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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세월의 끝에 이르면 하나의 이야기로 엮이기를 기대하며 쓰는 편지
교육논단

우리 교과서, 어디쯤 가고 있나(2015.10.5)

by 답설재 2015. 10. 7.

 

 

 

 

 

 

 

우리 교과서, 어디쯤 가고 있나

 

 

  우리는 우리나라 학교교육이 웬만한 수준은 유지하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어느 교사의 수업이 '우물쭈물' '우왕좌왕'이라면 당장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령 다음 시간에는 시장의 기능을 가르치게 되었다면 교사들은 '무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기 마련인데, 그 '무엇을' '어떻게'에 대하여 국가에서 정해 놓은 기준이 '교육과정'이다.

 

  이론적으로는 이 기준만 있으면 수업을 전개할 수 있지만 모든 교사에게 그런 수준을 요구할 수는 없다. 또 교육과정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서 꼭 훌륭한 교사도 아니며, 구체적인 교육목표와 내용에 대한 교사들의 수준이 천차만별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수준도 그렇지만 그들의 견해나 경험, 개성 또한 다양하다. 그렇다고 해서 개별 사정을 평준화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견해, 개성이 바람직한 것이라면 오히려 잘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옳다.

 

  교사들이 "무엇으로 가르쳐야 하는가?" 물었을 때 "이런 자료를 활용할 수 있다" 혹은 "꼭 이 자료를 활용하라"고 답하면서 "최소한의 수준은 유지해야 한다"는 요구를 할 수도 있다. 그 자료가 교과서다.

 

  그렇지만 '시장의 기능'에 대한 수업의 구상은 마치 예술가들처럼 교사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교사는 슈퍼마켓, 재래시장, 전문점들, 백화점, 노점 등을 직접 둘러보는 게 좋다고 주장할 것이고, 어떤 교사는 "교실에서 차근차근 설명하는 게 최고!"라고 할 수도 있다. 또 어떤 교사는 각종 인쇄물과 인터넷으로 공부하는 게 효과적이고 편리한 증거를 댈 것이고, '시장놀이'가 유용하고 흥미롭다고 믿는 교사도 많다. 더구나 이런 구상은 학교급·학년, 지역, 상황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교사들의 수준, 경험, 개성이 다양하다고 했지만, 학생들의 특성은 더욱 그렇다. 교과서가 다양해야 한다는 견해는 바로 이런 사정에 따른 것으로 당연히 바람직한 관점이다.

 

  "이 교과서로써 가르쳐야 한다!"(그런 경우가 있을 것이다)고 할 때의 교과서가 대개 단일본의 국정이다. 또 "정부에서 심사를 통해 교과서로 인정했으니까 이중에서 골라 써라"는 교과서가 검·인정이다. 우리는 대체로 교육부에서 심사하면 검정, 교육청에서 심사하면 인정 교과서지만 이미 출판된 책을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게 허가하여 인정 교과서라고 하는 나라도 많다.

 

  이처럼 교과서가 국정, 검정, 인정 등 여러 가지인 걸 보고 다양하다고 한다면 학생들은 의아해 할 수 있다. "우리 마음대로 고를 수도 없고, 더구나 오직 한 가지만 쓰는데 뭐가 다양하다는 건가?" 말하자면 그건 공급의 다양성일 뿐이고, 교사가 전체적·일방적으로 내용을 설명하고 학생들은 단지 경청하는 수업에 특히 유용할 뿐이다.

 

  얼른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는 교재(자료)가 다양해질 때 비로소 학습의 원리에 따른 다양성이 실현된다. 한 가지 교재를 획일적으로 설명하는 수업이 아니라 마치 학자들처럼 다양한 자료를 활용한 '자기 주도적 학습' '개별학습'이 이루어져야 학습자 수준에서 교재의 다양성이 실현된다. 또 견해가 다른 것을 굳이 일방적으로 실어놓고 "이것이 옳다!"(그건 학자들끼리 할 얘기다!) "어느 교과서는 쓰지 말라!"고 하는 건 결코 옳은 주장이 아니다. 교과서 심사는 잘 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지고, 논란에 끝이 있을 수도 없다. "국정이냐, 검정이냐?"도 문제가 아니다. "선생님! 여기는 서로 다른 얘기가 실려 있는데요?" 하고 물으면 "그래, 그건 앞으로 학자들이 해결해야 한다" 혹은 "우리가 토론할 문제다!" 할 수 있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더구나 수업(학습)자료에는 교과서만 있는 것도 아니다. 이미 "지식과 정보의 바다"라는 말이 인터넷의 대명사인 세상이고 "온 세상이 교과서"라는 학자도 있는데 굳이 달랑 한 권의 교과서만 보게 하면 아무래도 어색하다. 그래서 아예 '교과서'라는 이름을 없애고 '교재'의 한 가지로 취급하는 나라가 늘어나고 있다. 교과서 제도는 아직 더 먼 길을 가야 한다.