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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숙제는 누가 왜 내는 것인가 (2016.8.22)

by 답설재 2016. 8. 22.









숙제는 누가 왜 내는 것인가



  어느 대통령이 어린이날 아이들과 면담하는 장면을 중계한 적이 있다. 그 발언이 예상되었던 건지 혹 돌발 상황이었는지 의문이긴 했지만, 한 아이가 불쑥 숙제 좀 내지 않으면 좋겠다고 하는 걸 보며 저런! 왜 하필 저걸… 싶었는데 대통령은 그게 아니었다! 선뜻 그러겠다고, 그 정도는 생각해보고 말고 할 것도 없는 간단한 문제라는 듯 즉시 약속해버렸다!


  "아무리 어리기로서니 학생이 숙제를 싫어하면 그게 말이 되나요?" 하고 되받았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긴 하겠으나 초등학교 아이들의 사소한 문제라 하더라도 짐작으로는 전문가들이 대통령의 답변 방향을 신중하게 검토했을 것 같고, 그렇게 하여 단호히 그렇게 하겠다는 약속을 했으니까 전국의 모든 선생님들께 그 뜻이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석연치 않은 일일 것 같아서 이래저래 복잡하게 됐다는 오지랖 넓은 걱정을 했었다.


  결과를 알아보진 않았다. 다만 "초등학교 숙제 금지!"라는 공문서가 각 학교에 시달되는 상황은 아무래도 그리 교육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서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대통령과 아이들 간의 소중한 약속을, 좀 속된 표현으로 깔아뭉개고 말았다면 그것 역시 우스운 일이었을 것이다. 모르겠다. 적절한 조치가 있었겠지만 어쨌든 그때 그 물음과 답변의 결과만은 흐지부지되고 말았기에(다행히!) 지금도 왈가왈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청을 방문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앞으로 저학년(1~2학년)에게는 학교에서 숙제를 내주지 않도록 하는 '숙제 없는 학교'를 만들 예정"이라고 했다는 기사를 봤다. 사전지도가 이루어졌겠지만 마침 아이들도 '놀 권리 정책 제안'을 했다고 한다. 숙제 없는 학교! 지금도 장학계획에 '엄마숙제 없애기' 항목이 있어 부모 도움이 필요한 숙제는 내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학생 자신이 하는 숙제도 내지 않게 할 방침이라는 것이었다.


  반대의견들도 보였다. 교사들의 생각. "일기나 짧은글쓰기처럼 필요한 숙제도 있다" "학원 숙제 때문에 부담이 줄어들지 의문이다" "숙제가 없으면 사교육 여부에 따라 학력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 "교사가 상황에 따라 결정할 일을 교육청이 간섭해서는 안 된다."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걱정했다. "학교에서 숙제를 내지 않으면 아이가 뒤처질까봐 불안해하는 엄마들 때문에 학원으로 더 몰려갈 것이다" "학원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오히려 학교에서 충분히 가르쳐주면 좋겠다."


  이에 대해 교육청에서는 "정책적인 원칙을 세우려는 것이지 교사에게 숙제 내지 말라고 강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강제하지 않을 것' '정책적인 원칙'이라는 건 그때 그 '흐지부지'가 된 대통령 면담 결과와 같은 건가 다른 건가?


  그 대통령, 교육감을 원망하는 건 아니다. 그런 정책들을 대통령이나 장관, 교육감이 일일이 직접 마련할 수는 없고 실제로는 교육이론과 현장을 꿰뚫는 전문가들이 준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전문가라면 교사들은 그럼 어떤 사람들인가. 매번 숙제를 낼지 말지의 판단을 어려워하는 낮은 수준의 전문가들인가. 그렇다면―교육과정에 들어 있는 교육목표와 내용이 어떤 것이고, 어떻게 지도·평가해야 하는 것인지 척 보면 파악할 수 있는 전문가가 바로 교사이긴 하지만 행정기관에서 그런 원칙을 세세히 정해주어야 실효성이 확보된다면―그게 무슨 자율성을 가져도 좋은 전문가들일 수 있는가. 학부모, 학생들로부터 그 전문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아이들이 더 놀고 싶어 성화였다고 치자. 그들의 요청을 어떤 분명한 관점에 따라 검토하고 답할 때, 그 관점의 기준으로 '교육과정' 말고 또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 교육과정에 대한 최종 해석과 판단은 누가 해야 하는가. 그것은 누구의 의무이고 권한인가. 혹 교육과정의 전문성 위에 행정적 전문성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아이들이 뭘 물을지 몰랐다고 해도 그렇다. "그런 건 선생님께 여쭈어보라"고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