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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노벨상의 열쇠를 가진 선생님께(2015.11.2)

by 답설재 2015. 11. 1.

 

 

 

 

 

 

 

노벨상의 열쇠를 가진 선생님께

 

 

  10월만 되면 괜히 초조하고 곤혹스러워집니다. 온갖 연례행사가 이어지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조용해지던 '독서의 계절'이 아예 '노벨상의 달' '노벨상의 계절'로 바뀐 것 같습니다. 받아야 할 상을 받지 못했다는 듯, 때가 됐는데도 받지 못했다는 듯 너무나 섭섭해 합니다.

 

  무슨 일만 일어나면(노벨상의 경우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일자리를 늘리거나 돈을 더 들이게 되는 현상도 이어집니다. 올해도 기초과학 분야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다는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지난해에만도 18조원의 정부예산을 연구개발(R&D)에 투입하여 정부·민간을 합친 우리나라 총 연구개발 투자율은 OECD 국가 중 1위였답니다. 이렇게 하다가 성급한 사람들로부터 그 돈 다 어떻게 했느냐는 원망이 일게 될까봐 초조해지기도 합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왜 아무 말씀이 없습니까? "여러분! 이제 그만 조용히 기다립시다!" 교실에서처럼 그러실 수는 없겠지요. 하기야 이젠 용어조차 거의 소멸된 '치맛바람' '지나친 교육열'도 긍정적으로 해석한 것처럼 이런 '소동' '갈구'가 우리의 꿈, 기대, 열망, 의욕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올해는 그 '열병'이 유독 심했습니다. 이웃 일본이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그것도 이름조차 생소한 지방대학 출신의 두 학자가 생리의학상과 물리학상을 한꺼번에 받아서 일본은 이제 과학상 수상자만도 21명이나 됩니다. 매년 "일본은 이렇게 했다!" "우리도 당장 그렇게 해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던 그 기세가 이참에 아주 꺾여버리지나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사실은 남을 추종하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듣기만 하는 수업으로는 교수를 능가하기도 어려운 것처럼 그렇게 해서는 앞설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중국의 수상은 더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처럼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정부가 수립되었는데도 투유유(屠呦呦)라는, 박사도 아니고 해외유학도 하지 않은 중국전통의학연구원 학자가, 그것도 우리로서는 걸핏하면 다른 의학과 벌여야 하는 논쟁의 모습만 보아온, 1600년 전 고대 의학에서 영감을 받아 그 흔한 '개똥쑥' 나부랭이로 말라리아 특효약을 개발하여 생리의학상을 받았으니, 이젠 "아직은 기다려 달라"거나 명문 대학, 명문 연구소를 이야기하기도 민망하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이 숙원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기는 하겠지요? 누가 나서야 합니까? 이젠 선생님께서 나서야 할 때가 온 것 아닙니까? 만약 수능 만점자 최다 배출, 명문대 최다 합격률, 족집게 과외 같은 걸로 이 상을 받을 수 있다면 우리에게는 이미 노벨상이 쏟아지고 있을 것 아닙니까?

 

  노벨상 수상은 무엇보다도 연구 인력 양성에 달렸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부터 깨달아야 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직장을 잡은 후에 시작하게 해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부터 깨쳐야 합니다. 가령 물리학상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56)는, 말하자면 56년간 중성미자를 연구했고, 투유유(85) 할머니는 85년간 약초를 연구한 것입니다. 중국은 마오쩌둥(毛澤東)의 '백인 계획'이 옳다는 것을 알고 후진타오의 '천인 계획' 시진핑의 '만인 계획'으로 이어줌으로써 그 성과가 드러난 것입니다.

 

  노벨상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이 되었습니다. 그 꿈은 선생님 아니면 해결할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과제입니다. 한 인간의 장래를 좌우하는 힘은 대학보다 초중고에서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 그 꿈의 바탕입니다. 거의 "엉뚱하다"고들 하겠지만 선생님께서는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부디 "수학도 과학도 정답"만 찾고 "질문은커녕 죽어라 필기만 하는 유치함"이 시들하게 해주십시오. 인생은 '수능 만점' '명문대 입학' 외에도 빛나는 그 무엇을 이룰 수 있는 멋진 기회가 주어진 것임을 가르치는 교육, 그런 교육은 선생님 말고는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면 노벨상 같은 건 우리의 저 학생들이 얼마든지 받아 오지 않겠습니까?

 

 

 

 

 

노벨상 메달 사진 출처 : White Rain Log(2009.8.25), '제3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는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