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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학교가 무서운 교사들(2016.2.29)

by 답설재 2016. 2. 29.









학교가 무서운 교사들



  학교가 무서운 교사라면 교직생활이 즐겁기는커녕 마지못해 하는 것이어서 그 실체가 교육적이기를 바라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로 학교를 무서워하는 교사들이 있다.


  학생이 교사를 빗자루로 때리고 손으로 머리를 밀어붙이는데도 교사는 그게 친구간의 장난처럼('장난을 그렇게 하나?')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도 들지 않던, TV 뉴스의 그 영상이 잊히지 않는다. "학생이 선생님하고 좀 장난스럽게 했다." 학교 관계자는 어정쩡한 반응을 보였다.


  그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그런 행위가 일상적이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수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일까? 그 수준의 행위도 허용될 정도로 분위기가 긍정적인 학교라는 뜻이었을까? 그럼 그게 난장판이지 학교인가? 다른 상황도 생각해봐야 한다. 결국 경찰이 관련 학생들을 검찰에 넘기는 강경한 조치가 이루어졌다. 이제 그 교사는 교직생활에 안정감이나 행복감, 자존감을 느끼고 있을까? 석연치 않다. 어느 경우도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이 교사를 무시하거나 폭언, 욕설, 성희롱, 위협 등 용납할 수 없는 언행을 공공연하게 하고, 지도·지시에 따르기는커녕 수업까지 방해하는 경우는 이미 희귀한 사례가 아니다. 게다가 학부모들의 비위 사례도 만만치 않다. "아무개 나오라!" "담임을 바꾸라!" 같은 폭언·폭행에 시달리면 학교는 아예 경계태세를 나타내게 된다.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학생·학부모의 이와 같은 교권침해 사례는 2010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무려 2만6천여 건, 연평균 4천7백 건이 넘었다.


  교사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지만 정작 그 교사가 된 걸 후회하는 경우도 많다. 그럴 수밖에 없다. OECD 34개 회원국 교사 10만5천명 대상 조사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교사 20% 이상이 그렇다고 했다. OECD 평균 9.4%의 두 배가 넘는다. 가장 안정적인 직업의 하나라는데도 그렇다.


  이래저래 교사의 권위가 무너지고 있다. 학생을 곤란하게 하기가 난처해서 혹은 밝혀지는 것 자체가 민망하고, 불명예스럽고, 번거로워서 감추고 마는 경우도 많다. 다 드러내면 부지기수일 것이다. 교사를 "시험문제 내는 사람"이라는 학생들도 있고, 심지어 "학원은 교육기관, 학교는 평가기관"이라는 자조적인 말도 나온다. 이건 차라리 '전락(轉落)'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가령, '교원 예우에 관한 규정'에 따른 교권보호위원회 소속 변호사도 활동의 한계가 있어 자문에만 그친다는 불평을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것이 교육이다. 학교가 경찰·검찰과 다른 점이다. 이런 조치를 '적극적 조치'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적극적 조치는 교육과 학교의 역할 재정립이다. 그 역할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학교는 어떤 곳인지, 교사는 왜 전문가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모든 학생들에게 동일한 지식을 많이 주입시켜 일부 뛰어난 학생을 좋은 대학에 진학시키고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일을 교육의 핵심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는 교과내용을 모두 암기하는 사람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교육은 동일한 목표아래 학생들을 획일적으로 훈련시키는 행위 그 이상의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전 학생의 개성에 따른 목표의 개별화와 그에 따른 전문적 안내·지도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노인이 지식 혹은 부(富)의 권위를 가지던 시대의 종언과 함께 지식의 전달에 열중하던 학교의 역할은 이미 끝나고 말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시대의 단일품종 무제한 생산 형태의 교육에 머물게 한다면 학교와 교사는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붕어빵 교육'에 대한 앨빈 토플러의 경고도 그렇지만, 걸핏하면 자랑으로 삼는 우리의 수학·과학 학업능력은 고1을 정점으로 하여 성인이 되면 OECD 최하위 수준으로 추락한다는 최근의 보고는, 그 증거가 되는 사례이다.


  새 학년도가 시작된다. 교사가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았다"는 말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옳다. 요즘 아이들에겐 웃음거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흔히 스산했던 봄 : 잘도 오던 봄, 맞이해야만 했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