 영향은 또 전무하지 싶다.


  말도 안 된다고 할 제안을 해보고 싶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이 시험만은 실시해야 한다면 차라리 학생들이 진로에 따라 선택하는 다양한 '능력고사'로 바꾸면 좋겠다. 남들이 해외토픽쯤으로 여기는 이 시험을, 정답 시비도 없고 아예 실패하는 학생도 없는, 진로를 확인하고 격려해주는 세계 최고 축제로 바꾸어 우리 교육의 체증이 일시에 다 뚫리도록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것이다.


  불가능할 것도 없다. 프랑스에서는 장기간 계속되는 바칼로레아의 첫날(철학시험)을 온 시민들이 '생각하는 날'로 여긴다고 하지 않는가. 시험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는 건 우리와 같지만 그날 저녁 대강당에서 지식인들의 진지하고 즐거운 토론회가 열린다고 하지 않는가.


  인공지능학자 로저 샨크(2000)는 "우리가 아직 교사·교실·교과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은 2050년경에는 거의 웃음거리"가 되고 "우리가 교육의 개념을 바꾸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는지, 왜 수능 성적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왜 답을 암기하는 것이 지능의 증거라고 했는지 물을 것"이라고 했다. 그날 "그런 교육을 하는 나라가 하나 남아 있다"고 우리를 조롱하도록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상습 부정행위 국가'라는 낙인이 찍혀서 한국의 시험장 26곳을 폐쇄한다는 ACT(미 대학입학자격시험) 사의 발표를 보고 전 세계 130개국 중 유일한 이 수치스런 조치를 문제해결의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