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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책을 읽게 하는 학생부 종합 전형(2016.5.23)

by 답설재 2016. 5. 24.






                                      아마도 반디앤루니스 센터럴시티점 앞에서








책을 읽게 하는 학생부 종합 전형



  '신언서판(身言書判)'이란 고색창연한 말이 있다. 사람을 찾을 때는, 네 가지 조건을 꼼꼼히 따져 점수를 매기고 총점·평균점수로 결정했다는 건 아닐 테고 갖추어야 할 것을 두루 갖추어 쓸 만한 재목인지 아닌지 마주해보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뜻 아니었겠나 싶다. 그럴 때 '출중한 인물이다!' 싶으면 "부모님은 어떤 분인가?" 묻게 되고, 가문의 전통 혹은 적수공권으로 이룬 일들이 인간 됨됨이의 배경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있다. 최근 교육부는 로스쿨 입시에서 앞으로는 아예 '블라인드 면접(무자료 면접)'을 실시하고 응시원서나 자기소개서에 부모나 친인척 직업 등 '밝히지 않아야 할 사항'을 명시하면 감점, 탈락 등으로 제재하기로 했다. 그런 기회를 악용하는 약삭빠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잘됐다 싶으면서도 또 다른 의구심이 생긴다. 이와 같은 제재가 어디까지 세분화되어야 하는가. 이렇게 하면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는가. 자신의 부모·친인척은 보잘것없다고 기술하는 건 괜찮은가. 이로써 공연히 위축되거나 피해를 입는 경우는 없을까….


  대학입시의 주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학교생활기록부 종합전형('학종')에 대한 논란은 더 복잡하다. 우선 학교생활기록부의 내용을 입학전형에 반영하게 된 취지부터 상기해야 한다.


  1994학년도에 처음 도입된 대학수학능력고사는 그동안 평가방법(절대평가 혹은 상대평가)과 응시 과목, 점수표기 방식 등이 여러 차례 바뀌어왔다. 그렇지만 이 시험에는 그만큼 근원적인 단점과 한계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가령 씨름을 해서 올해의 입학생을 뽑게 되었다고 하자. 유아들이라도 "하필 씨름이냐?" "불공평하다"고 불평을 할 것은 보나마나한 일이다.


  그런 불평은 노래나 그림으로 하겠다고 해도 마찬가지이고, 몇 가지 과목을 대상으로 한 지필고사의 경우도 그럴 수밖에 없다. 지필고사만으로는 모든 학생들의 능력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일차적 문제점이지만 학교와 학생, 학부모들이 이 시험에만 온갖 노력을 집중함으로써 공교육의 정상화를 기대할 수도 없게 된다. 이리하여 학업성적, 품성과 태도, 진로, 희망 등 갖가지 특성이 나타나 있는 학교생활기록부의 내용을 대입전형에 종합적으로 반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현 고교 2학년 학생들에게 적용될 대입전형에서는 수시모집으로 입학할 학생이 70%가 넘게 되어 내신 성적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 되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독서, 봉사활동, 동아리활동 등 이른바 '비교과활동'까지 필수적 전형요소가 되면서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의 대입전형 반영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교내경시대회 수상실적, 인증자격시험, 독서활동, 자율동아리활동이 사교육을 부추기고, 부모의 배경에 따른 교육격차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므로 이것들은 아예 평가에서 제외해버리자는 것이다.


  그렇지만 교사들의 긍정적 반응도 확실하다. "과거엔 자율학습시간에 책을 읽거나 동아리활동을 하면 정신없는 학생이었고 신문을 읽는 것도 제재를 받았다" "학종은 공교육 정상화를 추동(推動)하고 있다. 오지선다형 문제풀이식 수업 외에 다양한 교육활동이 가능케 한다" "학종은 학교를 변화시키고 있다. 교사들이 학생의 학교생활과 진로를 진지하게 관찰하고 고민하도록 한다"…


  교육부에서는 대학, 교사,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대안에 대한 공감대가 이루어지면 제도개선을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첨예한 대립으로 담당자들은 속이 탄다고 할지 모르지만 교육적으로는 이 얼마나 다행한 논란인가. 모처럼 학교(교사)가 주인이 되는 교육이 정착되도록 부정적 사례 근절에만 초점을 맞춘 제도 보완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가령 어떻게든 책 읽는 습관, 태도를 평가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도리이지 그 방법이 복잡하고 어렵다고 해서 아예 평가하지 않겠다거나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해버리면 그게 바로 비교육적인 조치이고 아이들을 망치는 교육정책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