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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누가 '수포자'를 만드는가 (2015.12.28)

by 답설재 2015. 12. 28.

 

 

 

 

 

 

 

 

누가 '수포자'를 만드는가

 

 

  "그 교사는 '교포(校抛)'예요." 교감 승진도 포기했으니까 웬만하면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다. 교육이 개인의 진로에 따라 해야 할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인가. 겨우 그런 것인가. 특수한 경우이고 어처구니가 없지만 엄연한 사례다. '수포(數抛; 수학 포기)'도 있다. 학생들의 은어(隱語) '수포자'는 금세 일상용어가 되었다. 심각한 현상이다. 수학은 포기해도 무방한가.

 

  교육방송(EBS)에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2015.8)에서 고교생과 재수생 1만3140명 중 25%가 자신을 수포자라고 했다. 고3(31%), 고2(21%), 고1(17%)의 순으로 그 비율이 높았다.

 

  전국 초중고 학생 7719명을 대상으로 한 교육시민단체 '사교육없는세상'의 설문조사(2015.5) 결과는 더 심각하다. 초 36.5%, 중 46.2%, 고 59.7%가 수포자라고 대답했다. 막 공부를 시작한 초등학생의 경우도 예삿일이 아니고, 고등학생 과반수가 스스로 수포자라고 한 것은 수학시간에는 잠이나 잔다는 소문과 함께 듣기조차 난처하다.

 

  우리나라 학생들의 수학 성적은 OECD 회원국 중심 학업성취도 국제비교평가(PISA)에서 매번 1~3위를 차지한다. 자랑거리는 거기까지다. 성적은 최상위 수준이고 계산은 특히 잘하지만 사고력, 응용력 순위는 떨어지고, 학습흥미도는 34개국 중 28위로 최하위에 속한다. 대학입시를 목표로, 무조건 많은 시간을 투입하는 공부를 하기 때문에 입시가 끝나면 생각조차 하기 싫게 된다.

 

  수학은 '공부하는 방법에 대한 학문'이라고 한다. 사고력, 문제해결력 등 기본 역량을 기르는 학문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수포자라고 하는 건 정상적인 공부를 포기한 것이다.

 

  의아한 것은, 이 현상을 걱정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이다. 남의 일 바라보듯 한다. 어디에서 어떤 고장이 난 걸까? 수학교육의 목표·내용·방법·평가의 기준이 되는 교육과정부터 비정상인가? 그럴 리 없다. 전문가들이 전문적 과정을 거쳐 결정한 것으로, 그 책임을 결코 교육과정에 전가할 수는 없다. 그럼 교과서의 잘못인가? 그렇지도 않다. 우리나라 교과서는 진도에 맞춰 차근차근 따라가지 않으면 위험에 빠질 요소가 곳곳에 있다 하더라도 그렇다고 해서 대량의 수포자가 생길 정도라고 매도하기는 어렵다. 학생들을 원망할 수도 없다. 두뇌로는 세계적 수준인데 무슨 원망을 하겠는가. 더구나 그들은 시키는 대로 유례가 없을 만큼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문제는 가르치고 평가하는 방법이다. 내용은 중시하고 방법은 경시하는 풍조에 따라 아무나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차근차근 결손을 보충해주고 심화학습을 시켜주는 사교육까지 경계하고 싶지는 않다. 진도 나가기에 급급한 경우의 학교교육을 보완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과정과 지도법에 대한 전문성도 없이 무턱대고 문제를 풀게 하거나, 자녀교육에 대한 욕심만으로 선행학습으로 내모는 무모함은 간과할 수 없다. 학부모 연수회에서 "댁의 자녀가 수재 혹은 천재인가?" 물었더니 3/4이 손을 들었다. 나머지 1/4에게 "겸연쩍어서 손을 들지 않은 것 같다"고 하자 대부분 그렇다고 했다. 이런 학부모들이 학교의 "느려빠진" 진도에 만족할 리 없다. 학생들을 기계적인 문제풀이, 학부모의 야욕을 기회로 삼는 선행학습으로 내몰아 지치고 넌더리가 나서 마침내 수포자의 길을 걷게 한다.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문제를, 실수하지 않고, 남보다 빨리 풀게 하는 이상한 수학교육, 기이한 교육목표가 판을 치고 있다. 어떤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하는 공부를 좋아하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그 '생각' 같은 건 접어두고 문제지를 받자마자 숨 쉴 겨를 없이 풀어나갈 수 있는 수능시험대비용 '훈련'을 시키는 엉터리 기능 교육,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교육도 아닌 '단련'이 문제다. 학교도 행정기관도 전문성이 필요한 일에 아무나 뛰어드는 현상을 그저 바라만 보거나 심지어 방조하고 있다. 아이들을 우리 손으로 수포자로 만들고 있다.

 

 

 

 

 

 

 

"주입식 교육은 끝났다!"

이 외침이 사방에서 들려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